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확실히 박근혜 대통령을 정조준 할 모양이다. 연일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이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걸 드러내는 내용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전 비서관이 녹음해놓은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검사들이 실망과 좌절을 했다더라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는 지난 주 SBS 등을 통해 보도된 “촛불이 횃불 될 것”이란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정호성 전 비서관 녹음파일을 고리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면수사를 강력하게 압박하는 모양새인 것이다.

청와대는 아직도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최재경 수석의 경우 사표가 반려됐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청와대는 “변한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사표를 반려하는 절차는 없었으나 최재경 수석이 정상 출근을 하고 있는 정도의 상황이라는 거다.

대통령이 거의 일주일 째 이들의 사표를 처리하지 못하는 배경에 대면수사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검찰이 제시한 일정은 29일 까지다. 청와대는 김현웅 장관과 최재경 수석 사표 처리에 대해 이주 내에 공식 발표를 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즉 28일과 29일 양일간 대통령과 검찰 간의 신경전이 극한에 달할 수 있는데, 이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의 사표 반려를 결정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해석이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왼쪽)과 최재경 민정수석이 23일 사의를 표명했다. (연합뉴스)

이런 해석에 따르면 두 사람의 사표 처리는 29일 이후에 어떤 형식으로든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두 사람이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것인지 물러가는 것인지는 순전히 대통령이 대면수사에 응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현웅 장관과 최재경 수석의 사의에 대통령의 검찰 수사 불응이 작용했다면, 똑같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특검을 둘러싼 상황 관리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최재경 수석은 주변 지인들에게 “내 동료와 후배 검사들의 수사 내용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검찰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뜻이다. 27일 CF감독 차은택 씨에 대한 기소 내용을 보아도 검찰의 목표물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난다. 검찰은 차은택 씨를 기소하면서 포스코가 소유했던 광고회사의 강탈과 KT 광고 수주에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밝혔다.

눈여겨 볼만한 것은 차은택 씨 변호인의 주장이다. 차은택 씨 측은 최순실 씨의 지시로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을 만났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차은택 씨를 만나 차를 마신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 씨를 만난 적이 없고 누구인지 알지도 못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재론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발언이 보여주는 것은 검찰의 수사 내용에 이 사건의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 문제가 포함이 돼있다는 것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자신이 최순실 씨를 소개해줬다는 내용의 김종 전 차관 증언을 두고 “머리가 어떻게 됐다”면서 전면 부인한 것과 달리 차은택 씨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은 것은 이와 관련한 명확한 증거를 검찰이 손에 넣고 있기 때문인 걸로 보인다. 때문에 김기춘 전 비서실장으로서는 차은택 씨와의 만남을 ‘공적 업무’의 차원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이런 행동을 놓고 일각에서는 이미 증거를 최소화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재임 중에 ‘비선 실세’를 중심으로 한 청와대 운영 방식을 그대로 따랐으면서도 자신에게 돌아올 법적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탈출로를 다 만들어 놓았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실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해명을 하려 들면서도 최순실 씨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의혹은 그야말로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결국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한 특검 수사가 이후 정국의 핵심 포인트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다. 이번 사건에 대한 청와대 측 대응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조율하고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 역시 이런 지적을 뒷받침한다. 28일 중앙일보 지면에 실린 인터뷰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대통령이 누구의 조력을 받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김기춘이지. 하는 해법이 딱 그 사람 스타일이다. 권력과 법에 의지하는 스타일”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재의 구도는 결국 ‘검찰 대 김기춘’인 것이며 김현웅 장관과 최재경 수석은 이 구도에서 완전히 소외돼있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진박 정치인’으로 불리는 유영하 변호사 역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법조 아바타’에 불과할 뿐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현직이 아니다. 즉, 여전히 ‘비선’이 공적라인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 관련 의혹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2일 오전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검찰 및 특검 수사 과정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를 모두 ‘대통령의 지시’ 등으로 주장해 법적 책임의 최소화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겉보기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어떤 측면에선 대통령의 형사불소추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고 ‘정치적 합의’를 통해 상황을 모면하자는 ‘기획’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대통령에게 일단 법적 책임을 떠넘겨 놓았다가 ‘퇴임 후 안전 보장’과 같은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처벌 문제는 더불어민주당 관련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조사 연기를 주장한 16일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역시 지난 20일 “(하야 등) 결단을 내려준다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할 뿐 아니라 퇴진 후에도 대통령의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런 발언들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만 국민의 마음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26일 사상 최대 인원이 모인 촛불집회에 등장한 구호들을 보면 민심이 어떤 것인지 체감할 수 있다. 하야 탄핵 퇴진이 중심이던 구호들이 이제는 체포와 구속으로 변해가고 있다. 공권력의 정점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김기춘식 ‘버티기’로 일관하는 것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다.

국민의 의사를 정치권이 제대로 대변하기 위해서는 이후 과정을 그야말로 원리원칙대로 밟아가는 수밖에 없다. 특검 수사와 탄핵소추에 이런 저런 정치적 계산과 공학적 판단이 끼어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사건의 몸통인 대통령의 잘못을 전부 밝히고 이를 비호하고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기술자’ 김기춘 전 비서실장 및 그의 수족 역할을 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죄까지 엄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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