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했다. 미실(고현정)이 남편인 세종(독고영재)과 정부인 설원(전노민) 그리고 그 각각의 아들들인 하종(김정현)과 보종(백도빈)을 앉혀놓고 묻는다. 사다함의 매화가 그리들 궁금하였느냐고. 그러곤 “비밀을 다 공유하려면 서로의 일을 다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쏘아 올린다. 세종이 화백회의를 장악하고 통솔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또한 설원이 병부령 대장군이 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서로가 다 알아야 할 게 아니냐고 몰아붙인다. 결국, 오직 미실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을 다 알고자 하면, 천하에 미실은 둘일 수 없으니 차라리 미실을 베라고 일갈한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의 논의 시한을 13일까지로 한정지었다. 중앙일보 표현에 따르자면, ‘최후통첩’이란다. 13일 이후에 벌어질 상황은 보장해주지 않을 것이며, 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대안’을 내놓지도 논의하지도 않은 민주당에 있단다. ‘직권상정’ 외에 방법이 없다는 바람잡이들 사이에서 김형오 의장은 민주당에게 일단 농성부터 해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경향신문 7월 8일자 4면.
<선덕여왕>의 시청률을 30%에 갖다 놓은 사다함의 매화는 다름 아닌 ‘책력’이다. 미실의 첫사랑이었던 사다함이 죽기 전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물건이었다. 사다함이 전장으로 떠난 사이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된 사특한 미실이지만, 갸륵한 사다함은 천문이 발달했던 가야의 ‘책력’을 그녀에게 남긴다. 미실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제관들보다, 심지어 진흥왕보다도 정확히 천문을 예측했던 신출귀몰함이었다. 사실, 세계사의 숱한 천재들은 지금 보면 지극히 평범한 자연현상일 뿐인 달력의 이치를 남들보다 조금 먼저 깨쳤을 뿐이었다. ‘적벽대전’을 만들어낸 제갈량의 탁월함 역시 계절풍인 동남풍의 덕분이 아니었나.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13일까지 불과 닷새의 여유뿐이다. 1년여를 거쳐도 합의하지 못한 내용을, 100여일을 논의하고도 아무 접점도 찾지 못한 복잡한 법안을 딱 닷새의 말미 안에 셈하겠다고 한다. 더욱 오싹한 것은 무모한 완력과 상식을 뛰어넘는 박력으로 정국을 헤쳐 나가고 있는 그동안의 꼬락서니에 비춰 보자면, 한나라당이 못 할 것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미디어위 100일의 냉각기를 거치며 지난 12월과 2월에 비해 반대의 기운과 긴장감이 다소 떨어져 보이는 것도 공포를 더하는 요소이다.

미실은 비로소 당시 현존하던 책력 중 가장 정확했다고 하는 ‘대명력’을 얻었다. 1년 365일은 물론, 윤달의 존재와 그 생성 원인까지 기술했다고 하니 현대 달력의 수준에 거의 근접한 객관성을 보여줬다 여겨진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물론, 앞으로 숱한 전개과정이 남아있지만 어찌되었건 모두가 알다시피 미실은 끝끝내 승리하진 못한다. 권모와 술수의 극한을 보여주고, 왕까지 주눅 들게 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지만 그녀는 끝끝내 천하를 얻지는 못한다. 역사적 증빙이 부재한 드라마적 상상력과 고대의 사건이라 하여 그 개연성을 서사 밖의 판타지로 메워가는 전개 방식이 비록 진부하다고 아무리 비판한들, 북두칠성의 일곱별이 여덟로 갈라지던 날 태어난 ‘선덕여왕’이 승리한다는 극의 구조는 뒤집어지지 않을 것이다.

