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해고 사태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역사 앞에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법으로 인한 고통의 당사자는 비정규직 자신들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들이 일자리를 잃고 나서야 이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줄 것인가.”

구구절절이 옳은 이야기, 누구의 목소리일까? 뜻밖에 공정언론시민연대, 기업법률포럼, 바른사회시민회의,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자유교육연합 등이 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비정규직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내용이다. 언감생심, 국회의원의 직무유기 고발이 초점이다.

“비정규직법의 시행으로 해고 사태가 예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이를 방치한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고, 그래서 “지금이라도 비정규직의 생존을 위해 국회가 즉각 비정규직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이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은 국회의원들이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당리당략에 열을 올리는 동안 비정규직은 일터를 잃었다. 입만 열면 서민 운운하는 국회의원들이 직무유기, 태업, 파업을 벌이는 동안 서민 중의 서민인 비정규직의 생계는 오간데 없어져 버렸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해고당한 비정규직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을 것인가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아닌 ‘비정규직해고법’이 될 것임이 명백했던 비정규직법을 제대로 된 국회 논의조차 거치지 못하고 시행되도록 한 책임은 분명 추미애 위원장에게 있다.”

“지금이라도 비정규직의 생존을 위해 국회는 즉각 비정규직법을 개정하라. 국회가 500만 비정규직의 생존권을 놓고 계속 직무유기를 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사법적 책임 추궁도 불사할 것이다.”

이처럼 현행 비정규직법이 시행됨으로써 해고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는데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야 할 국회의원들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7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비정규직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바른사회시민회의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건 2년 전의 일이다. 비정규직법의 시행으로 해고, 외주화, 파견, 용역, 도급, 하청 등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관리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딱 7월 1일이 되었다고 대량으로 해고 사태가 일어나는 건 아니다. 사용자들은 비정규직법을 바탕으로 1년 단위, 6개월, 3개월 단위 재계약으로 불안정노동자를 관리해왔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의원들이 7월 1일날 비정규직법을 개정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욕을 먹을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의 직무유기를 고발한 이들의 기자회견, 자세히 보니 뭔가가 빠져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비정규직법을 개정하라고 하면서도 ‘어떻게’라는 내용을 다루지는 않았다.

개정의 방향과 내용은 제시하지 않고 국회의원들이 일을 안 한다고 나무라는 건,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내놓은 개정안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잘 타협하여 빨리 처리하라는 이야기가 된다.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 시행을 4년, 3년, 2년 유예하자고 하다가 최근에는 1년까지 물러섰다. 비정규직법 시행 기간을 유예하자는 건,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기계약직화를 부추기는 일이 된다. 이들이 한나라당의 개정안을 염두에 두고 “일자리를 잃고 나서야 이들의 신음소리를 들어줄 것인가”라고 야단을 친 거라면, 여간 당혹스럽지 않은 일이다.

민주당은 비정규직법 시행을 1년 또는 6개월 유예한다는 입장이다. 추미애 환노위원장은 상임위원장으로서 5자의 합의를 강조한 것 뿐이다. 현행 유지 입장으로 쳐준다 하더라도, 이 법이 정규직 전환 효과가 있는 것처럼, 그래서 법안이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괜찮은 법이라는 식으로 이해해줄 순 없는 노릇이다. 거듭 말하지만 비정규직의 해고와 고용 형태 전환은 상시적이고 주기적인 것이다. 상시적이고 주기적인 관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 현행 비정규직법이다.

이들이 민주당을 겨냥해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양당의 원내대표는 물론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써 이 사태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추미애 의원은 비정규직들 앞에 석고대죄를 해도 시원치 않을 것”이라 야단친 거라면, 이 역시 당혹스런 일이다.

권희경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실장과의 통화, 기자회견의 기조처럼 역시 ‘입법자의 책무’를 강조했다.

“경제위기 상황이 계속되고, 비정규직법의 시행으로 정규직 전환이 어려워 고통이 커지는데 국회는 이를 방치하고 있다. 환노위도 정상이 아니다. 기업의 여건과 근로자가 처한 상황이 다른데 법으로 묶어 놓은 것이 문제다. 개정범위와 내용으로 유예를 다루든 근본 검토를 하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입장에 대해) 그게 최선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재 취할 수 있는 고육책이다. 뭐라도 해줘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