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이사 11인(비상임)과 MBC지배주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9인(비상임)을 방송통신위원회가 공모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들은 신(神)이거나 ‘연필굴리기 도사’거나 그것도 아니면 ‘거수기’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비록 ‘거수기’에 혐의를 짙게 두고 있으나, 아무리 ‘거수기’로 자임하고 자기비하해도 최소한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하는 절차인데, 대상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다.

“방송통신위원회공고 제2009-48호-한국방송공사·방송문화진흥회 이사 후보자 모집 공고”를 보면 제출서류가 다음의 5가지다.

ㅇ 지원서 1부
ㅇ 결격사유 확인서 1부
ㅇ 기본증명서 1부(동사무소 또는 구청에서 발급)
ㅇ 최종학력증명서 1부
ㅇ 경력증명서 및 관련 자격증(사본) 각 1부

KBS이사회가 뭘 하는 조직인지, 방송문화진흥원이 뭘 하고 있는 곳인지 알지도 못하고, 단지 월급과 거마비가 월 400만원 가량 된다는 것만 알고 지원했다면, 이들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지 궁금하다. 경력증명서로? 자격증으로? 아니면 뭘로?

지원하는 조직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구체적인 현황 그리고 역할과 창조적인 활동계획 등을 적어내라는 항목은 없다. 단지 지원서에 적시하고 있는 ‘응모 또는 추천사유’란만이 앙상하게 지원자의 생각이나 추천하는 자의 생각을 어슴푸레 짐작할 수 있게 할 뿐이다.

또한 심사기준도 없다. 단지 결격사유확인서에서 요청하는 다음의 내용만 있을 뿐이다.

1.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음.
2. 정당법에 의한 당원이 아님.
3. 국가공무원법 제33조(결격사유)의 각 호의 1에 해당사항이 없음.
▪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
▪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에 그 선고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
▪ 법원의 판결 또는 다른 법률에 따라 자격이 상실되거나 정지된 자
▪ 징계로 파면처분을 받은 때부터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 징계로 해임처분을 받은 때부터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참으로 다행인 것은 위에서 언급한 ‘모집공고’ 마지막에 그나마 공영방송 이사 공모를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 살짝 묻어 있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www.kcc.go.kr)는 한국방송공사 이사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다음과 같이 공개 모집하오니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익성을 제공하기 위해 일하실 역량 있는 분들의 많은 응모를 바랍니다.”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익성을 제공하기 위해’라는 이 문구마저 없었더라면, 공영방송 이사와 관련된 그 어떤 흔적도 찾지 못할 뻔했다.

공영방송의 이사가 그렇게 만만한 자리는 아니다. 사장 선임과 더불어 경영전반에 대한 개입이 가능한 자리이며, 일하기로 마음 먹으면 비상임이사일지라도 부지수이고, 그냥 5천만원 가까운 연봉만 따먹기로 친다면 ‘천하보직 중 이런 보직은 없는’ 자리다. 한 달에 두 번 회의 가고, 회의 갈 때마다 30만원씩 거마비 받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300만~330만원의 월급이 꼬박꼬박 통장을 채우는 자리.

그래서 지금까지 공영방송 이사 자리가 감투였고, 정치권의 보은의 자리였고 논공행상의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영방송이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절실해지고, 또한 공영방송의 존재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영방송 이사 자리는 ‘감투 따먹기를 위한 경연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대표성과 전문성 그리고 공영방송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이 있어야 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이런 대표성과 전문성 그리고 철학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그 어떤 서류도 필요 없는 지원서 등의 제출서류를 보면 과연 방통위는 어떻게 이사를 선임하려고 하는 걸까 의심이 절로 든다.

▲ 방송통신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그동안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공영방송 이사 ‘추천위원회’를 방통위에서 구성하고, ‘추천기준을 명시적으로 공개하라’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허가·재허가 심사 등을 추진할 때 방통위는 상임위원 일부와 외부 심사위원들을 위촉해 ‘위원회’를 구성했고, 반드시 심사기준을 만들어 사전에 공표해 왔던 좋은 전례들이 있다.

한데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사업 중 하나가 ‘공영방송 이사 선임 사업’인데 이에 대해서 그 어떤 자료나 기준도 없고, 자천응모자든 타천응모자든 그 대상자가 어떤 사람인지, 공영방송 이사회에 대해 어떤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그 생각과 계획이 공영방송의 철학에 맞는지, 철학과 부합하더라도 현실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두루 살펴, 심사하고 선임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설령 내부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고 강변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방통위 설립 이후 일관되게 지적받아 왔던 불투명한 사업 작풍에서 온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심사기준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응모자들은 어떤 입장을 밝혀야 할지, 어떤 내용을 중심에 두고 서술해야 할지조차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서, 거의 로또나 복권 사는 심정으로 응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는 ‘추천위원회’를 공개구성하고, 추천기준을 공개적으로 밝힌 이후 공영방송 이사 선임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이를 ‘공개질의’했으나 아직까지 방송통신위원회는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의 민주성·투명성 강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어찌 보면 부질없어 보인다. 정부여당 추천 3인과 야당 추천 2인으로 구성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들이 국민들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자세나 태도를 어디에서도 엿볼 수 없는 상황이며, 이들을 향해 그동안 수많은 비판과 수많은 정책대안을 제시해 왔지만, 어느 누구 하나 시민사회나 전문가들의 입장을 진지하게 듣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고, 수렴하지도 않았던 것이 지난 1년 6개월의 활동결과이며, 지금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앉은 돌부처를 향해 절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다시 방통위에 우리는 공영방송 이사선임의 민주성과 투명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부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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