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자료 중 2007년 주한 미 부대사 윌리엄 스탠턴이 본국에 제출하는 보고서에 최태민을 언급한 부분이 있다는 내용이 국내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다. 내용인즉,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를 최태민이라는 한국판 라스푸틴이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루머가 퍼지고 있어, 이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레고리 라스푸틴은 널리 알려졌듯이 제정러시아의 붕괴를 촉진시킨 요승(妖僧)이다. 황태자를 치유했다는 이유에서 러시아황제 니콜라스 2세와 황후 알렉산드라의 총애를 받은 그는 문란한 생활과 기행으로 민중들을 괴롭혔고,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들만 중용함으로써 재정러시아의 체계를 무너트린 인물이다. 결국 민중들에 의해서 처형당하지만, 그가 망쳐놓은 재정러시아의 정치상황은 수습되지 않았기에 한 나라 자체가 몰락하도록 만든 인물이다.

이런 인물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최태민은 사이비종교 영세교의 창시자다. 두 요승들의 행적은 비슷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다르다. 라스푸틴이 한 세대 만에 사라졌지만, 최태민은 그의 자손들을 통해 아직까지 권력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라스푸틴’(Rasputin auf Koreanisch)과 무녀(Schmanin)

지난 11월 2일 독일의 유력 일간지 ‘Süddeutsche Zeitung’에선 ‘한국의 라스푸틴’(Rasputin auf Koreanisch)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온라인 판에 게재했다. 최순실에 대해선 국내에 보도된 자료들에 근거하여 그녀를 ‘60세 무녀’(die 60-jährige Schmanin),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die mächtigste Person), ‘박근혜의 팔과 손’(die Hände und Arme von Park) 등의 호칭으로 부르며 국정농단에 개입한 일들을 소개한다.

그의 아버지인 최태민에 대해선 ‘불교와 천주교를 융합하여 만든 ’영세교‘(Kirche der Ewigkeit)를 창시하고 스스로를 ’미래의 부처‘(Buddha der Zukunft)로 부른’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기이한 종교에 빠진 사람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번 국정농단의 핵심인 박근혜를 ‘군부독재(Militätdiktator)를 이끌었던 아버지 박정희와 최태민의 사이에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묘사하기도 하고, 정유라는 ‘한국의 라스푸틴 최태민과 박근혜 권력을 등에 업고 날랐던 사람’으로 그린다.

정유라에 대해선 이화여대 부정입학, 삼성의 불법자금 유입, 권력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2014년 아시안게임의 금메달 수혜대상 등의 행적들로 그려졌다. 네 명이 등장하는 ‘Süddeutsche Zeitung’의 11월 2일자 기사의 부제는 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정체불명의 무녀(obskure schamanin)가 박근혜 대통령을 꼭두각시(Marionette)처럼 조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체포된 (그녀의) 측근(Einflüstererin, 최순실)의 아버지는 기이한 종교(eines seltsamen Predigers)에 영향을 받았다.’

이 외에도 ‘Süddeutsche Zeitung’에는 현재 한국 상황과 관련하여 관련 인사들을 흥미롭게 묘사한 기사들이 있다. ‘Süddeutsche Zeitung’의 11월 8일자 온라인기사 ‘결말은 가까워졌다’(Das Ende ist nah) 제하의 기사에선 박근혜를 ‘노년층들에게 스핑크스와 같은 상징성(sphinxhafte Symbolfigur)을 가진 박정희의 딸이라는 선전으로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고 혹평한다.

그를 지지하는 ‘노년층’들에 대해서는 ‘독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이 억압(verdrängt)받고 가혹(Härten)했지만, 생활수준(Lebensstandard)이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향수(nostalgisch)를 가진 인물들’로 그린다. 새누리당은 ‘독재의 엘리트를 계승받은’(Parks Saenuri ist die Partei, die die Elite der Diktatur beerbte)정당으로 묘사된다.

동일 신문의 11월 13일자 온라인 기사의 제목은 ‘무녀의 마법에 걸리다’(Im Bann der Schamanin)다. 이 기사에서 박근혜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은 그녀의 능력에 의심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핑크스와 같은 박정희의 힘을 업고 선거에 승리하여 독재정권을 물려받은 사람(die Diktatur beerbt hatte, zu Wahlsiegen)’으로 묘사한다.

11월 12일 베를진 집회. 박근혜와 최순실 가면을 쓴 참여자들

11월 19일, 베를린의 지역지 ‘Berliner Morgenpost’의 온라인 판에도 한국 관련 기사가 발견된다. ‘Berliner Morgenpost’은 한국에선 ‘원하는 것을 할(이룰) 때까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다’(jemanden solange beeinflussen, bis er etwas Gewünschtes tut)라는 뜻으로 ‘순실하다’(Sunsilen)이라는 신조어가 사용되고 있다면서 한국 정치상황을 소개한다.

이 기사에서 박근혜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독재자로 불리는(Park Chung-Hee, der von vielen Historikern inzwischen Diktator genannt wird) 한국의 세 번째 대통령 박정희의 딸’이다. 박정희는 ‘20여 년 간의 억압정치 속에 정치적 반대자들을 투옥하고 고문한(fast 20 Jahre dauernden Herrschaft wurden politische Gegner eingesperrt und gefoltert)’사람이지만, (개인적으로 동의할 순 없지만)아프리카와 같았던 한국의 경제상황을 세계 11위 경제국가로 성장하게 하는데 힘을 다했던(sorgte) 정치인이다.

