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공영방송의 이사들에 대한 전면 교체가 시작된다.

오는 8월 8일이면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새롭게 구성된다. 또 KBS와 EBS는 각각 8월 31일과 9월 14일 이사들이 교체될 예정이며, EBS는 9월 18일 사장 교체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공영방송에서 두 달간 총 32명의 사장 및 이사, 감사가 교체되는 셈이다. 이렇듯 공영방송사의 이사진 교체를 앞두고 사람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방송장악을 위한 수순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다. 그리고 이미 방송장악 시나리오까지 등장했는데….

행간에 떠도는 정부의 방송장악 시나리오는 무엇?

사실 8월 달 방문진 이사진 교체를 통해 정부의 방송 장악이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MBC 최대 주주인 방문진 이사들의 임기가 이제 끝나면서 앞으로 새롭게 구성될 이사진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구성해 사장 및 경영진을 교체하고 최종적으로는 방송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 시나리오의 골자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 이 시나리오는 상당한 구체성을 가지고 있고, 나름의 신빙성도 얻고 있다.

▲ 서울 여의도 KBS 본사 사옥 ⓒ미디어스
이 시나리오의 빠른 이해는 KBS를 상기해보면 쉽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촛불로 지지율이 최악인 상황에서도 (‘최악인 상황이기에’라는 말이 더 맞을 듯) KBS에 대한 무리한 감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신태섭 이사 등 이사진 교체를 통해서 이사회에서는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통과시킨다. 그러고는 바로 이병순 사장 체제를 구축했다. KBS의 변화는 어떻게 시작됐나? 이병순 사장은 가을개편 당시 <미디어포커스>를 <미디어비평>으로, <시사투나잇>을 <시사360>으로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더니 KBS 내 사원행동 관련자들을 징계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는 KBS 내외부에서의 큰 저항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이병순 체제 1년도 되기 전 오늘의 KBS은 어떠한가? 미안한 이야기지만 KBS는 국민들로부터 이미 충분히 욕을 먹고 있는 중이다. KBS라디오에서 진행되는 대통령의 라디오연설은 여전히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한 KBS 보도에 국민들은 완전히 등을 돌린 모습이다. 봉하마을 빈소에서 쫓겨난 KBS 뉴스 중계차가 1Km 이상 떨어진 공터, 그것도 황소들이 낮잠을 자거나 풀을 뜯는 것을 배경으로 중계방송을 했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하지 않은가.

KBS 기자 및 PD들의 사측 간부와 임원들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KBS 기자협회는 김종율 보도본부장과 고대영 보도국장에 대한 신임 투표에서 전체 기자 554명 가운데 219명(39.5%)이 참가해 각각 82.2%, 93.5%가 불신임표를 던졌다. 또 KBS PD협회 역시 최종을 편성본부장과 조대현 TV제작본부장, 고성균 라디오제작본부장에 대한 신임 투표에서도 68%의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각각 90.7%, 74%, 78%의 불신임 표를 얻기도 했다.

그때 이후 KBS 보도는 좀 나아졌나? 이 또한 미안하지만 ‘아니올시다’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KBS ‘뉴스9’의 청문회 보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11번째 꼭지에서 1분 44초가량이었으며 “야당 의원들의 질문 가운데서 비교적 무난한 부분을 뽑았다”는 것이다.

KBS에 대한 방송장악은 그야말로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했다고 해야 할까? 현재의 KBS를 보아, 언론단체 및 시민사회단체들이 방문진 이사 교체에 신경을 곤두서는 이유가 있을 법도 하다.

방문진 이사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9:0으로 구성될 시나리오

▲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미디어스
현재 MBC의 최대 주주인 방문진 이사 구성이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9대0이 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MBC 경영진을 몰아내고 MBC를 장악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 MBC 민영화의 수순까지 일사천리로 밟을 수 있게 된다. 9대0 시나리오 역시 상당한 수준의 구체성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방통위원들에게 임명이 달려있기 때문. 그동안의 방통위 행적으로 보아 9대0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MBC 이사공모의 자격과 기준의 모호성 : 현재 MBC와 KBS 이사 공모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의 우려가 크다. 지난 2일 ‘언론사유화저지 및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미디어행동)’이 방통위에 공개질의를 통해 공영방송사 이사 교체가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한 것도 이와 맞닿아 있는 점이다.

