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순택

올해 4월 콜텍노동자들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원정투쟁을 다녀오면서 내 생애 첫 기타가 생겼다. ‘퉁’과 ‘팅’소리만 나는, 줄이 두 개만 남은 나의 조그마한 빨간 기타. 나 역시 내 기타가 내는 소리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간간히 줄을 튕겨본다.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7음계가 어떻게 음악이 되는지 무지한 나지만, 내 기타에 줄을 달아준다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다. 물론 기타 칠 줄은 모르지만, 나에게 오기 전에는 다섯 개의 줄로 아름다운 소리를 냈을 기타의 모습을 찾아주고 싶다.

“기타가 생겼는데 줄이 두 개 밖에 안 남았어요.”
“우리가 기타 만드는 사람인데 뭘 걱정해? 꼭 갖고 와. 우리가 만지면 어떤 기타라도 새 기타가 되는 걸 몰라?”

콜텍 노동자들은 언제라도 가지고 오라 했다. 한 번 봐 주겠다고, 줄도 달아 줄테니 꼭 갖고 오라고. 그러나 아직도 내 기타는 여전히 줄이 두 개뿐이다.

▲ ⓒ노순택

2008년 10월, 겨울을 알리는 한강의 칼바람을 뚫고 15만 4천 볼트의 송전탑에 올라가야만 했던 노동자. 바람이 불면 웅웅 거리는 송전탑의 울음소리로 자신들의 울음을 대신했던 노동자. 비가 오면 감전이 될까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던 그 30일 동안 콜텍 노동자들의 요구는 단 하나였다.

“콜텍 박영호 사장은 노동자들과 대화하라, 폐쇄된 공장을 열고 우리 손으로 기타를 만들겠다.”

그러나 그네들이 박영호 사장을 만난 곳은 올해 4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뮤직메세였다. 12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가서 사장을 만났지만 박영호 사장은 “더 이상 공장 돌릴 일 없다. 포기하고 한국서 다른 걸로 협의하자”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다시 한국, 콜텍은 여전히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회피하고 있다. 오히려 사장이 버리고 간 공장을 2년 동안 지키던 노동자들에게 공장에서 나가라며 손해배상청구를 했다.

서울 방배동 박영호 사장의 자택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목에 걸고 있는 종이 기타 대신 진짜 기타를 만지고 싶다”던 노동자들. 그런 그네들에게 차마 기타를 수리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었다.

“기타 만들 때 중요한 게 건조야. 나무 건조 시킬 때 바짝 말리지 않으면 나중에 목이 다 틀어지거든. 건조가 첫 단추인 셈인지.”

건조가 잘 된 기타일수록 수명도 길고 맑고 깊은 소리를 낸다. 어떻게 보면 콜텍 노동자들은 좋은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길고 긴 건조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건조가 끝난 후 나무가 기타가 되듯이, 길고도 긴 투쟁이 끝나면 콜텍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 다시 기타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나의 빨간 기타도 콜텍 노동자들의 손에 의해 다섯 개의 줄을 가진 기타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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