간략하게나마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진단하는 부분들도 있다. ‘Süddeutsche Zeitung’의 11월 8일자 기사에서 현재의 한국 상황을 1987년 학생들이 독재를 무너트렸을 때와 비교하며 ‘(87세대 이후)한 세대가 흘러서 민주주의(demokratisch)와 부패(korrupt)를 계기로 박근혜의 포스트-독재를 끝내다(Eine Generation später geht mit Park die Postdiktatur zu Ende)’로 표현하고 있고, 11월 12일자 기사에서는 항상 스캔들과 스캔들 사이에서 비틀거리던 대통령의 ‘행운은 떠나가기 시작했다’(begann Park das Glück zu verlassen)로 묘사하며 이번 박근혜 게이트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하며 정권 교체에 대한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언급한 기사들이 몇 편 되지 않지만 어디를 봐도 현 대통령에 대한 능력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 없다. 대부분이 독재자의 딸, 박정희의 후광을 입은 사람이다. 독일의 언론은 우리나라 정치영향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현 정권을 지칭하거나 묘사하는 표현도 더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우리나라 언론은 상당히 박근혜의 과거를 엮는 모습에선 상당히 소극적이다. 타지에서 접하는 기사와 보도의 한계가 있겠지만 지금 언론에서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새롭게 밝혀지는 의혹들과 처벌 수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요한 기사들도 있음은 확실하다.

11월 12일 ‘박근혜 퇴진’ 베를린 집회. 자유발언 시간 한 참여자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이 치러야할 대가

벌써 5차 민중총궐기다. 이곳 독일도 11월 26일에 맞춰 뮌헨,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집회를 개최했고, 그 자리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야말로 전 세계 곳곳에서 한인들이 외치는 대통령 퇴진 구호는 커지고 있다. 집회에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는 촛불은 우리나라에서 2002년 미군장갑차에 의해 희생당한 ‘효순이·미선이 사건’에서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민심을 받들겠다는 말뿐이다.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2차 대국민담화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상기해보면 3차 역시 큰 다름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어서다.

이런 배경에는 분명 언론의 잘못이 크다. 그 동안 해외순방에서 보여줬던 무능력한 행동들을 포장해서 보도했고, 쓸모없는 행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식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민중총궐기를 보도할 때도 이 모습은 대상만 바뀌었을 뿐 묘사하는 방식은 같다. 얼마나 많은 의혹들 속에서 현 정권이 유지되어왔었는지에 대해서 자숙하고 반성하기는커녕, 몇 명의 사람들이 모였는지에 대해서만 혈안이 되어 있다. 사람들의 진정한 목소리가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얘기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나 빌리지 아니한 것이 없다.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 은총과 귀함을 누리며, 아들은 아비로부터, 지어미는 남편으로부터, 비복(婢僕)은 상전으로부터 힘과 권세를 빌려서 가지고 있다. 그 빌린 바가 또한 깊고 많아서 대개는 자기 소유로 하고 끝내 반성할 줄 모르고 있으니 어찌 미혹(迷惑)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도 혹 잠깐 사이에 그 빌린 것이 도로 돌아가게 되면, 만방(萬邦)의 위에 있던 임금도 짝 잃은 지아비가 되고, 백성(百乘)을 가졌던 집도 외로운 신하가 되니, 하물며 그보다 더 미약한 자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이곡(李穀)의 차마설(借馬說) 중)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의 행태와 언론의 행태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현재의 그 위치가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고려시대 쓰인 이곡(李穀)의 설(說) 중 ‘차마설’(借馬說)이 있다. 소유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에 대해서 경험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이 글은 분명 지금의 우리나라에 필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높고 부귀한 자리를 가졌고’라는 말처럼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힘을 빌려 부여 받은 자리다. 어법상으론 맞지만 ‘대통령을 하다’라고 표현하는 현재의 대통령이 가진 생각과는 다른 이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생산물들을 접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언론은 존폐위기가 아니라 그 역할 자체가 무의미하다. 지금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대통령의 반성이 아니다. 댓글부대로 시작된 권력 장악단계부터 부정선거, 세월호 참사 때의 무능력함, 십상시와 문고리 삼인방으로 불리는 아첨꾼들 등 수없는 의혹 속에서 이미 충분히 숨었기에 더 이상 숨지 말고 내려와야 한다.

언론도 벌을 받아야 한다. 모든 의혹들을 루머로 치부하면서 권력에 붙어 그들의 입맛에 맞는 보도들만 했던 그 행태들은 이 시국을 만든 장본인만큼의 죄를 졌기 때문이다. 언론은 더 이상 정권이 바뀌면 나아진다는 구색 좋은 말들로 반성하는 척해선 안 될 것이다. 히틀러 시대의 괴벨스가 중죄인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히틀러처럼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가 아니라, 잘 구성된 메시지로 사람들을 현혹시켰기 때문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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