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7시, KBS에 도착했다. 라디오 PD들이 이병순 사장의 출근시각에 맞춰 지하 1층에서 "일방적 대통령 라디오 연설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피켓시위를 열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PD저널> 취재기자도 와 있었다.

13일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의 경우 "제작진이 참여도 못한 채 해외에서 일방적으로 제작해 던진 내용을 여과없이 방송했다"는 게 KBS 노동조합과 라디오 PD 조합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글자 그대로 KBS가 '정권의 홍보방송'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것 외엔 다른 생각이 없음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라고 비난하며 "사측은 국민의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 KBS인가? 아니면 정권의 눈치를 보며 기생하는 권력의 개인가?"라고 물었다.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에 비판적이던 내부 온도가 최근 들어 더욱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 13일 오전 8시께 KBS 라디오 PD들이 지하1층에 모여 "일방적 MB연설 폐지"를 주장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이병순 사장이 출근할때까지 이 곳에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지만 KBS측의 취재방해로 인해 이 사장의 출근모습은 찍지 못했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하지만 현장인 지하 1층으로 가기도 전, 본관 2층 안내 데스크에서 또다시 실랑이가 벌어진다. KBS가 지난 1월말 돌연 '취재제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출입기자 출입증 코드에서 자료동을 제외한 신관 본관 등 내부 시설에 대한 출입 권한을 빼버린 후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반드시 홍보실을 경유하라"는 내부 지침에 의해 안내 데스크 요원들은 언제나 홍보실에 연락하고 취재기자들은 홍보팀에서 "YES"할 경우에 국한되어 취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날에 비해 오늘은 출입이 더욱 어려웠다. 안내 데스크에서 홍보팀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해보지만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무도 연락이 닿지 않는단다. 이러면 출입기자들은 꼼짝없이 '대기'해야 한다. 언제까지? 홍보팀 관계자에게 연락이 닿고, 그 관계자가 "들여보내시오" 할 때까지.

30분가량 대기하자 지하 1층에서 연좌시위 중이던 PD중 두 명이 올라온다. PD들이 신원을 확인하고 "대동해 들어가겠다"고 해도 안 된단다. 30여 분이 흐르자 결국 홍보팀 관계자와 얘기를 나눴는지 안내 데스크 직원으로부터 'OK' 사인이 떨어진다. 명색이 KBS 출입기자인데도, 신분증을 맡기고 다시 방문증을 받아 들어간다. KBS에서 출입증은 이미 무용지물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오전 7시 50분이 되어서야 지하 1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PD들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일방적인 MB연설 책임자를 파면하라."
"정권사랑 그만두고 국민사랑 회복하자."
"MB연설 10분 동안 청취자들 다 떠난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침 8시께 안전관리팀 직원들이 취재기자들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지하 1층에 내려온 뒤에도 벌써 두 차례나 신원을 다시 확인받은 후였다. 정복을 입은 한 안전관리팀 직원은 다짜고짜 "방문증을 반납하고 나가달라"고 강압적으로 얘기하며 내 몸을 밀기도 한다.

"정확한 이유를 말해달라"는 취재기자들의 요구에 이번에는 고참 직원이 나서 "(출입과정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곳 취재는 안 된다"고 말했다. 출입기자임을 밝히고, 오늘 아침 KBS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얘기했는데도 "도저히 안 된다", "프로그램 제작 현장만 취재가 가능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일부 직원들은 "방문증을 받을 때는 FM 프로그램을 취재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상황에 맞게 말을 지어내기도 했다.

▲ 13일 오전 8시 이병순 사장의 출근 시각에 맞춰 KBS1라디오 PD들이 "일방적 MB연설 폐지"를 주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전관석
일부 PD들이 나서 따져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이병순 사장이 도착했다. 아침 8시 20분경 이병순 사장이 탄 차량이 지하 1층 입구 앞에 서고 이 사장이 내려 실내로 들어섰다. 순간 안전관리팀 직원들은 "막아", "찍지 못하게 해"라는 상관의 명령에 따라 취재기자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내 앞에도 두 명의 직원들이 막아나서 사진 촬영은 물론 이병순 사장에 대한 취재가 완전히 봉쇄됐다.

