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7월17일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불과 40여초만에 사장으로 선임되신지 말입니다. 관련 취재를 꾸준히 해왔던 입장에서, 사장 선임 이후 벌어졌던 YTN사태가 1년이 되었다는 것과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시간이 참 잘~ 간다고 푸념하려는 찰나, 한편으로 ‘벌써’라는 표현이 매우 부적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보이지 않는 투쟁을 하는 그들에게는 지난 1년이 그 어느 때보다 더디고, 아프게 흘러갔던, 조금 과장되게 말해 ‘지옥같은 1년’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해 7월17일 상암동 DMC 누리꿈스퀘어에 열린 임시 주주총회를 잊지 못합니다. 언론사 임시 주주총회를 처음 취재하는 터라 내심 큰 기대를 하고 갔지만, 저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검은색 양복을 잘 차려 입은 안전요원들이었습니다. 우리사주조합 자격으로 주주총회장 안에 들어가려 했던 노조원들의 행동은 처음부터 저지되었고, 간신히 뚫고 들어간 주총장 안은 이미 검은색 물결로 완전 봉쇄돼 있었습니다.

▲ YTN은 2008년 7월17일 오전 9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구본홍 대표이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켰다. 용역 직원들이 노조원들을 제지하고 있는 가운데 김재윤 의장과 일부 대주주들이 황급히 퇴장하고 있다. ⓒ송선영

1분이 채 안되는 시간 속에서 안건이 통과돼 사장님이 YTN의 사장이 되었을 때, YTN 노조원들은 서럽게 울었습니다. 취재를 하는 데 익숙했던 그들은, 그들을 향해 몰려드는 취재진이 어색했을 법 한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참으로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 서러운 모습을 반짝반짝 플래시를 터트리며 찍었던 사진기자들도, 카메라로 현장을 담았던 카메라 기자들도, 펜과 수첩을 든 채 묵묵히 지켜봤던 취재기자들도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언론 특보를 지닌 사람이 사장으로 선임 되었다는 것에 좌절하고, 이 과정에서 십여 년간 알고 지낸 선배가 등을 돌려버린 모습에 또 다시 좌절하는 노조원들의 울부짖음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당시 취재를 하던 취재진 가운데 눈물을 보인 이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지난 1년간 YTN은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저희 <미디어스>에서 쏟아낸 YTN 관련 기사만 해도 수백 건이 넘을 정도입니다. 매일 아침 이어졌던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 6명 해직을 포함한 노조원 33명에 대한 징계, 총파업, 노조원 4명 긴급 체포, 노종면 노조위원장 구속 그리고 석방, 서로에 대한 고소·고발 취하를 뼈대로 한 4월1일 합의 등….

당초 오래가지 않을 것 같았던 YTN노조의 투쟁이 날이 갈수록 견고해 지고, 그런 노조의 투쟁에 힘겨워 하는 사장님을 비롯한 회사 쪽 간부들을 보면서 저는 정말 단순하게도 조만간 사퇴 의사를 밝히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노조의 출근 저지에 막혀 사장실 출입문 앞에 의자를 놓은 채 보고를 받고, 심지어 엘리베이터 앞 복도에 주저앉아 멀뚱멀뚱 몇 시간을 보내는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자리에 계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탄탄한 노조의 투쟁에 맞서는 사장님과 늘 옆에서 사장님을 보위하는 ‘간부 군단’의 끈질김을 미리 예상하지 못한 제 생각이 짧았던 거겠지요.

