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보 7월 10일자 1면.
한국의 대통령이 신봉하는 종교 및 타 종교에 대한 대통령의 배려에 국한해서 이야기할 때, 개신교 장로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과 소망교회처럼 말과 탈이 많았던 적이 또 있을까.

물론 범위를 좀 넓혀 이 대통령과 같은 전주 이씨인 조선시대 임금들까지 한반도의 헌법적 국가원수로 놓고 봤을 때 나랏님 종교관에 대한 세인들 담소에 이 대통령 이야기가 자주 낄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국정의 기조로 삼았던 조선 왕들의 애틋한 유교 사랑에 비하겠는가.

혹자는 이명박 정부가 기독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한다 말하지만 본인들도 과장된 표현임을 알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 불자들을 포함한 대다수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현 정권의 종교관은 ‘편향성’에 귀결된다고 단정짓는다 해서, 이를 근거조차 찾을 수 없는 모략이라고 객관적 데이터를 들이대며 증명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계를 대표하는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은 지난 6월 초 청와대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오찬에 불참했다. 이 대통령이 국가현안에 대한 조언을 구하겠다며 7대 종교 지도자를 초청했지만 “선약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지난해 7월 이명박 정부의 ‘자랑스런’ 경찰은 지관 스님의 차량을 검문했는데 ‘일상적인 검문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상황’이라는 경찰의 해명은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촛불시위) 수배자들이 농성 장소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봉쇄하고, 의심 인물 및 출입차량에 대해 철저히 검문·검색해 반드시 검거하라”는 서울경찰청의 문건이 일부 언론에 의해 폭로됐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 봉헌’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는데 당시에 낭독한 봉헌서의 내용은 이렇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서울의 교회와 기독인들은 수도 서울을 지키는 영적 파수꾼임을 선포한다.”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 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

또한 새 정부 출범 당시의 내각 인선 과정에서 소망교회 신도 출신을 대거 기용했던 것과, 더 나아가 낙마한 소망교회 인맥을 각종 정부기관의 요직에 앉히는 인사정책 등은 스님들과 불자들 이타심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충분했다.

천주교는 어떠한가. 작년 촛불정국 이후 시국선언의 중심에 서있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청와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간 사제단 신부가 용역직원들로부터 욕설을 포함한 물리적 폭행을 당하는 동안 현장에 있던 이명박 정부의 경찰은 폭력을 막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현 상황은 비단 종교 편향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지도자 개인의 단순한 ‘종교적 기호’로만 그치지 않기에 문제다. 역사가들은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이 ‘독선, 독단, 아집’ 등을 낳았고 종파와 학문의 다원성을 둔화시켜 결과적으로 국력의 약화를 초래했다고 평가한다. 최고스님의 차량을 검문하고 신부님을 폭행하는 정권이 일반 국민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할 것이며 국가는 어찌될 것인가.

‘숭기억불(崇基抑佛)’이란 풍자가 그래서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그리고… 바티칸 현지시간으로 9일 오전 이 대통령은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했다.

“이 사람아, 주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이는 지난달 1178인의 사제단이 발표한 시국선언문 첫머리에 나온 내용이다. 교황께서 적절한 시기에 방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셨다는데, ‘미가 6장8절’을 인용했던 사제단 시국선언의 문구를 교황의 언어로 다시듣기 하고 싶다. 이 글 쓰는 나도 한때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한때는 기독교 예배당에 나가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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