이 사장은 즉각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장실로 올라갔으며 이에 항의하는 취재기자들에게 안전관리팀 직원들은 "이해해 달라. 홍보팀에서 취재를 불가한다는 통보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말 KBS의 취재제한 조치가 발표된 뒤 일부 취재기자들은 제작발표회장에서 철수하는 등 집단행동을 벌이고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KBS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취재기자들과 면담 자리에서 강선규 홍보팀장은 "KBS가 주요시설이어서 홍보팀이 미리 취재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 외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면서 "KBS 출입기자들의 취재는 전혀 어려움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LA특파원을 포함해 30여 년간 취재일선을 지킨 강 팀장의 당시 확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수백 명의 기자들이 현장을 누비며 취재를 하고 있을 공영방송 KBS의 오늘 아침 상황이 그 좋은 사례다. 덕분에 KBS 출입기자들은 늘 보따리 잡상인 취급을 받고 있으며 현장에 가도 취재를 못하는 무능한 기자가 되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 현장 취재는 되고 PD들의 피켓시위 현장 취재는 안 된다"니…. 이병순 사장이 취임 이후 내건 모토가 바로 '공정 공익'. 그 취지가 무색하다.

[성명] "권력의 개가 될 것인가? 개과천선할 것인가?"

또 다시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이 KBS의 전파를 타며 공영방송의 자존심을 손상시켰다. 게다가 이번엔 주례연설 제작진이 참여도 못한 채 해외에서 일방적으로 제작해 던진 내용을 여과 없이 방송했다. 이는 글자 그대로 KBS가 '정권의 홍보방송'으로써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것 외엔 다른 생각이 없음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우리는 이병순 사장 부임 이후 근 1년간 이어온 공영방송 위상 갉아먹기 작업을 지켜봤기 때문에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선배이자 최초의 KBS 출신 사장이라는 자가 정권 눈치 보기를 역대 어느 사장보다 앞장서는 모습에 과연 공영방송 KBS의 미래가 있는지 심히 우려된다. 그리고 그 사장 밑에서 노사의 약속도, 언론인의 자존심도 팔아먹는 사측 간부들의 행태를 보면 우려감을 넘어 존재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른다.

우리는 분명 기억한다. 수개월전 공방위에서 잘못된 대통령 주례연설 도입을 노사가 공히 인정했고, 이를 극복하기위해 주례연설 방송형태의 변경을 노사가 합의했다. 이후 노조는 이를 위한 대안도 내고 성실히 협상에도 임했다. 하지만 사측은 그 어떤 대안이나 협의 노력도 보이지 않은 채 시간만 끌다가 결국 노사합의를 불이행하며 논의 테이블을 결렬 시켰다. 그 뒤로도 라디오PD를 중심으로 한 조합원들의 압박이 이어지자, 사측은 청와대와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고 조만간 가시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애드벌룬만 띄울 뿐 협상의 내용과 진전 상황 그리고 전망에 대해선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라디오PD 조합원들은 지난 주 금번 가을개편부터는 '주례연설 폐지' 혹은 '노조가 제시한 방향으로 방송형태 변경' 둘 중 하나를 이행하겠다는 공식적 약속을 이달 말까지 해달라고 사측에 제안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상대가 청와대이므로 사측이 결정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사측은 국민의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 KBS인인가? 아니면 정권의 눈치를 보며 기생하는 권력의 개인가?

우리는 이병순 사장에게 분명히 요구한다!

- KBS의 위상을 갉아먹으며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는 사측 인사들의 인적 쇄신을 즉각 단행하라!
- 또한 공영방송의 이념을 훼손하는 대통령 주례연설을 즉각 폐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최초의 KBS 출신 사장이라는 그 이름 석자는 공영방송 KBS를 망친 최악의 사장으로 기억될 것임을 분명히 명심하라! 그리고 공영방송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어떤 투쟁도 불사할 것임을 선포한다!

2009년 7월 13일
KBS 라디오PD 조합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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