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표를 그냥 ‘쥐고 있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여러 억측이 떠돌고 있다. 이 상황 자체가 박근혜 정권의 붕괴를 보여준다고도 말할 수 있는 지경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현웅 장관과 최재경 수석은 21일을 전후해 사의를 밝힌 것으로 파악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현재까지도 이들의 사표를 반려하거나 수리하지 않고 있는데, 닷새 가까이 사표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김현웅 장관과 최재경 수석의 사의 표명은 검찰 조직과 박근혜 대통령 간의 정면충돌 상황에서 역할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들의 사의 표명 소식이 조선일보를 통해 보도된 23일 청와대는 김현웅 장관과 최재경 수석이 대통령을 피의자로 만든 검찰에 반발해 사표를 냈다고 설명하였으나, 다수의 언론이 이 설명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날 검찰이 오히려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강행하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재차 것은 청와대의 이와 같은 설명이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좌)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 (연합뉴스)

물론 청와대 내부에 검찰에 대한 원망의 기류가 있는 것은 사실인 걸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들의 사표를 그대로 쥐고 있는 상황이 김수남 검찰총장에 대한 사퇴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검찰이 대통령을 피의자로 규정한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이 직을 던지면 검찰의 수사 맥락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이 경우 이들의 사퇴 맥락은 최재경 수석의 표현대로 하자면 “불타는 수레에서 탈출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김수남 검찰총장이 같이 그만둬야 ‘청와대와 검찰의 충돌’ 정도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에 대해 “탄핵사유가 하나 더 늘어날 뿐”이라며 검찰의 수사 강행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김수남 검찰총장의 사퇴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다. ‘검찰은 검찰 편’이라는 정치권의 금언(?)도 있다. 검찰 입장에서는 이후 진행될 특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검에서 검찰이 내놓은 수사 결과를 상회하는 범죄 행위를 입증하게 되면 검찰은 ‘부실수사’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이건 한 번 망신당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건이 ‘부실수사’로 규정되면 다음 정권에서 ‘검찰개혁’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이미 박근혜 정권 내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검찰에 대한 반발로 정치권은 고위공직자비리특별수사처 등의 도입을 언급하고 있다. 검찰이 이를 반대하고 경계하는 것은 ‘기소독점주의’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힘은 기소권을 독점해 사건의 내용을 자기 입맛에 맞춰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데에서 나온다. 즉, 이후 예정된 검찰개혁이 현실화 되면 검찰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효력을 잃는 셈이다.

따라서 김수남 검찰총장이 부득이하게 사퇴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검찰 수사 결과가 특검으로 넘어가기 직전, 즉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한 대략의 수사를 마무리할 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방패막 역할을 다하는 경우다. 이 시점에서의 사퇴는 도의적인 차원의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 시점까지 김현웅 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의 사표를 처리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립적 특검’을 요구하고 있으나, 검찰 수사가 지금 분위기대로 이 시점까지 진행되면 특검은 어떤 후보가 추천되더라도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 결코 중립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김현웅 장관과 최재경 수석 사표 처리 지연은 박근혜 대통령 나름의 어떤 계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도 청와대 내부의 어떤 ‘사정’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대해선 두 가지 ‘설’이 흘러 나온다. 김현웅 장관과 최재경 수석의 사의가 워낙 강경해 이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것과 박근혜 대통령이 두 사람의 사표를 감정적으로 수리하려고 해 다른 참모들이 이를 말리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 사태에 대해 25일 “사표 반려 여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결심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는데, 이 설명은 결국 어찌됐든 문제가 청와대 내부, 특히 대통령에 있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어떤 경우든 박근혜 정권이 이미 망했다는 평가를 피할 수가 없다. 지금 청와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안종범 정책조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들이 구속돼 있는 상태지만 후속 인사는 총무비서관 정도에 그치고 있다. 수석비서관 중 선임으로서 청와대 내의 정책적 컨트롤타워라고 볼 수 있는 정책조정수석의 후임은 아예 구할 의사도 없어 보인다.

실제 경제부총리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상황도 정권의 망조를 상기시킨다. 유일호 부총리는 경질 대상이고 그 후임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돼있으나 어떻게 될지를 당사자도 알 수 없는 상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경제부총리로 임명하면 금융위원장의 후임은 또 누구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지고 보면 황교안 국무총리도 교체 가능성이 있고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여전히 통의동 금융연수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국정을 책임질 수 있는 주체가 아무도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런 와중에 정부 정책이 일순간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는 거다. 24일 금융위원회는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던 여신심사가이드라인을 집단대출과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까지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10월 기준 가계대출 총액이 1300조를 넘은 걸로 추정되는 상황이고, 최근의 대출 증가세를 집단대출이 이끌었다는 진단이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조치는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정도의 평가는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집단대출에 DTI 규제를 적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 발표 당시 집단대출 문제를 그대로 뒀다는 이유로 ‘사실상 부동산 부양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걸 떠올리면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 정도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민정수석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순실 씨와 문고리 3인방,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없어지니 검찰이 뭐라도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외의 온도차가 커졌고 검찰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두 사람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정권에 망조가 드니 비로소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다는 이런 감각은 단기간에는 우리에게 통쾌함을 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정치를 냉소에 찌들게 하고 황폐화시킬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박근혜 정권과 이를 만들어 낸 보수세력의 가장 큰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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