▲ 2008년 9월9일 노조의 저지로 사장실 출입이 막힌 구 사장이 17층 복도에 앉아 있는 가운데, 간부들이 멀뚱히 선 채 구 사장 곁을 지키고 있다. ⓒ송선영

사장 선임된 지 1년, 사장님께서는 지금 YTN이 정상화 되었다고 보시는 지 진지하게 묻고 싶습니다. 지난 4월1일 노사 합의에 대해 사장님은 저와의 전화통화에서 “노사가 회사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서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 동안 (노 지부장의 구속, 파업 등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겠다”고 말씀하셨지요. 노사가 합의한 지 3달이 지났습니다. 합의에 따른 ‘공정방송을 위한 YTN 노사 협약’이 이뤄졌지만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노사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고, 보도국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고 나서는 등 보도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징계를 받은 33명의 노조원 가운데 6명의 기자는 아직 현업으로 복귀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사장님께서도 오랜 시간 기자 생활을 하셨기에 잘 아실 거라 짐작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되묻고 싶습니다. 기자가 현장을 떠나있을 때, 손에서 취재수첩과 펜, 혹은 카메라를 놓았을 때의 그 마음이 어떨 것 같으시나요? 얼마 전, 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근 3주간 현장을 떠나 있었습니다. 취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TV와 신문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취재해야 할 사안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하더군요. 수개월 째 해직 상태인 6명의 기자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고작 3주간 취재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던 제가 느꼈던 잠깐의 불편함은 감히 견줄 수 없겠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즈음, 해직된 한 선배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뭘 하든 다 좋은데 해고는 당하지 마. 남들 부지런하게 일하고 있는데 나 혼자 이렇게 있으려니까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라고 말입니다. “시간이 남는다”며 덕수궁 주변 붐비는 조문 인파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는 선배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더군요.

▲ 구본홍 YTN 사장 ⓒ송선영

지난 1년간, 사장님께서는 몇 차례 저와의 통화에서, 또는 담화를 통해 YTN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사가 진정으로 화합해야 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사장님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지난 1년을 뒤돌아봤을 때 무척 죄송한 말씀이지만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쉽게 말을 내뱉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언론사의 사장 자리에 계신 분이라면, YTN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내 뱉은 말들이 빈 말이 아니었음을 행동으로 보이시는 게 온당하지 않을까요.

오는 10월6일이면 해직된 노조원 6명이 징계 통보를 받은 지 1년이 됩니다. 노종면 노조위원장과 현덕수 전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원 6명에 대한 해임은 지난 1992년 MBC의 방송민주화운동 당시 위원장과 사무처장 등 2명이 해고된 이후 16년 만에 다시 나타난 언론인 해고이며,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사태 이후 처음 있는 ‘무더기 해고’였습니다. 부디 오는 10월6일에 맞춰, ‘해직 1년’ 기획 기사를 준비하게 되지 않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지난 1년간 한 번도 보여주신 적이 없었던 ‘후배들’을 향한 한없는 아량과 포용의 정신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로 어제” 업무방해, 공동폭행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YTN 노조원들에 대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장님께서 노종면 노조위원장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사장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후배”라고 말하셨으니, 그 후배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YTN에서 기자가 취재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한, YTN은 정상화 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사장으로서의 권위도 존중받지 못할 것입니다. 사장 선임 1주년을 맞은 오늘, 사장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실지 궁금합니다. 혹여나 간부님들과 자축하는 의미로 성대하게 호텔에서 값비싼 음식을 먹으며 폭탄주를 돌리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사장님의 인품으로 미뤄봤을 때 그러시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대답없는 러브레터]라는 형식을 굳이 빌리고 싶지 않았으나 방법이 없었습니다. 며칠 전 통화에서 “회의중이라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씀과 함께 금방 전화를 끊으셨고, 이후 다시 전화를 받지 않으셨기에 말씀을 드릴 기회도, 말씀을 들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아무쪼록 이 편지 안에 담긴, 무수히 많은 저의 진심과 바람이 사장님에게 온전하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편지를 마칩니다.

대답없는 러브레터

미디어스가 불시에 편지를 보냅니다. 팬레터라 해도 좋고, 러브레터라 해도 괜찮습니다. 행운의 편지는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미디어에 등장하는 당신이라면, 언젠가는 미디어스 ‘대답없는 러브레터’의 수취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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