“용산참사 집회에서 경찰은 취재진·유가족 가리지 않고 때린다. 한 집안의 가장들이 참혹하게 돌아가신 것도 원통한데 도대체 우리가 왜 맞아야 하느냐? 언론들한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만 내보내달라고 그렇게 부탁해도 결국 핵심적인 얘기는 다 빼버리고 짤막하게만 내보내더라. 특히 KBS는 자신들이 ‘국민의 방송’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하는 게 뭐가 있느냐?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매체가 있었으면 한다.”

지난 반년 동안 대답없는 싸움을 힘겹게 이어왔던 권명숙씨는 여전히 “시신을 보면 도저히 이대로 주저앉을 수가 없다”고 했다. 고 이성수씨를 ‘우리 아저씨’라고 부르며 시종일관 씩씩하게 말을 이어가던 권씨는 시신과 관련된 부분을 이야기할 때 눈시울이 붉어졌다.

▲ 고 이성수씨에 대한 이야기 도중 눈시울이 붉어진 권씨 ⓒ곽상아

권씨는 희생자들의 시신을 메고 20일 청와대로 행진하는 계획에 대해 “오죽했으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먹었겠느냐”라며 “기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거절한 적이 많다. 있는 그대로 내보내달라고 그렇게 부탁해도 핵심적인 이야기는 다 빼버리고 피상적으로만 보도하기 때문이다. 데스크 차원에서 많이 차단된다고들 하는데, 기자라면 부디 주관을 가지고 살라”고 언론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KBS는 자신들이 ‘국민의 방송’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하는 게 뭐가 있느냐. 정부 눈치 보지 말고 제발 제대로 보도하라고 하니까 자기들도 힘들다고, 윗선때문에 그런다고 핑계를 대더라”고 밝힌 권씨는 “영향력 큰 방송사들이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보도를 내야 국민들도 많이 알게 되고 결국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 그런데 정부에 불리한 것은 방송사들이 제대로 보도 안하고, 은근슬쩍 덮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씨는 17일자 조선일보 <‘용산 참사’ 꽉 막힌 6개월… 출구는 없나> 기사에 대해 “우리는 돈을 뜯어내려는 게 아니라 그냥 먹고 살게끔만 해달라고 요구하는 거다. 2,30년씩 거주했던 사람들한테 푼돈 쥐어주며 나가라고 하는데 그냥 나갈 수 있겠느냐”라고 되물으며 “염장 지르는 보도”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17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나눈 권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20일 청와대로 시신을 메고 행진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시신을 메고 거리로 나가자는 것은 진작부터 나온 얘기다. 다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할 순 없을 거다’ 그런 식으로 기다린 지 벌써 반년이 됐다. 6개월간 순천향대 장례식장에서 지내며 시신 수백구가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조차 얼마나 행복해보이던지…. 15일부터 한남동 순천향대 병원 주위에 경찰 수백명이 깔렸다. 시신 가지고 못 나가게 하려는 것 같은데 아무리 막아도 우린 죽을 각오로 나간다.

▲ 용산참사 현장 바로 뒤편에 위치한 ‘레아미디어센터’ 건물에 내걸린 플래카드 ⓒ곽상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라고 하는데, 반대로 묻고 싶다. 그럼 무슨 방법이 있느냐고…. 목격자(농성자 중 한명인 지석준씨)와 MBC 동영상 등에 따르면, 우리 아저씨는 4층에서 뛰어내렸다.(▷참고: 서울신문 1월 29일자 4면 <용산참사 사망2명 미스터리>) 그런 사람이 왜 옥상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느냐. 우리 아저씨 시신은 오른쪽 손·발목이 없다. 치아도 다 으스러져서 없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유품이 우리 아저씨의 지갑인데 하나도 타지 않았다. 우리 아저씨는 그날 건빵바지를 입었고, 지갑을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참사 후 서울신문 기자가 날 찾아와서 ‘이성수씨 부인 되느냐’고 묻더라. 그러면서 지갑 얘기를 하는데, 용산경찰서에 이 부분(지갑이 타지 않은 것)을 물어보니 벌벌 떨면서 기자한테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우리 아저씨 시신을 보면 벨트도 타지 않았다. 과연 이걸 화재사라고 할 수 있는가. (폭행으로) 죽여서 불에 그을린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가 손을 놓을 수 있겠느냐.

매일 아침저녁으로 우리 아저씨 영정사진에 대고 기도한다. 당신한테 못할 짓 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나를 참 위해주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아마도 억울해서 우리 아저씨가 눈 못감고 있을 것 같다. 우리 아저씨의 생각을 내가 잘 아니까 그 의지를 따를 거다. 남편의 죽음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다.”

- 16일 기자회견이 취소되긴 했으나 당초 시신 공개를 결정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유족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을 것 같은데.

“오히려 유가족들은 다 찬성했다. 어떻게 시신 사진을 공개하느냐고 주위에서 많이 말렸을 뿐이다. 그런데 오죽했으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먹었겠느냐. 애들한테 상처를 주는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 막상 공개한다고 하니까 직계 가족들한테도 연락와서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하더라. 당분간 보류된 상태일 뿐 기회를 봐서 꼭 할 거다.”

- 언론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이번 일 터지기 전에는 TV, 신문에서 하는 얘기가 모두 진실인 줄 알았다. 참사 100일, 150일이 되면 기자들이 많이 찾아와서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거절한 적이 많다. 있는 그대로 내보내달라고 그렇게 부탁해도 핵심적인 이야기는 다 빼버리고 피상적으로만 보도하기 때문이다. 데스크 차원에서 많이 차단된다고들 하는데, 부디 기자라면 주관을 가지고 살라고 말하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언론들이 있는 그대로만 보도해줬으면 좋겠다. 자결할 각오로 끝까지 싸우겠다. 그래야 자식들한테도 떳떳하게 아빠의 죽음이 어떤 죽음인지 알려줄 수 있지 않겠느냐. 결국 진실은 밝혀질 거라고 본다.”

