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임시국회에서 언론법 처리를 두고 또 다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시도 여부가 최대 현안으로 급부상하면서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7일 한나라당은 직권상정을 압박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나경원 의원은 “미디어법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키 위해선 13일까지 상임위에서 논의가 끝나야 한다”며 “국회의장이 ‘미디어법을 이번 국회에서 표결 처리한다’고 밝힌 것은 법 논의가 안되면 직권상정을 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박희태 대표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직권상정은 합법적인 수단”이라고 거들었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협상이 안되면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시한을 정해놓고 하는 논의에는 참여할 수 없다. 여당이 미디어법 처리를 강행하면 재앙의 날이 될 것”이라고 맞서면서 국회 본회의장 앞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 여야 합의로 사회적 합의기구로 출범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도 여당측 추천위원들의 무소신, 무책임 행보와 국민 여론 조사 수용 거부에 따라 결국 파행으로 공식 활동을 종료함으로써 사회적 합의안 도출이라는 가느다란 희망의 불씨마저 꺼져 버렸다.

현재 국회에서 단기간의 협상을 통한 합의안 도출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재벌과 조중동 등 수구족벌신문에게 방송사업 진출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인 한나라당 법안과 신문과 방송의 겸영과 대기업의 방송사업 진출 금지를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간 협상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최근 이용경 의원이 발행부수 점유율 10% 이상 신문사와 상위 20대 재벌의 방송 진출을 금지하고, 시청자 점유율 상한 제도를 도입하는 등 진입규제와 사후규제를 병행하는 비교적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해 이목을 끌기도 했으나 조중동과 재벌에게 조건없이 방송을 안겨줄 수 없는 이상 한나라당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 한나라당은 언론장악을 위한 야욕을 불태우며 언론악법 강행 처리를 위해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라는 마지막 남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직권상정 제도는 국회법에 있지는 않지만 편의상 부르는 말이다. 국회법 85조(심사기간)에는 국회의장이 위원회에 회부하는 안건 또는 회부된 안건에 대해 각 교섭단체대표와 협의하여 심사기간을 지정할 수 있으며 위원회가 이유없이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중간보고를 들은 후 다른 위원회에 회부하거나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또 동법 86조(체계자구의 심의)에는 위원회에서 법률안의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한 때에는 법사위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의장은 각 교섭단체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심사기간을 정할 수 있으며 이유없이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바로 본회의에 부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국회 입법조사처의 설명에 따르면 주요국 의회 중 의장이 우리나라와 같은 권한을 가진 국가는 없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모든 법안이 소관 상임위에서 우선적으로 심의되며 의장이 임의로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수는 없으며, 영국, 프랑스, 독일 의회에서도 의장이 의안을 직권상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직권상정 제도가 도입된 9대 국회부터 18대 국회 현재까지 직권상정이 시도된 것은 모두 18차례 였다. 9~11대와 14대에서는 직권상정이 시도되지 않았으며 15대와 17대는 각각 20건의 직권상정이 있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제도가 정략적 도구로 악용된다는 점이다. 직권상정 제도는 국회가 비정상적인 장애상태에 빠져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지는 권한인데, 현행 국회법상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예측이 불가능해서, 권한행사 또는 불행사가 자의적으로 일어날 우려가 있다. 또 국회의장에 대해 지나친 정치적 부담을 지우고, 직권상정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발생하며, 직권상정이 아니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도 직권상정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18대에 들어와서 김형오 국회의장은 작년 12월 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 등을 직권상정 처리했다. 지난 3월 2일에는 방송법, 신문법 등 언론법과 금산분리완화관련법 등 15개 법안에 대한 심사기일을 지정하고 직권상정 수순을 밟으면서 민주당을 벼랑 끝으로 몰아 결국 100일짜리 시한부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반강제적으로 합의하도록 종용함으로써 직권상정 제도가 정치적으로 악용된 또 하나의 사례를 남겼다.

이미 한나라당의 언론법 개정안은 여론독과점을 해소시키는 법도 아니고 경제살리기법은 더더군다나 아님이 명백히 밝혀졌다. KISDI보고서의 통계자료가 엉터리로 밝혀지면서 일자리창출론이 허구임이 확증됐다.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된 여론 조사 결과 한나라당을 지지자를 포함해 대다수 국민이 언론법 처리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오 의장이 언론법 직권상정을 시도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를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언론의 독립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대국민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범죄자에 대한 심판과 범죄 집단 척결을 위한 총력 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할 것이다.

이미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지난 2일 개최된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김형오 국회의장이 언론악법을 본회의에 직권상정 하겠다고 선언하는 즉시 3차 전면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언론악법 폐기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실행에 옮기는 것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나라당은 야당시절이었던 지난 2004년 12월 자신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고 자중자애하기 바란다(표 참조).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은 전국 150여개 언론사 노동조합과 조합원 1만8000여명이 속한 전국 단위의 산별노조입니다. 분야별로는 신문, 방송부터 인터넷매체, 출판, 인쇄, 광고, 언론관련기관까지 다양합니다. 언론노동자의 권익 향상은 물론 언론자유 및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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