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리 똑같을까?

놀라울 뿐이다. 정권 차원에서 합리성 부재의 정책을 무리하게 펼칠 때마다 어김없이 단순 실수를 가장한 ‘통계 조작’이 존재한다. 노무현 정권 때는 한미FTA가 그렇더니만, 이명박 정권 때는 언론관련법 일자리 창출 날조를 위한 통계 조작이 그렇다. 하기야 현 정권 들어 수치 가지고 장난치며 숫자놀음 한 게 어디 이번뿐인가? 대운하 때도 그랬고, 부자 감세 때도 그랬던 기억이 새롭다.

그럼에도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자행한 이번 통계 조작은 그 죄질이 너무 저질이다. 2004년이나 2005년 또는 2007년과 국내총생산과 견줘보면, 2006년 국내총생산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ITU 제공 통계가 그렇게 돼 있어 그대로 갖다 썼다’는 KISDI의 해명은 ‘파렴치’라는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들이 조작한 ‘0.3%포인트’의 차이가 갖는 맥락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국내 방송광고시장은 2003년 이후 포화상태

▲ 국내총생산 대비 광고 비중 추이
2003년 이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대비 총광고비 규모는 0.9%(0.87~0.96%) 안팎에서 횡보 게걸음을 하고 있다. 광고시장 규모가 국내총생산의 1%를 웃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학계에서는 국내 광고시장 규모가 사실상 포화 상태에 있다고 보고 1%를 밑도는 0.1%포인트 차이의 원인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 왔다. 0.1%포인트가 그렇게 중요했던 것이다.

여러 연구가 있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광고비 지출이 많은 주요 5개국과 비교, 광고통계에 잡히는 70여개 국가를 국내총생산 규모별로 나눈 비교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 결과를 보면 매우 흥미롭다. 먼저, Zenithoptimedia의 <Advertising Expenditure Forecasts June 2007>에 나오는 70여개 국가의 GDP 규모를 상위, 중위, 하위로 나눠 국내총생산 대비 총광고비 비중을 살펴본 결과를 보자. GDP 규모가 상위 3분의 1 안에 들지 못하는 국가일수록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총광고비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달리 말해 저개발 국가일수록 GDP 대비 총광고비 점유율이 상승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상위 3분의 1에 속하는 국가는 횡보 게걸음 또는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여준다.

▲ GDP 규모별 총광고비 비중 추이
광고비 지출이 높은 주요 5개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4개 국가들이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GDP 대비 점유율 평균이 1%를 밑돌고 있으며, 횡보 게걸음 또는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 주요 5개국 GDP 대비 총광고비 비중
왜 0.1%포인트(1%-0.9%)가 상승하지 않는지를 찾기 위한 이런 연구결과는 우리나라 광고시장이 포화 상태에 도달해 있을 가능성이 높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2006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대비 방송시장 규모를 무려 0.3%포인트나 쪼그라들게 했다. 2008년 12월 한나라당의 언론관련법 개정안을 지원하기 위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방송규제 완화의 경제적 효과’에서 2006년 국내총생산 규모를 8880억달러에서 1조2942달러로 바꿔 국내 방송시장 규모가 국내총생산 대비 0.68%로 선진국 평균 0.75%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작한 것이다.

이 연구보고서의 결론은, 규제 완화를 통해 방송시장 규모를 선진국 수준인 0.75%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이 과정에서 2만여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방송시장 규모를 축소한 것이다.

국내총생산을 8880억달러로 놓고 계산하면 우리나라 방송시장 규모는 0.98%로 올라간다. 선진국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결국 방송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는 방송광고 시장이 2003년 이후 국내총생산 대비 0.9% 안팎에서 횡보 게걸음 하고 있다는 국내 방송광고 시장에 대한 진단과 정합성을 갖는다. 따라서 규제를 완화할 경우 한정된 광고시장을 둘러싸고 과열 경쟁이 벌어져 오히려 일자리가 감소할 위험성이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시사점이 도출된다. 실제로 2006년 국내총생산을 8880억달러로 놓고 계산해 보면, 2만여개 일자리가 창출되기는커녕 4만2천여개가 되레 줄어드는 것으로 나온다고 한다.

결국, KISDI는 포화상태에 있어야 할 방송시장과 방송광고 시장을 2만여개 일자리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블루오션’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중세 연금술사도 하지 못한 기적을 행한 셈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참 쉬웠다’. 국내총생산 규모를 0.3%포인트 축소하면 ‘일자리 있으라 하메 일자리 만들어지는’ 하느님의 주문처럼 ‘비비디 바비디 부’가 가능했다. 한나라당은 이런 가증스러운 조작 위에 기반하고 있는 언론관련법 개정안을 다음 주 초반 날치기 처리하려 한다.

꾸물꾸물한 최근의 날씨는 국회에 벼락이라도 쳤으면 하는 저주를 입 안에서 맴돌게 만든다. 혼자만의 것일까? 이런 식으로라도 하늘의 도움을 빌리든지, 아니면 ‘사발을 깰 수 있다’는 불퇴전의 용기를 지금이라도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보이든지, 아니면 수십, 수백명의 언론인이 잡혀 들어가 감옥을 가득 채우든지. 지금은 ‘대안’이라는 허깨비를 찾을 때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대한민국을 멈추게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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