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일요일일요일밤>(이하 일밤)이 끝나간다는 것은 슬픔 그 자체였다. 그건, 주 단위로 쪼개지는 생의 한 절정이 저무는 것이었다. 일밤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내일은 학교에 가야한다는 평범한 이치와 적막감에 몸서리 쳐졌다. 골백번도 넘게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속으론 '좀 더'를 외치며 일밤이 제발 끝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어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누구나처럼 더 이상 일밤을 경계로 시간의 절정을 나누지 않아도 될 법한 나이를 먹었다. 소주를 배워가며 또 다시 일요일밤이 찾아왔다는 그 서럽던 적막감을 자연스럽게 그러나 깨끗하게 잊어갔다. 무쇠로 만든 '간'을 필요로 하는 모드로 월화수목'금금금'의 날들이 지나갔다. 내 마지막 별밤지기가 '이적'인 것처럼, 그렇게 내게 일밤은 꽤 오래전의 기억으로 남았다.

나만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일밤'은 오랜 부진과 침체의 늪에서 몸서리를 쳐왔다. 더이상 누구도 일요일밤이 되면 습관적으로 일밤을 틀지 않는다. 일밤이 버라이어티를 절대 지배하던 시절은 기억조차 까마득한 저 옛날에 훅 가버렸고, 예능의 바뀐 경향에 일밤을 올라 타지 못했다.

최근만 해도 소녀시대를 폐가에 밀어 넣고, 빙의까지 연출해봤지만 백약이 모두 '허당'이었더랬다. 우리네 사는 인생이 그렇듯, 가혹했다. 일밤이 동시간대에서 마주쳐야 하는 프로그램들이 하나 같이 날고 기는 엄청난 것들이었다. 국민MC가 이끄는 패밀리들은 '일밤'이 뭔가를 할라 칠 때마다 초특급 게스트를 영입하여 훼방을 놨더랬다. 예컨대, 탁재훈, 신동엽, 김구라 등이 아무리 거품에서 몸부림을 쳐봐야 추성훈이 김종국의 딱밤을 때리고 번쩍 들어 매다 꽂는 것보다 재밌을 수 있겠나? <무한도전>과 함께 국민예능으로 꼽히는 <1박2일>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게 저물어 가는 줄 알았다. 딱해 보였다. 화려했던 기억을 추억삼아 연명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나, <세바퀴>가 독립한 이후 일밤의 추락은 아찔할 지경이었다. 시청률은 제쳐 두고라도, 재미가 너무 없었다. 싱싱함의 유효기간이 다 된 듯 한 포멧인 '우리 결혼했어요'를 진짜 결혼으로 끌고 가는 것도 그랬고, 스스로 초조함에 질려가고 있다는 것을 감추지 못하고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던져대는 폼은 영락없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의 증명이었다. 그건 마치 <개그콘서트>가 계속해서 전성기를 갱신해가는 불로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건 뭐 재미도 의미도 없이 안드로메다를 표류하고 있는 <개그야>의 운명과도 같아 보였다.

그런데 일밤이 벌떡 재밌어졌다. 아직 시청률에 화색이 돌고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도저히 딱하고 민망해서 보기 어렵던 수준에선 확실히 도약한 모습이었다. <오빠밴드>말이다.

▲ 일밤 오빠밴드 화면 캡처.
얼핏, 나이트클럽의 4인조 밴드 얘기를 다룬 임순례 감독의 2001년 작 <와이키키브라더스>가 떠올랐다. 밴드에 관한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주는 것이건만, '막다른 길...그러나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카피로 했던 <와이키키브라더스>의 정서는 묘하게 <오빠밴드>에도 흐르고 있었다. 그건 아마 이런 것일 테다. 40대 이상에겐 하덕규의 노래로, 2,30대에겐 조성모나 이현우가 리메이크한 버전이 더 익숙할 명곡 '가시나무'의 가사 같은 느낌말이다.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다'고.

그렇다. 심히 주옥같은 가사발이다. 듣고 있노라면, 심란해지기까지 한다. 내 속에 내가 있건 없건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문장은 왈칵 심금을 울린다. 나도 한 때 기타를 배웠었다. 이제는 죽고 없어진 마이클 잭슨의 'You're not alone'을 열심히 듣고 적었을 무렵이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손가락 끝의 통증을 참으며 몇 개의 코드만이라도 익혀보고자 이를 악물고 기타줄을 튕겼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어디 그 뿐이랴. 어느 여름날에는 도서관에 틀어 박혀 시를 썼었고, 그 보다 훨씬 오래전 어느 날에는 부지런히 붓으로 물감을 옮겼었다. 황보관의 캐논슛이 작렬하던 어느 날에는 기필코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었고, 선동열과 박충희의 15회 연장 대결이 벌어졌던 날에는 모름지기 운동선수 중엔 야구가 최고라며 마음을 다독였었다. 그러며 나이를 먹어갔다. 포기를 배우고 타협을 익히며 내속에 그냥 나를 담아두는 것에 익숙해지며 말이다.

신동엽도 그랬노라고 했다. 그는 스쿨밴드 혼수상태에서 기타를 쳤었다고 했다. 예능에서 부지런히 입담을 전하던 탁재훈도 소싯적에는 남부럽지 않은 음악을 했던 이였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준수한 노래를 만들어왔던 유영석도 1/n의 아이돌을 넘어서고자 하는 성민과 김정모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리고 게 중에는 꼭 김구라처럼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 없으면서 입만 살아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몇 개의 코너를 동반으로 말아 잡순 오합지졸 멤버들이 <오빠밴드>를 통해 이전에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오빠밴드>의 의미는 '오래 볼 수록 빠져드는 밴드'라고 한다. 정확히 이 지점이다. <오빠밴드>는 나와 당신의 추억에 관해 묻고 있다. 내속에 너무 많았던 나 들이 다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간만에, 일밤이 제대로 된 기획을 만들어 냈건 같다. 범람과 난무의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는 리얼리티라는 포멧은 결국 어떻게든 어디로든 진화할 수밖에 없다. 물론, 누군가를 의대에 보낼 수도 있고, 애당초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을 도전이랍시고 짜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진화라기보다는 생존을 이어가기 위한 가련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도 미디어가 순도 100%의 리얼리티를 재현해 낼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문제는 그 리얼리티가 얼마나 개연성을 갖느냐와 얼마나 서사적인 힘을 가질 것이냐에 있다. <오빠밴드>는 개연성과 서사 모두를 갖고 있다. 거기다 추가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오래된 기억을 불러내는 묘한 정서를 보태고 있다.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두를 떠나서 보면 참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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