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재개’가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야권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상 야권으로서는 국민여론에 호소하며 탄핵 절차를 밟는 것 외에는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18일부터 이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듯 현재 상황에서 탄핵은 일종의 모험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권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한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분열해 탄핵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겠느냐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비박계 최대 세력을 움직일 힘을 갖고 있다는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탄핵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밝히면서 이 문제는 해소되는 것으로 간주됐었다. 그러나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엘시티 비리 의혹 적극 수사를 검찰에 지시하면서 사태는 다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만일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 박근혜 대통령은 정상적으로 임기를 채울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야당 입장에선 탄핵 사유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단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이 기간 동안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대행한다는 점이 부담이다.

황교안 국무총리를 대신할 인사를 국회가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방법도 여전히 남아있으나 권한 배분 문제가 여전히 애매한 상황이고 야당마다 선호하는 인사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다. 자칫 잘못하면 중대사를 앞에 두고 야권 분열이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국면이 ‘보수재집권 플랜’ 재가동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내려볼만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일부러 유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은 사실 이런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재장악에 성공하면 엘시티 비리 의혹을 고리로 새누리당의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탄핵소추안 부결과 보수세력 재집권을 성공시키면 퇴임 이후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변호사 모임'에 참여한 변호사들이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재개 역시 보수재집권 플랜의 일환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외교부 및 문체부 차관 인사를 강행한 데 이어 22일 국무회의 주재와 12월 한중일 정상회의 참가 등도 검토하고 있다. 국정을 정상화하면 한 자리 숫자까지 떨어진 국정수행 지지율은 얼마라도 오를 것이고, 이를 동력으로 또 다른 정치행위를 이어가면 이 늪을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계획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특히 ‘콘크리트 지지층’의 실망한 마음을 붙잡는 것에 핵심을 둬야 한다. 야권은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해야 하는 이유로 헌정유린 등을 들고 있으나 보수층이 바라보는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이들 입장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이상성(異常性)’이 문제이다. 혼자서는 통치는커녕 자기 삶도 제대로 챙길 수 없는 사람이 대통령 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을 재개하고 언론과의 관계도 개선하면 이 부분에서의 문제는 해소될 수 있다. 최순실 씨가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대통령직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마음 약한 박근혜 대통령이 오랜 친구인 최순실 씨에게 연설문 일부 표현의 수정을 요구하거나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에 해당하는 민감한 의료 관련 문제를 공유한 것 정도로 축소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애초 자신이 약속했던 것과는 달리 검찰 조사에 극도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를 겨냥한 행보로 볼 수 있다. 검찰이 현재 요구하는 대로 조사에 응할 경우 최순실 씨의 공소장을 통해 자신의 범죄 행위 내용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재벌들의 돈을 사실상 갈취한 자신의 행위를 선의에 기초한 통치행위로 정리하고 나머지 문제들은 사소한 법률위반 정도로 규정해 법 위반 혐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재개가 이 단계까지 성공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가 사실상 크지 않음에도 야권이 하야를 요구하는 이유는 오직 권력을 갖고 싶어서이다. 그러므로 보수세력은 ‘종북좌파’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구국의 사명감을 갖고 떨쳐 일어나야 한다. 촛불집회에 나와 맞불을 놓겠다는 박사모와 같은 집단이 이런 사고를 갖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정상적인 수준까지 회복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렇게 돼야 박근혜 대통령에 등을 돌린 보수층이 다음 대선에서 보수정당을 다시 찍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가 마련된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 강경파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정치적 순장을 택하더라도 나머지는 ‘새판짜기’를 도모해 정권을 재창출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 보장 쟁취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새판짜기’의 소재는 물론 개헌이다. 분권형대통령제니 내각제니 백가쟁명이 등장하지만 사실 그 내용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개헌을 소재로 해서 제3지대 헤쳐모여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여기에 ‘병든 보수의 메시아’가 되지 않을 거라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합류한다면 그림은 완벽하다.

실제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18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인터뷰 내용까지 소개하며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만 동의하면 언제든 개헌을 현실화할 수 있는데, 두 사람이 권력욕이 그걸 막고 있다는 취지의 비판도 내놨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친박도 비박도 아닌 ‘낀박’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는 충청 지역의 여권 여론을 반영하고 대표하는 행보에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결국 이 발언은 ‘충청권 대통령’을 염원하는 충청 지역 민심에 어떻게든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야권이 이후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더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보수재집권 계획을 좌초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야권이 더 많은 국민들을 광장에 불러낼 수 있을 때에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 내에서는 탄핵 논의를 진행하고 국회 밖에서는 국민 여론을 결집시킬 수 있는 행보를 이어가는 ‘투트랙’의 접근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야권 분열의 순간이 눈앞에 다가오더라도 공동대응의 대원칙을 무너뜨려서는 결코 안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