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과 미디어법으로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뜻밖에 파병 연장 동의안이 여야의 등원 합의를 이끄는 계기가 됐다.

여야 지도부는 15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레바논 파병 연장 동의안과 예결위원장, 윤리위원장, 운영위원장 선출 안건을 처리키로 합의했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다른 안건을 상정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9일 국회 외통위가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산회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29명의 외통위원 중 14명만이 참석했다. 민주당이 불참했지만 17명이나 되는 한나라당 의원도 5명이나 불참했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19일 레바논 남부 티르에 파병된 동명부대의 활동 기한이 이번 달로 만료된다. 오는 18일까지 파병연장 동의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레바논 파병은 위헌이 되고, 동명부대는 레바논에서 철수해야 한다. 지난 5월 26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레바논 동명부대의 파병을 2010년 12월 말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연장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9일 외통위가 산회되자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 얼이 빠졌다고 호통을 쳤다.

‘얼빠진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MBC 뉴스는 의원들의 사정을 확인하여 보도했고, 중앙, 경향 등 일간지도 적당하게 다루었다. 그런데 시선은 말 그대로 ‘얼빠진 한나라당’에 꽂혔을 뿐이다.

MBC 뉴스는 “외통위는 오는 13일 회의를 다시 열기로 했지만 의결 정족수도 못 채우는 거대 여당이 민주당 등 야당을 비난할 자격이 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며 어줍잖은 각을 세웠다.

▲ 7월 10일 MBC <뉴스튜데이> ⓒ 화면캡처

여야가 다음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던 레바논 파병연장 동의안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본회의 상정에 실패했습니다. 거대 여당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습니다. 장준성기자입니다.
여야가 다음주 본회의를 열어 레바논 파병연장 동의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바로 다음날. 소관 상임위인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법안 심사와 본회의 상정을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가, 의원 수가 모자라 처리가 무산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국회 외통위원 29명 가운데 14명만 출석했고, 의결 정족수에 단 1명이 모자라 산회된 겁니다. 민주당이 불참하기도 했지만, 외통위 과반수, 즉 의결 정족수를 넘는 한나라당 의원 17명 중에 5명이나 회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은 전날 소속의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까지 보내 "파병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고, 의결정족수가 모자랄 수도 있으니 전원 반드시 참석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여기에 자유선진당 소속 외통위원 2명이 추가로 참석해, 정족수 부족은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앞뒤도 가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이 빠져도 한참 빠졌습니다. 비가 이렇게 억수같이 내리는데 국회의원들이 도대체 어디 가서 무엇을 하기에 의결정족수 하나 못 채운단 말입니까."(박선영 대변인)
불참한 한나라당 의원들 중 정의화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유럽 순방 수행중이었습니다. 당 지도부 일원인 정몽준 최고위원은 "한 달 전부터 예정된 지역 공청회를 취소할 수 없어 불참했다"고 밝혔고, 이범관 의원도 "지역 행사 때문에 지역구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남경필 의원과 윤상현 의원도 "폭우 때문에 길이 막히고 토론회 일정 때문에 회의 시간에 못맞췄다"고 각각 해명했습니다.
외통위는 오는 13일 회의를 다시 열기로 했지만 의결 정족수도 못채우는 거대 여당이 민주당 등 야당을 비난할 자격이 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장준성입니다.

▲ 중앙일보 7월 10일자 12면

중앙일보는 박진 외통위 위원장이 의원에게 전화하는 사진과 함께 비교적 크게 다루었다. ‘얼빠진 한나라… 정족수 못 채워 레바논 파병 연장안 불발’이라는 제목을 달아 자유선진당의 논평을 업어 탔다.

▲ 경향신문 7월 10일자 6면

경향신문도 ‘얼빠진 한나라’를 카피로 한 기사에서 간단하게 사실 관계만 다루었다.

동명부대는 한국이 UN으로 파병한 UN평화유지군으로는 다섯 번째, 전투부대로는 동티모르에 이은 두 번째 파병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3대 대테러전쟁 전선(이라크, 아프간, 레바논)에 모두 파병했다. 시민들의 파병 반대와 파병 철회 여론을 듣지 않았다. 뿌리깊은 한미동맹의 연장에서 이루어진 다국적군에 동참한 것으로 비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파병으로 인해 이라크에서 김선일 씨가, 아프간에서 윤장호, 배형규, 심성민 씨 등이 목숨을 잃었다.

UN의 평화유지군은 전쟁과 분쟁 당사자국에 있어서는 점령군의 지위를 점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동명부대는 전투병을 포함하고 있다. 평화의 가치에서 볼 때 전쟁을 지원하는 파병은 어떤 경우에도 고려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

동명부대 역시 기한이 만료된 만큼 철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당연하다는듯 파병 연장 동의안의 원포인트 처리를 합의했다. 당연히 처리해야 할 외통위 위원들이 회의에 불참해 사고가 생겼으니 ‘얼’이 빠져도 한참 빠지긴 했나 보다.

이 정도 했으니 13일 재소집된 외통위가 산회하는 일은 없을 듯 싶다. 외통위 의원들이 계속 얼이 빠져도 15일날 김형오 의원이 직권상정하면 되니 역시 위헌 사태가 초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의원들이 얼이 빠지면 빠질 수록 좋은 일만 생긴다. 국회가 파병 동의 연장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점령군’의 철수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MBC뉴스 보도, ‘비난 지격’ 같은 어줍잖은 멘트 대신에 ‘철군의 바램’을 살짝 덧붙일 순 없었을까 하는 ‘과도한’ 생각을 해봤다.

“상임위가 계속 얼이 빠져 다루지 않고 본회의도 처리하지 않게 되면, 이라크, 아프간 등 참여정부의 파병으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시민들의 평화에 대한 오랜 바램이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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