▲ MBC 특별기획 드라마 '선덕여왕' 홈페이지 캡처. 우측이 '미실'역을 맡은 고현정.
그렇다면, 여론의 다원성을 해치며, 경제적 효과도 미미하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건만, 한나라당은 왜 이토록 그 법에 매달리는가? 미실이 수중에 없는 황금을 주고서라도 ‘대명력’을 얻고자 했던 까닭에 답이 있다. 바로, 사다함의 매화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이 모든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미디어법’을 얻고자 하는 이유도 같다. 영혼을 지배하는 절대 경험칙이다. 사다함의 매화에 세상의 이치가 있었다면, 미디어법에는 권력의 이치가 있다. 달력을 지배했던 자가 기후와 풍수에 관한 도통함으로 세상을 지배했던 것처럼, 미디어를 지배할 수 있다면 적절한 선전과 적절한 은폐를 통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오싹한 일이다. 그리만 된다면, 정부는 입법, 사법부와 야당은 물론 그 밖의 모든 세력들을 꿇어앉힐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명박의 기증이 그리들 궁금하였느냐고, 그리고 재단이 기부가 아니라면 너희의 돈부터 다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쏘아 올린들 아무도 대꾸할 수조차 없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야당의 아무개가 지역구를 장악하기 위해 누구에게 밥을 샀는지를 터뜨리고, 또한 인터넷의 누군가가 논객이 되기 위해 무슨 공부를 했는지를 까발리며 요령껏 몰아붙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오직 정부만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하고 다 알고자 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

미디어법이 한나라당의 세상을 밝히는 ‘대명력’이라고 한다면, 사다함의 매화는 정권을 빼앗겼던 이유가 방송 때문이라는 십 수 년도 더 된 비뚤어진 경험 때문이다. 전파를 타고 정보가 수평적으로 이동되면, 권력마저 그 이동 속도에 휩싸이거나 혹은 수평화되고 만다는, 그러면 결국 미실이 무한히 ‘Ctrl-c/Ctrl-v’ 되는 세상에 대한 묵은 불안감 말이다.

좀 더 세련된 그리고 적합한 비유를 들며 미디어법을 조롱해주고 싶지만, 마땅한 것이 없다. 정말이지, 그럴 최소한의 게재조차 못 되는 망상을 부여잡고 너무 오래도록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망측함뿐이다. 언젠가 넘어졌던 바로 그 일방주의의 자리에서 이토록 낡은 언론 장악의 망상에 걸려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낙후됨이 오싹할 뿐이다.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 쩔쩔매며,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갸륵할 뿐이다.

비록, ‘책력’을 알진 못하지만 덧붙여 예측을 좀 하자면 미디어법 강행 처리는 아마도 한나라당에게 필패의 가위바위보가 될 것이다. 크게 한판 이긴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사소하게는 언론장악 시나리오로 일컬어지는 일련의 계획들은 모두 꼬이게 될 것이고, 엄청나게는 다시는 정권을 잡지 못할지도 모른다. 당장에 방문진과 KBS 이사를 입맛대로 교체하는데 부담이 따를 것이고, 몇 년 뒤에는 좀 덜 살더라도 한나라당은 안 된다는 각성이 일 것이다. 지금도 가뜩이나 30여개 정도 밖에 안 되는 이사 자리를 노리며 300명 이상이 뛰고 있다는 빈정거림이 있는데, 여기서 탈락한 이들마저 정권을 향해 말을 뱉어내기 시작한다면 언론이 아니라 그 할애비를 장악한들 상황을 극복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리고 ‘소통’을 요구하는 민심에 맞서 ‘장악’을 선택한 부메랑은 어찌되었건 ‘표’로 심판하겠다는 민심의 파고로 덮칠 테다. 끝내, ‘정권 심판’의 구도로 짜여질 내년 지방선거마저 참패한다면… 그 즉시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은 100%이다.

별이 여덟이 되는 날 태어나는 이가 미실을 제압한다고 했다. 의사당이 한나라당으로 가득 차는 날 태어난 법이 바로 한나라당을 제압할 것이다. 당대 가장 뛰어난 정치가였음을 부인할 수 없는 미실은 포악한 지배의 뒷자리에서 설원(전노민)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다함의 매화는 허상일 뿐이라고. 그 균형감각과 양면을 아우르는 카리스마로 미실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여전히, 미디어법이 허상이라고 말할 시간은 남아 있다. 용기 아니 객관적 예측이 필요한 것이다. 강행처리 이후 얻게 될 것과 잃을 것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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