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연재를 시작하며

책 읽는 것을 즐기는 한 늦깍기 대학생이 있었다. 대학시절 자신과의 첫 약속은 무조건 하루에 한권 이상씩 읽는 것이었다. 1학년 때부터 이 약속을 꾸준히 지켜갔다. 한권도 읽지 못하고 지나간 날은 다음날 두권을 읽는 것으로 채웠고, 그마저도 부족하면 시험기간에 몰아치기로 읽었다.

강남의 한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1학년 겨울방학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세권의 책을 빌어왔고, 이런 일상을 반복했다. 대학 4학년 봄 PC통신 하이텔을 시작하면서 서평을 쓰는 공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비루한 생활과 책의 접점을 찾아서 서평을 쓰기도 했다. 밖으로보면 유순하게 생겼지만 그에게도 공격성이 있었는데, 그 공격성을 저자들에 대한 공격으로 일삼았다. 그래도 그 공간으로 인해 작가들도 만나고, 다른 독서 애호가들도 만났다.

얼마 후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신문사여서 신간도 왔고, 사무실 멀지 않은 곳에 교보문고가 있어서 다시 책이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다. 구파발에서 광화문역까지 지하철이나 취재시간을 훔쳐서 공원에서 책을 읽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딱딱한 기사쓰기 보다 서평 쓰기를 더 즐겼는지 모른다. 일주일에 2~3권 정도의 서평을 썼다. 이런 전력으로 인해 인터넷서점의 서평위원이 되어 공짜 책을 받을 수 있게 됐고, 별외의 일로 문학웹진을 창간해서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서른이 되던 해 결혼을 결심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책을 보내주마 했던 인터넷 서점도 주인이 바뀌고, 물류비가 부담되어서 책을 보내주는 것을 중단했다. 그래도 책에 대한 정을 뗄 수 없었다. 때문에 한국에 나올 때는 바리바리 책을 싸가지고 들어갔고, 책값보다 높은 물류비를 주면서 책을 주문해서 보기도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 너무 가슴 아프고, 힘든 일이 있었지만 책들이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옛날을 기억하는 분들로 인해 다시 ‘출판전문저널리스트’로 등록하고 책을 받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평 쓰기도 시작했다.

여전히 내 서평은 사적인 것들에서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사적인 방식으로 서평을 쓰는 것에 욕할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문화부기자들처럼 오랫동안 그런 훈련을 받지 않았던 탓에 용서를 구한다.

거창한 문화이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지식이라는 것이 한 사람을 통과할 때는 그 걸러지는 방식이 있다. 그 필터링의 과정에 내가 있어서 기분이 나쁘다면 그냥 무시해주었으면 한다. 이미 남편이자 아빠가 되어버린 탓에 옛날처럼 여자들에게 차이면서 질질짜는 이야기는 없으니 안심하셔도 된다.

물론 좌빨에 가까울 수 있는 내 체(거르는 도구)가 맘에 안드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디어스’에 오는 분들이 나랑 비슷한 코드라고 생각해서 안심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관점이 상식이라고 언제나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완전 비상식의 사회이다. 따라서 수시로 비판적인 욕지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 상식에 맘이 안드시는 분이라면 불편할 수 있으니 내 잡글에까지 분노하지 않으셨으면 싶다.

별로 존경하지 않는 시인의 문구를 패러디하면 ‘나를 키운 건 8할이 책이었다’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물론 이후 내가 살아가는 것에 가장 중요한 공간은 사이버 공간이 되기도 했다. 이 두가지가 없었다면 숫기 없는 늦깍기 대학생은 평범한 교사나 직장인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 대학생은 지금 헉헉대는 작은 기업을 꾸리고 있고, 남들에게 욕먹기 좋은 책들을 펴내고 있으며, 이렇게 잡글도 쓰고 있기도 하다.

아침에 무가지, 대신 책을

그와 달리 전통있는 <한겨레>에서 문화부를 거친 구본준, 김미영 기자가 공동으로 책을 한권 상자했다. ‘서른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가 바로 그 책이다. 책읽기에 관한 책은 이미 많다. CEO들의 책 읽기 책이 많고, 전문 서평가들의 책 읽기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평범한 직장인들이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든 사례와 방법 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또 딱딱한 인문서 서평 같은 느낌이 아니라 구어체의 편한 글이라는 점도 이 책 읽기에 편하다. 가벼운 자신들의 책 경험담으로 시작에 본론인 2장에서는 책 읽기에 습관이 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책 읽기에 매료되어 있는 것은 기본이고, 독서 관련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사람 들을 분석해 그들의 책 읽기 습관을 보여준다.

또 ‘매년 한 분야의 전문지식인이 되는 법’, ‘출퇴근 시간, 최적의 독서 타이밍’ 등 ‘독서의 전략’이라는 꼭지를 만들어두어 독서법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도 말해준다. 후반에는 독서가들의 멘토인 정운찬, 이어령 등의 독서에 관한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책의 내용 중에 가장 공감하는 것이 아침에 ‘무가지’를 보지 않는 것이었다. 나도 한국에 돌아와 처음에 가장 습관들인 것에 아침 출근길에 5~6개의 무가지를 읽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포털에서 보던 내용들을 재삼확인하는 그 시간이 짜증이 났고, 나랑 코드가 맞았던 1~2개로 줄였다가 이제는 아예 무가지를 보지 않는다. 번잡한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게 한심했기 때문이다.

어떻든 이 책은 우리들 옆에 있는 이들 가운데 가장 깨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보기 바란다. 또 그들의 노하우를 습득해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는 지혜도 찾았으면 싶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길항적 삶을 실천하고 싶어 <미디어오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97년 DJ가 당선되고나자 자유로워지고 싶어 여행잡지로 전직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못해서 이 잡지가 망해서, 다른 잡다한 신문일들을 하다가 99년 9월 결혼과 더불어 중국으로 건너갔다. 학업과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중국에 적응했다. 2002년부터 '알짜배기 세계여행 중국'을 시작으로 10여권의 중국 관련서를 썼지만 언제나 내 책을 만들기 위해 잘린 나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조만간에 좀 미안함이 덜할 책을 한권 낼 계획이다. 2004년부터는 중국 전문 여행 콘텐츠 회사인 '대국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해서 운영중이다. 올부터는 한신대에서 외래교수로 가르치는 일도 겸하고 있다. 한중 교류에 줏대를 세워주는 '한중 문화 하이웨이'라는 막연한 구상을 현실화 시키는데 정신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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