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운동이란 숨쉬기 운동이 고작이다. 최근 들어 점심 식사 후 두어시간 지나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하는 국민체조가 근래 시작한 운동이라고 한다면 나의 스포츠 이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응원이라도 열심히 해야 할 터이나, 어찌나 간덩이가 좁쌀만한지 두 손 불끈쥐고 숨죽이며 응원하는 ‘빅 경기’도 즐기지 못하는 소인배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승전보를 간절히 염원하며 짐짓 딴전 피우다 승리의 기운이 완연한 다음에야 슬며시 엉덩이를 들이밀거나, 것도 아니면 감동의 순간을 ‘리플레이’의 기쁨으로 재생산해서 뒤늦게 박수치는 엇박자의 썰렁한 세레머니를 연발, 앞서 탄식과 환호를 공유하던 사람들 일제히 뒤돌아보며 “뭐야?”하는 썰렁한 눈총 세례도 많이 받았으니 짐작컨대 내 명(命)은 ‘욕먹어’ 길게 살거라고 자부해본다. 이처럼 길게 고해성사를 늘어놓은 이유는 스포츠에 관심없던 내가 스포츠 영화에 감동먹은 덕분이다.
영화 <우생순>이 있기 전 ‘핸드볼’이라는 구기종목이 그러하듯, ‘역도’라는 스포츠종목 또한 그리 친근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킹콩을 들다>라는 영화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솔직히 <킹콩을 들다>라는 영화역시 정보를 가지고 선택한 것은 아니고 어찌 상영관을 서성이다 시간이 맞아떨어져 별 기대없이 본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 보통 내공이 아니었다. 연발탄으로 웃음을 쏘아대더니 지루할 무렵 눈물세례와 코미디 번갈아 강타, 엔딩무렵 감동으로 오래 오래 자리를 일어서지 못하겠더란 말이다. 엔딩 크레딧을 보다가 이 영화가 정인영, 윤상윤, 김용철 선생님의 지도아래 2000년 전국체전에서 14개 금메달을 휩쓴 순창의 중고등학교 역도부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것, 정인영 선생님은 이듬해 뇌출혈로 작고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튿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새로운 정보도 얻었지만 황당한 사실도 많이 발견했다. 확실한 것은 금메달 14개의 주인공이 전북 순창고등학교 학생들이라는 것, 그런데 일부 기사에서는 ‘시골 중’으로 대충 표기되거나 ‘전남 순창고’로 씌여진 일간지도 있었다. 촬영의 대부분이 보성에서 이뤄져서 그런지 보성중학교로 오인하는 사례도 있었다. 어쨌거나 ‘킹콩’으로 유발된 관심은 역도 명문의 기적을 추적해 보게 했다. 최소한 ‘킹콩’이 계속 회자되는 동안 ‘전남 순창’이라거나 ‘어느 시골학교’ 같은 사태는 막아보자는 지역 언론인으로서 소명감도 있었다.
그로부터 6년 후 기적이 일어났다. 2000년 부산에서 열린 전국체전 역도부문에서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대회에 5명의 선수를 출전시킨 순창고등학교 역도부는 총15개의 금메달 중 14개를 차지했고 은메달 1개를 따냈다. (이 또한 동점이었으나 체중에서 밀려 은메달을 딴 것이라고 한다.) 4명이 3관왕에 올라 MVP가 됐고, 전국체전 사상 처음으로 단체에게 MVP도 수여됐다. 순창여중에서 탄탄한 기량을 쌓은 학생들이 순창고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 정인영, 윤상윤, 그리고 당시 코치로 활동했던 김용철(현 보성군 역도단 감독) 선생님이 함께 일군 승리이자 기적이다. 이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1년 후 정인영 선생님은 아쉽게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주인공인 영화배우 조안이 이 영화에서 박영자라는 이름의 선수로 나오는데, 박영자라는 선수도 궁금했다. 지난 2001년 전국체전 당시 전북체고의 박영자 선수는 48kg급에 출전해 3관왕에 올랐다. 이 선수 역시 순창여중 시절 정인영 감독의 지도를 받았고 전북체고로 진학해 여자 역도 유망주로 명성을 떨쳤다. 현재 순창군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영자 선수는 “전국체전 신화의 주인공들은 선배언니들인데 왜 제 이름이 주인공으로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다고 수줍게 웃었다. 박 선수 역시 중학시절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생활하며 역도를 했다고 한다. 한사람 한사람 선수들의 어려운 속사정을 알았던 정인영 선생님은 더욱더 선수들에게 애정을 쏟았고, 선수들은 그런 정인영 선생님을 ‘아버지’처럼 따랐다고 하니 선생님의 존재가 더욱 그립다.
<킹콩을 들다>라는 멋진 영화가 이왕 순창에서 촬영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개인적으로 아쉽고 섭섭하지만 그 영화 덕에 순창 역도의 맵고 깊은 맛을 알게 되어 고맙기도 하다. 이 영화를 계기로 비인기종목이라는 역도에 대한 인식도 바꾸고 역도 메카 ‘전라북도 순창’의 진면목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순창이 낳은 이배영 선수의 미소도 덤으로 기억해주시길.
1965년 볕 좋은 봄, 지리산 정기가 서린 전북 남원에서 태어났다. 원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언론홍보를 공부했다. 전공을 살려 지방일간지 기자와 방송작가 등을 거쳤고 2000년 원음방송에 PD로 입사, 현재 편성제작팀장으로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을 만들 수 있을까?” 화두삼아 라디오 방송을 만들고 있다. 지역 사회와 지역 문화에 관심과 애정이 많아 지역 갈등 해소, 지역 문화 발전에 관련된 라디오 프로그램을 기획, 제작해왔다. 수필가로 등단, 간간히 ‘뽕짝에서 삶을 성찰하는’ 글을 써왔고 대학에서 방송관련 강의를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어 드디어 지식이 바닥을 보이자 전북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며 용량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최근 전북여류문학회장을 맡았다. 방송에서나 인간적인 면에서나 ‘촌스러움’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http://blog.daum.net/kse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