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언론장악’이라는 단어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단어가 돼버렸다. 그런데 현 정부의 언론장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온 ‘MB멘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현실의 심각성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9일 오전 10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초청 관훈 토론회’에는 취재진을 포함해 200여명이 참석해 최 위원장의 ‘입’에 주목했다.

▲ 9일 오전 10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초청 관훈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노조
하지만 최 위원장은 한나라당 미디어관련법, MBC 민영화 등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의제에 대해 시종일관 안이한 현실인식을 보였다. 현업과 시민사회에서 느끼는 위기감에 대해 혼자서만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부르짖는 형국이다.

정연주 KBS 사장 해임, MBC <PD수첩> 검찰 수사, 낙하산 사장 논란 등 ‘언론장악’ 목소리가 불거질 때마다 “요즘 시대에 언론장악은 있을 수 없다”며 혼자 느긋하던 최 위원장은 이날도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최 위원장은 “(미디어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하고, 소위 조중동이나 재벌에게 방송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이같은 비판에 수긍할 수 없다. 언론장악은 현재의 방송체제를 만들었던 30년 전 군부 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라며 “정부가 특정 신문사나 재벌에게 특혜를 줘 방송을 장악하게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없는 극심한 논리적 비약이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언론인 또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정연주 사장 해임, 청와대 대변인의 MBC 사장 퇴진 촉구 발언, YTN 낙하산 사장 투하, 정부 비판적 신문에 광고 안주기 등 지난해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오는 ‘언론장악’의 구체적 사례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객석에 앉아있던 수많은 취재기자들 중 최 위원장의 발언에 코웃음을 친 사람은 과연 나뿐일까?

“조중동 방송을 출현시켜 정권 연장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 아니냐”는 강성만 한겨레 여론미디어팀장의 질문에도 최 위원장은 “지금 시점에서 미디어법으로 정권 연장을 시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언론의 보수화에 대해 걱정하는데 신방 겸영이 허용된다고 보수화되겠느냐. 현재 방송3사가 독과점하고 있는 구조를 볼 때, 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조중동이 지상파에 곧장 진출하진 못하더라도 지상파만큼이나 영향력이 큰 보도전문채널에 진출하는 순간 국내 언론시장이 더욱 보수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나뿐일까? 미디어법에 대해 ‘정권 연장 시도’라는 분석 역시 자주 나왔던 이야기들이다.

최 위원장은 “MBC를 대기업에 넘길 뜻이 있는지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해달라”는 김창균 조선일보 정치부장의 질문에도 “MBC같은 거대 미디어를 인수하는 데는 몇조원이 필요한다. 그런데 채산성 등을 고려할 때 과연 나설 기업, 보수언론이 있을지 의문스럽다. 여러 여건을 고려할 때 (보수언론, 재벌의 MBC 인수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방송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던 시절은 지났으나 여론주도력에 관심있는 재벌과 보수언론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MBC를 인수하는 것은 최 위원장으로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시나리오일까?

역시 ‘법’ 좋아하는 위원장…“법을 봐라”

‘법치’를 강조하는 정부답게 최 위원장 역시 ‘법’을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MBC노사가 2명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추천해오던 관행과 관련해 “법적 문제를 검토해보았으나 ‘각계 대표성을 검토해서 방통위가 결정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법적으로 명시된 게 없다. 관행이었다고 하지만 전례는 존중할 만한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88년부터 행사해오던 MBC노사의 방문진 이사 추천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사장선임·해임 등을 결정할 수 있는 방문진을 정부여당쪽 인사 일색으로 채우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KBS이사회가 정파별 나눠먹기라는 지적이 있다. 이로 인한 공정성을 문제삼으며 이사 공모를 중단하라는 요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강성만 한겨레 팀장의 질문에 최 위원장은 “법에는 여야 비율을 얼마로 해야 한다는 게 전혀 없다. 그래서 정당별 추천을 받아서 이사를 나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맞는 말이다. 방송법 제46조 3항에 따르면, KBS 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통위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야가 3대2 비율로 선임하는 방통위 구성에 따라 KBS 이사진도 같은 비율로 결정돼왔던 현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주최자인 관훈클럽은 이번 토론회에 대해 “초미의 관심사인 미디어관련법에 대한 정부 대책을 최시중 위원장에게 듣고 토론을 통해 미디어법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기 위해 마련했다. 오늘을 계기로 미디어법이 극한 대립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는 최 위원장의 ‘아무것도 몰라요’ 식 발언과 규제완화를 통한 미디어산업 발전론을 일방적으로 강변하는 것으로 끝났다. 방통위원장이라는 중요 직책에 앉아있는 MB멘토의 안이한 현실인식으로 인해 불행한 것은 이명박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일지 모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