- 11일 저녁 용산참사 추모집회에서 취재중이던 KBS기자의 카메라가 경찰에 의해 파손됐는데.

“그날 나도 경찰한테 맞아서 멍들었다. 지금은 그래도 멍이 많이 빠진 거다. 경찰은 취재진, 유가족 가리지 않고 때린다. 우리한테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한다. 이 과정을 취재중이던 KBS 카메라 기자를 경찰이 우산대로 때렸다. 보도되면 곤란할 테니 그랬을 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항의하다가 또 맞았다.

▲ 권씨의 오른쪽 팔 ⓒ곽상아

▲ 권씨의 왼쪽 팔 ⓒ곽상아

2월쯤에는 큰아들이 영정 사진들고 서울역갔다가 경찰한테 폭행당하는 바람에 머리에서 피가 터졌다. 고 양회성씨 아들도 방패에 맞아서 연골수술을 받아야 했다. 아직도 다리를 절고 있다. 유가족들이 도리어 만신창이가 되도록 맞아야 하는 현실이 정말 억울하다.”

- ‘공공재산’이라 일컬어지는 지상파 방송의 보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KBS는 자신들이 ‘국민의 방송’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하는 게 뭐가 있느냐? 처음에 KBS는 취재에 응해주지도 않았다. 정부에 억눌리지 말고 제발 제대로 보도하라고 하니까 자기들도 힘들다고, 윗선때문에 그런다고 핑계를 대더라. 영향력 큰 방송사들이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보도를 내야 국민들도 많이 알게 되고 결국 문제가 해결될 거 아니냐. 그런데 정부에 불리한 것은 방송사들이 제대로 보도 안하고, 은근슬쩍 덮어주고 있다. 나라가 점점 낙후되는 것 같다.”

- 가장 인상깊었던 보도는 무엇이었나?

“한겨레가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그외에 썩 마음에 드는 매체는 없다. 경향신문은 큰일 있을 때는 오지만 평상시에 사소한 것까지는 보도안해주더라. 그나마 PD저널 기사가 우리의 마음을 조금 공감해주고 이해해준 것 같다.(온라인판 4월 29일자 “제발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 보도해 달라”) 그 기자한테 고마워하고 있다. 따로 전화드리려고 했는데 장례식장에서 지내느라 겨를이 없었다.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매체가 있었으면 한다.”

- 조중동의 보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전에는 ‘조중동’ 이런 것에 전혀 관심 없었다. 참사가 일어나기 전, 판촉원들이 봉투에 7,8만원씩 넣어가지고 독자들 꼬드기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서 조중동은 알아주는 언론인데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거라도 해서 독자들 매수하려는 건데, 조중동은 전혀 언론같지 않다.

없는 사람들이라고 ‘테러범’ ‘폭동’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게 말이 되느냐. 다른 언론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언론들은 검찰 말만 믿고 화재사라고 단정짓는 것인지…. 얼마나 더 유가족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려는 것이냐. 우리는 없이 살아도 도둑질 한번 안하고 세금 꼬박꼬박내며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우리는 끈질기게 진상규명을 요구할 거다. 시신을 보면 도저히 이대로 주저앉을 수가 없다.”

- 17일 조선일보가 사회면 <‘용산 참사’ 꽉 막힌 6개월… 출구는 없나>에서 용산참사에 대해 다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참사) 사건 이후 한겨레, 경향신문만 보는데 오늘 조선일보에 용산참사 보도가 실렸다고 해서 봤다. 무척 화났다. 유가족의 마음 흔들고, 우리를 떼쟁이로 만들려는 의도다. 안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서 사진 한장 찍고는 ‘15일 사고 현장인 남일당 건물은 각종 플래카드가 걸린 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는데, 우리를 폄하한 것 아니냐.

▲ 17일 낮 12시쯤, 시민 40여명이 용산참사 현장에 들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곽상아

“참사현장인 서울 한강로 남일당 빌딩은 현재 외부인의 발길이 뜸한 상태다” “해가 나는 날이나 장대비가 퍼붓는 날이나 하루 한번씩 유족과 전철연 회원 등이 모인 가운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옥외 미사를 집전하는 정도다. 사건발생 직후 전철연 회원과 유족 외에도 일반 시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북적거리던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보도했는데, 미사마다 유족외에도 몇백명의 사람들이 온다. 추모하는 발길도 계속 이어지는데 무슨 소리인가. 그런 식으로 왜곡해서 보도할 거면 차라리 다루지를 마라. 참사 초반에 악의적인 보도만 하다가 이후에는 관심도 안보이더니 왜 새삼스럽게 보도하는지 모르겠다.

▲ ‘한국천주교사제 1000인 시국선언 및 기도회’ 플래카드가 내걸린 천막 안에서 신부들이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우리는 사람이 아닌가”라며 비판하고 있는 모습. ⓒ곽상아

우리에 대해 ‘먹고살기 위해 악착같이 한푼이라도 더 받아야 하는 세입자들’이라고 표현한 것도, 염장 지르는 거라고 본다. 우리는 돈 뜯어내려는 게 아니라 그냥 먹고 살게끔만 해주라고 요구하는 거다. 여기서 자식 낳고 대학교 보내며 2,30년씩 살아온 사람들한테 푼돈 쥐어주며 나가라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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