이들은 공개질의에서 서울행정법원이 ‘신태섭 전 KBS 이사의 해임과 강성철 보궐이사 추천 및 대통령의 임명이 위법하다’고 판결한 것을 근거로 “법원에 앞서 법적 판단을 내려 해임한 근거가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또한 “방통위의 이 같은 태도로 인해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 및 신태섭 전 이사의 해임이 정권의 KBS장악을 위해 기획되었다는 사회적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그 밖에 9일 토론회를 열어 ‘공영방송이사 추천 국민위원회’를 구성해 공영방송 이사 선임의 기준과 자격을 세부적으로 확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들이 다시 방통위 앞을 찾았다. 이번에도 물론 ‘규탄’이다. 이들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아예 공영방송 이사 자격 기준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나섰다. 질의서를 보내고, 토론회를 하고, 기자회견을 해도 결코 움직임이 없는 방통위였기 때문이다.

◇ MBC 노사의 방문진 이사 추천권 박탈 : 또한 방문진 이사에서 뜨거운 논쟁이 된 것은 MBC 노사에 방문진 이사 추천권이 있느냐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MBC 노사는 관행적으로 방문진 이사 구성에 있어서 2명을 추천해왔다. 그러나 최근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 청와대 관계자는 “MBC는 노사가 짝짜꿍해서 망쳐놓은 것”이라며 “참여정부에서는 MBC가 우호적이었으니까 노사에 추천권을 줬을 뿐”이라고 비하했다. 방문진 이사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한 고위 관계자 역시 “문화방송 경영진이 추천하던 관행을 존중하지 않겠다. 방통위에서 결정한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88년 12월15일 국회 문교공보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박관용 통일민주당 의원이 “이 법(방송문화진흥회법)에는 분명 주식회사 MBC가 추천하는 자가 이사가 돼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나 법체계상의 문제여서 안 들어간 것”이라고 나와 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김정대 미디어행동 사무처장은 “88년도 방문진법 논의 당시 MBC 노사에 이사 추천권을 준 것은 정권으로부터 독립을 위한 것이었다”면서 “이것은 여전히 살아있는 가치”라고 잘라 말했다. 현재 방통위의 구성이 청와대 추천 2인, 여당 추천1인, 야당 추천2인으로 되어 있어, 방문진 이사들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방통위 자체가 정치적으로 독립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MBC 노사에 추천권을 주는 것은 여전히 정당하단 뜻이다.

김 사무처장은 또 “방문진법 입법취지에 맞게 방문진 이사의 역할이 감시와 견제라고 봤을 때 이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기 위한 구성이 되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 지난 2008년 8월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 촛불문화제에서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 범국민행동이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안을 논의 중인 KBS 이사들의 얼굴과 이름이 담긴 팻말을 전시해놓고 있다. ⓒ 미디어스
방문진 이사 구성은 KBS와 EBS 이사 구성으로 이어져

지난 2일 공개질의에 앞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유규오 전국언론노조 EBS지부 부위원장은 “신태섭 전 KBS 이사 교체, 이병순 사장 임명 등으로 1년 만에 KBS가 이렇게 망가진 걸 보면서 EBS도 KBS의 경우처럼 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KBS의 현재를 보면 걱정이 될 만도 하다. 그러나 EBS에 앞서 MBC와 KBS 이사 교체가 당장 눈앞에 있다.

MBC 이사 교체에서 정권의 입맛대로 구성된다면 그 다음은 KBS이고 EBS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자명한 상황이다. 마치 도미노게임처럼.

그러나 현재 상황은 어둡기만 하다. 여전히 방통위는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역할에 대한 논의와 이사 자격과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을뿐더러, 방문진 이사에 있어 MBC 노사 추천 몫 여부는 이미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미 어제 16일부로 공영방송 추천이 마감되었고 KBS 이사(11명)후보에는 1백14명이 그리고 방문진 이사(9명)후보에 1백19명이 지원서를 냈다고 한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토론회에서 “제출서류가 딱 다섯 가지(지원서, 결격사유 확인서, 기본증명서, 최종학력증명서, 경력증명서 및 관련 자격증)”라며 “KBS 이사회가 뭘 하는 조직인지, 방문진이 뭘 하고 있는 곳인지 알지도 못하고, 단지 월급과 거마비가 월 400만원 가량된다는 것만 알고 지원했다면, 이들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걸 가지고 뽑는다면 현재 방통위는 ‘찍기도사’이거나 외부에서 받은 ‘오더’를 집행하는 꼭두각시이거나 ‘거수기’라고 본다”고 맹비난했다. 방통위원들의 찍기 실력이 어떤지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8~9월 MBC, KBS, EBS의 이사진 교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KBS의 미래를 MBC와 EBS에서 다시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한 KBS 역시 불신임 100%를 끝내 보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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