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과학의 맏아들이다. 과학적 연구방법에는 언제나 통계가 동행한다. 수가 지시하는 대상은 모호함을 걷어내고 객관의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그 수를 해석하는 인간은 여전히 주관적이다. 통계는 수와 인간의 미끄러짐에서 신화화된다. ‘통계는 완벽하다’는 대중의 믿음은 그 해석조차 완벽하다는 믿음으로 확장되고, 누군가는 그 믿음을 이용해 마술을 부린다. 통계의 마술에는 ‘자의적 해석’과 ‘통계 조작’, 두 가지 기술이 있다.

얼마 전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이른바 언론관련법(신문법·방송법 등)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동안 이 법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일관되게 부정적으로 나왔다. 법안 발의자인 한나라당이 처음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도, 격차는 줄었지만 부정적 반응이 여전히 높았다. 특히 법안 내용이 어려워 국민의견을 법안에 반영하는 건 부적절하다던 한나라당의 주장과 달리, 응답자의 43.6%가 ‘구체적 내용까지 잘 안다’고 답했다.

국회의원인 진수희 여의도연구소 소장의 해석이 재밌다. “법안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선전한 허구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지 이 조사에선 분간할 수 없지만, 잘못된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 이렇게 응답한 분들의 비율이 높지 않을까 추측한다.” 이건 차원이 다른 해석이다. 자신이 만든 통계의 타당성을 부인함으로써 자신의 기존 주장을 정당화하는 아찔한 마술이다.

▲ 한겨레 7월 7일자 4면.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통계 조작이 드러났다. 2006년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8천880억달러에서 1조2천942억달러로 바꿔 국내 방송시장 규모가 국내총생산 대비 0.68%로 선진국 평균 0.75%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 통계 조작은 다시 방송시장에 신규 사업자가 들어가면 일자리 2만개가 창출된다는 통계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확한 수치를 대입해 계산하면 GDP 대비 국내 방송시장 규모는 선진국보다 훨씬 큰 0.98%다. 이미 과포화시장이다.

이걸 놓고도 재밌는 해석이 나왔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은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2만~3만개 만들어지느냐가 아니라 과연 일자리가 생길 것인지에 대한 방향”이라며 “(언론관련법과 관련해) 일자리 갯수 예측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근거를 뒤집는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정확한 GDP로 계산하면, 일자리가 오히려 4만2천여개나 줄어든다는 다른 통계분석은 그의 해석에서 간단하게 배제됐다.

언론관련법은 재벌기업과 신문의 방송 소유를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한나라당은 13일까지만 야당과 논의를 하고, 이번 국회에서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글이 발표되는 바로 그날이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47호(2009-07-13)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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