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의 언론은 현재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본회의장 동반점거의 촌극(!)을 양비론으로 묘사하고 있다. 더군다나 제헌절까지 겹쳐 그야말로 원 없는 저주를 퍼붓고 있다. 동반점거라고 하는 행동의 동시성만을 부각시키며, 국회 자체를 '치킨게임'(chicken game,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극단적인 게임이론)의 장으로 단순화 시키고 있다.

언론의 이러한 묘사는 합당한 것인가? 촘촘하진 않더라도, 우선 두 가지는 따져볼 수 있겠다 싶다. 현재의 상황을 양비론의 틀에 우겨 넣는 것이 타당한지의 여부와 그 틀이 만들어내는 착시 효과는 무엇인지 말이다.

▲ 조선일보 7월 14일자 27면.

앞 단락에 '치킨게임'이란 말이 나왔으니, 게임이론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원래 게임이론은 특정한 상황에 놓인 개인과 조직의 행동 결과를 수학적으로 분석해내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다. 게임이론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상충적(相衝的)이고 경쟁적(競爭的)인 조건에서의 경쟁자간의 경쟁 상태를 모형화 하여 참여자의 행동을 분석함으로써 최적전략(最適戰略)을 선택하는 것을 이론화 하는 것'이다.

게임이론의 가장 대표적 유형은 우리가 흔히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라고 부르는, 치킨게임과 같은 양자가 영합하는 게임에 관한 설명이다. 어려운 것은 아니다. 상반되는 이해를 가지는 게임의 경우, 한쪽의 이익은 상대방의 손실을 가져오게 되어 두 경쟁자의 득실(得失)을 합하면 항상 제로가 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치킨게임' 역시 2인 영합 게임으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건만, 이기겠다고 기를 쓰고 '닭과 같은 짓거리'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 15일 국회에서 본회의를 열어 예정된 안건을 모두 처리하고 산회한 뒤 민주당 의원들이(위) 미디어법 직권상정 저지를 위해 본회의장 점거농성을 벌이자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의원들이(아래) 퇴장하지 않고 맞불 농성을 벌이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여야가 동반으로 본회의장 점거한 초유의 촌극을 '닭과 같은 짓거리'로 볼 여지는 충분하다. 또한 국회의 살풍경이 수십 년 째 거기서 거기, 도진개진에 머물고 있는 우리 정치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것도 맞다. 그렇다면, 국회의 촌극을 싸잡아 '닭과 같은 짓거리'라고 비난하는 것은 합당한가? 그렇지 않다. 우리 중 누구도 아무리 여의치 않은 상황이더라도 합리적 대화와 타협을 절대시하는 삶의 태도로 살아가지 않는다. 삶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므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의사당 동시 점거를 일컬으며, 정치의 수준이 완전 낙후되었을 뿐이라는 광범위한 냉소를 퍼뜨리는 것도 의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그런 소리를 해대는 이가 평소 정치 품질의 향상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정도는 따져 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과연 누가 진짜 치킨이고 뭐가 제로섬 게임인지 더욱 헛갈릴 뿐이다.

물론, 단순히 상황만 보자면 현재 국회 상황이 게임이론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상황인 것은 맞다. 게임이론의 용어들을 빌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경쟁자라 칭하고, 이 둘이 취하는 행동과 대응하는 행동을 전략이라 부르고, 어떤 전략을 취했을 때 그 결과로서 경쟁자가 얻는 이익과 성과를 분석해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립 중인 대부분의 상황과 행동을 분석하는 데 게임이론이 사용될 수 있다는 범용성에 따른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 모든 상황을 너나 할 것 없이 그저 '닭과 같은 짓거리'라는 양비론으로 묘사하는 것은 생산적인 의미가 없다. 왜냐면, 게임이론은 행동을 분석하고 상대적인 결과를 예측하는 모형이지 행위의 '동기'를 설명하는 철학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양비론으로는 지금의 상황이 어느 조직의 '닭과 같은 짓거리'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대 조직도 '닭'처럼 구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어떤 조직이 정말 '닭'이어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상황인지를 가늠할 수 없단 말이다.

현재 국회 상황을 양비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주 얄팍한 속임수이자, 진짜 '닭'은 따로 있는데 '닭 같은 짓거리'만 비난하는 손쉬운 생색내기일 뿐이다. 그리고 양비론의 결정적 함정은 양자 모두를 비판하는 척 하되 결국,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손 안대고 코 푸는 논리라는 점이다. 양비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국회가 무조건 정상화되는 것뿐인데, 양비론은 국회 정상화가 곧 한나라당 의견의 표결처리의 상황으로 이어지는 힘의 불균형 상태를 은폐한다.

또한 양비론은 착시효과를 만든다. 여야가 '제로섬게임'을 펼치고 있으며 이것이 결국 '치킨게임'일 뿐이라는 언론의 양비론은 필연적으로 양보와 타협을 요구하는 회로에 갇히게 된다. 역시나 타당한 회로가 아니다. 이 닭 짓거리 같은 상황을 종료하는 방법은 게임의 당사자가 게임을 중단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무리한 법안 추진을 중단하면 된다. 이렇게 간단 무결한 해결법이 있는데, 양비론의 회로는 이 단순한 원리마저 부정하고 있다.

▲ 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해봉 의원과 얘기를 하고 있다. ⓒ 남소연
닭은 따로 있는데, 닭이 아닌 이에게까지 애꿎은 양보를 강요한다. 나아가 어쭙잖은 것을 중재랍시고 의제로 만드는 악순환마저 저지르니 몰염치까지 하다. 엊그제부터 주목받고 있는 소위 '박근혜안'이란 것이 그렇다. 실효성이 없는 것을 실효적이라 하고, 현실적 의미가 없는 것을 현실적이라 부르는 박근혜 의원은 또한 홍길동이라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타협과 대안이 될 '박근혜안' 이란 것은 허구에 가깝다. 양비론에 이어 정치적 고비 때마다 박근혜 의원의 몸값만 부풀리는 언론의 딱한 직업병이 있을 뿐이다. 내용은 덮어놓고 싸잡아 정략적 이해관계라며 나무라다, 그 결론을 박근혜의 '수첩'에서 찾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박근혜 의원이 정확히 내용을 정리하여 안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계단 위에서 몇 마디 던진 것을 두고 언론이 이 난리법석을 떠는 것이야 말로 참으로 '닭과 같은 짓거리'이다. 더군다나 맹렬히 게임을 수행하고 있는 수백 명 의원의 입장에서 보자면 박근혜 의원이야 말로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멀뚱히 있다가 양쪽의 내용을 적당히 필요한 만큼씩만 가져다 잇대어 자긴 것입네 하는 얌체 같은 '버그'가 아니냔 말이다. 게임을 수행하지도 않은 박근혜 의원에게 그토록 비난하던 게임의 성과를 몽땅 몰아주려는 것은 당최 무엇을 위한 것인지.., 내가 닭 같아서 인지, 참으로 닭 같은 짓거리들을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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