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대선 ‘불출마 선언’과 ‘앞장서 탄핵소추 발의’ 기자회견을 보며 머리에 스친 감정은 두 가지였다. ‘불편하다’는 것, 그리고 ‘어디까지 용인할까’ 하는 것이다.

불편한 이유는 탄핵소추는 그가 주도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야권도 좌고우면 말고 탄핵소추에 나서라는 그의 말은 희극에 가깝다는 느낌까지 줬다. ‘이 와중에 나오려 했냐? 네가 할 일은 정계은퇴다’라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날선 반응에도, 애초 탄핵소추를 배제하고 나섰던 야권의 소심 박약이 빚은 원죄였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탄핵소추에 앞장서겠다는 그와 비박에게 ‘정계 은퇴’보다는 ‘그래 뒤늦었지만 환영한다’는 반응이 많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럼에도 김 전 대표를 비롯한 핵심 비박들은 명백히 ‘부역세력’, 좀 양보해서 ‘편승세력’이다. 이는 ‘어디까지 용인할까?’라는 감정의 뿌리다. 같은 날 그는 TV조선에 나와 ‘최순실은 패션 코디 정도 하는 사람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그와 비박에게는 꼭 필요한 변명임을 모르지 않는다. “박근혜 후보 옆에 최순실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사람이 어디 있는가. (누구든)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이다”는 자신의 이전 발언이 풍기는 뉘앙스를 뒤집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시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핵심 비박이던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결정 과정에서 (당시 박 후보에 대한 의혹을) 모두 검증했는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워 덮었다’고 한 게 엊그제의 일이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속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고 반응했다. ‘부역·편승 세력’이 속죄하는 태도는 앞으로 죽 이어져야 한다. 김 전 대표만이 아니라 비박 내 대선을 꿈꾸는 다른 사람들도 출마를 포기하는 게 맞다. 개인의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비박이라는 하나의 정치집단이 ‘집단으로서의 정치적 시민권’을 다시 회복하려면 그런 선택을 하는 게 맞다. 친박이 새누리당을 나갈 일은 없을 테니 새누리당을 벗어나 새로운 합리 보수정당의 깃발을 세우려면 그런 정도의 속죄는 필요한 절차다.

물론, 새로운 권력창출을 하게 될 대선을 팔짱 낀 채 보기만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김 전 대표가 개헌을 매개로 하여 다른 정치세력과 연대를 꾀할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비박은 후보를 내지 않는 게 국민들에 대한 예의다. 탄핵소추를 주도하며 비박이 해야 할 정작 중요한 일은 따로 있다. 합리적 보수의 가치 속에서 당신들의 비전과 핵심 정책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일이다. 그래야 김 전 대표의 말대로 대한민국 보수세력의 몰락이 아닌 재건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개헌을 통한 정계 개편이 정치세력으로서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돼서는 정말 곤란하다. 당신들이 누구와 연대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세력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는 일이다. MB 정권 때 벌였던 4대강 삽질을 포함해 비박이 저지른 일을 차분히 성찰하는 일이 최우선 사항이다. 그래야 비박이 내거는 ‘합리적 보수’의 깃발에 수긍하는 시민들도 늘어날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해서 합리적 보수가 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시민들이 어디까지 용인할지는 결국 김 전 대표와 비박 세력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수준 이하의 수구세력에 의해 대한민국이 망가지는 일이 중단되고 합리적 보수, 진보, 중도가 대한민국을 끌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많은 시민들의 숙원이었다. 수준 이하의 수구세력을 청산하고 합리적 보수를 얻을 수 있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한국사회가 얻는 가장 소중한 자산일 수 있다. 어차피 지금의 여소야대 정국은 합리적 진보나 중도가 정치적, 정책적 실력이 출중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비박이 똬리를 틀고 싶은 제3지대에서 정계 개편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충분조건은 비박의 성찰과 반성,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비전과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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