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은 새누리당 비박계 이탈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지는 날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지낸 김용태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의 기준으로는 ‘소장파’, 즉 ‘수도권 비박’을 대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으로부터 가장 자유롭지 않은 부분부터 새누리당이 허물어지고 있는 셈이다.

새누리당 내의 수도권 비박계는 이미 지난 4·13 총선 때 ‘박근혜식 정치’에 의해 전멸하다시피 했다. 사실 위험신호(?)는 이미 박근혜 정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할 때부터 감지됐다. 남경필 도지사 역시 2015년 국정교과서 논란 당시 도입 반대 입장을 표명했었다. 수도권의 반발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이들의 시각에서는 어느 시점에든 박근혜 정권과 선을 그어야 앞으로의 정치적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맥락에서 ‘폭탄’이 이제 터질 때가 된 것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반면 영남권의 비박계 인사들은 탈당을 주저하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의 탈당 계획을 김무성 전 대표나 유승민 의원 등이 말렸다는 보도가 나오는 걸 보면 대략의 기류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김무성 전 대표는 새누리당 내 인사 중에서는 가장 먼저 ‘탄핵’을 언급해 놓고도 탈당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선 머뭇거리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엘시티 비리 의혹 수사 지시가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김무성 전 대표 본인은 연루 의혹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유승민 카드로 이미지 세탁한다?

유승민 의원의 경우 평소 내세워 온 ‘보수를 개혁해야 나라가 바뀐다’는 슬로건에 집착하는 탓인지 아니면 대구경북권 여론 동향을 주시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탈당에 대해서는 비박계 대권주자 중 가장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집단탈당보다는 친박계와 비박계가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은 바 있다. 이러다 보니 엉뚱하게도 난파하고 있는 새누리당을 구원할 새로운 ‘선장’감으로도 언급되는 모양이다.

조선일보 출신으로 지난 4·13 총선 당시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 입성에 성공한 새누리당 강효상 의원은 22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의 전화연결에서 비대위를 구성하게 되면 당의 원로 중에서는 김형오·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강재섭 전 새누리당 대표 등이 거론되고 있다면서 “나경원 의원이나 유승민 의원 같은 분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준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경원 의원 카드는 어찌됐건 ‘원로’들 보다는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로 수도권 여론에 호소해볼 수 있는 카드다. 그러나 공학적으로 따져보면 나경원 의원 보다는 유승민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적합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과 본의 아니게(?) 대립한 이력 덕분에 마찬가지로 수도권 여론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다 새누리당의 핵심지지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에서 일정 이상의 호소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친박 강경파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장우 최고위원은 21일 “김무성 전 대표는 하늘에 떠있는 깃털구름과 같이 행동과 말이 너무 가볍지만, 유승민 의원은 상당히 무겁게 처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발언했다. 여의도 주변 일부에는 친박계가 이정현 대표가 내놓은 로드맵인 조기전대 이후 ‘유승민 당 대표’ 카드로 정국을 돌파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어떤 경우든 ‘개혁적 보수’라는 유승민 의원을 내세워 최대한 현 새누리당의 핵심 골간을 유지하고 보수재집권을 이뤄보겠다는 구상이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재선의원 모임에 참석, 인사말을 통해 "계파라는 거 없애고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무엇이 옳은지 대화를 집중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간판만 바꾼 신장개업으로 이 난국을 헤쳐 나가는 것은 어렵다. 아무리 유승민 의원을 앞세워 파격적인 이미지 세탁을 시도한들 박근혜 정권이 새누리당 정권이었으며 동시에 보수 정권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잊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해법은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는 현대적 대의민주주의의 기초와 충돌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결국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비박계가 새누리당에서 이탈하는 게 해법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관해선 전임 대통령까지 탄핵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는 점도 눈 여겨 봐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1일 김영삼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국의 해법에 대해 “헌법적인 절차가 중요하다”고 말해 사실상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친박계 중심의 당 지도부가 버티면 답이 없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위해선 비박계가 새누리당을 나와야만 한다.

비박계 이탈, 제3지대 정계개편 불씨 될까

과거의 분당 사례를 보면 탈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환경에 놓인 인사들이 ‘선도 탈당’을 하고 이후 온건파들이 끌려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남경필 도지사 등의 탈당 선언이 이런 맥락 안에 있다고 한다면, 탈당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도 당 내에 남아있는 세력과 일정 정도의 공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정계개편론이다. 이에 대해선 손학규 전 의원의 행보를 볼 필요가 있다. 손학규 전 의원은 21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 미래재단 창립 10주년 기념세미나 축사에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로 규정하면서 독일식 정치 시스템을 언급했다. 손학규 전 의원은 그간 개헌을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인 권력구조 개편 방식에 대해선 말을 아껴왔는데, 이 자리에서 권역별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전제로 한 내각제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이 자리에는 취임 일성으로 개헌의 필요성을 언급했던 정세균 국회의장과 함께 평소 내각제 개헌을 필요성을 주장해온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와 ‘비패권 정상지대’라는 주장을 내세워 온 정의화 전 국회의장도 참석했다. 모인 사람들의 면면만 보면 그들의 표현대로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모든 계파가 집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탈당을 선택한 비박계까지 개헌을 고리로 가세하면 정계개편이 현실화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실제로 나오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합의제 민주주의에 기초한 제7공화국 건설 방안'세미나에 정세균 국회의장(왼쪽부터),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가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전망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폭발력을 가질 것이냐는 예측이 엇갈린다. 월간중앙 12월호 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65.2%가 정계개편을 예상하고 있으며 정당별로는 국민의당 지지층, 지역별로는 호남지역, 연령별로는 60대 이상의 경우 국민의당과 비박계가 결합하는 시나리오를 전망하고 있다고 한다. 또, 제3지대 정당을 이끌만한 정치인으로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 유승민 의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식의 반기문-안철수 연대론은 이미 정치권에서 다양한 형태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 전체의 반응을 놓고 보면 여전히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겠다는 유권자 숫자가 많다는 점은 이런 식의 제3지대 정계개편론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함께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결국 정계개편을 촉발시킬 또 하나의 키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쥐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탄핵 국면에서 국회 내외를 아우르는 지도력을 얼마나 보여주느냐에 따라, 또 자신을 향한 일부의 ‘비토’ 여론을 어느 정도로 희석시키느냐에 따라 이후 국면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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