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서민 이미지를 위한 행보의 연장선이라고 해야 할까? 이명박 대통령이 6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자택과 일부 동산을 제외한 331억4200만원을 자신의 아호를 딴 ‘청계’재단을 설립해 사회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먹이진 않았지만 민주당 역시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한 것은 다행”이란 말을 남겼다. 또 MBC <뉴스데스크> 역시 클로징 코멘트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기부를 놓고 그 시기와 배경에 대해 정치적인 해석들이 없지는 않다”면서도 “그러나 여러 해석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곳에 제대로 쓰이기만 한다면 기부란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싶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여하튼 ‘반색’하는 야당 및 언론들의 반응에 비해 네티즌들은 시큰둥하다. 큰 감동은커녕 냉담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 7월 7일 경향신문 사설
실제 포털 사이트 <네이트>에 걸린 경향신문의 ‘재산헌납 취지 제대로 살리려면’ 제목의 사설에는 4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다수의 네티즌들은 “난 전혀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평한다.

급 궁금해졌다. 네티즌들은 왜 이 대통령의 재산 기부를 순수한 뜻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네티즌 반응, “쑈를 하고 있다”

한 네티즌(이홍엽)은 “‘헌납’보단 ‘세탁’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는지…”라며 “세금도 내지 않고 일가친척의 일자리 창출, 세습도 오케이”라고 비판했다. ‘박정희-육영재단’, ‘전두환-일해재단’에 비유하며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재단’이냐고 꼬집었다. 재단을 만들 경우 얻어지는 이익들이 있다는 것을 에둘러 이야기한 것이다.

다른 네티즌(권병준)은 “300억 기부하고 3000억을 가져갈 거란 생각은 안해보셨습니까?”라고 되물으며, 청계재단 설립 후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일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여줬다. 재단설립으로 ‘증여세’, ‘상속세’ 등에 대한 세금면제를 받을 수 있고, 기업들을 동원한 재단 몸짓 불리기, 돈 세탁·정치자금 세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한 네티즌(서현철)도 “기부라는 이름을 이용하여 정치적 ‘쑈’를 하고 있다”며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를 하려 했다면 재단 따위는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네티즌(이상문) 역시 “말 그대로 공공단체에 기부했다면 더 좋았을 걸 자신의 호까지 따서 ‘청계’라고 재단 이름을 붙인 것은 진정성을 의심받기 충분하다”고 평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만든 재단이 시작은 좋은 뜻으로 했으나 비리의 온상이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 네이트에 걸린 경향신문 사설에 붙은 베스트 댓글의 모습
그는 또 “MB는 이번에 그냥 기부한 게 아니라 지난 대선 때 전 재산 사회 환원이란 대국민 약속을 하고 대통령이란 최고의 권좌에 오른 것”이라며 “공약사항이었다”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네티즌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재산 기부를 약속한 것은 대선후보 당시 BBK 등에 대한 무마용이었다며 ‘공약’ 자체의 순수성까지 지적하고 나섰다.

<다음>에서 제공한 “이 대통령 재산기부, 어머니 개인사 영향”(7월 6일)이란 연합뉴스 기사에도 20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로그인’을 비롯한 수많은 네티즌들은 “재단 설립을 기부라고 부르지 마라”고 비판했다.

물론 냉담한 반응에 비하면, 극소수의 의견이지만 칭찬하는 댓글도 발견할 수 있다. 이옥희씨는 “좋은 일은 사심 없이 잘했다 칭찬해야 발전이 있다”고 이야기했고, 한 네티즌(cdsa)도 “그래도 재산 기부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정치적이든 뭐든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약속을 지켰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감동 없는 재산기부는 이명박 대통령 탓

네티즌의 냉담함에 당황스러운 것은 이명박 대통령일지 모른다. 솔직히 기부하겠다는데도 뭐라 한다고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냥 억울해할 일은 아닌 듯싶다. 대통령이 하는 많은 제스처들에 대해 어떤 의도의 유무를 떠나서 국민들은 그 행위들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하기 마련이다. 이번 재산 기부 행위도 예외는 아니다.

허나 네티즌들의 싸늘한 반응을 ‘악성 댓글’ 정도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을 겪어온 이들의 피로감과 앞뒤 맞지 않는 행보에 진저리를 칠 수밖에 없는 조건은 대통령, 그이가 만든 것이다. 게다가 어떤 언론매체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재산 기부의 방식까지 꼼꼼하게 따지고 문제를 지적하고 나선 네티즌이다. 이제야 새삼 ‘서민’ 운운하는 대통령의 이미지에 홀딱 빠질 만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기부에는 감동이 없다. 오죽하면 한 네티즌(먹는샘물)은 “그나마 해마다 단 십억의 임대수익이라도 기부하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조롱하였다.

“미국에서 워런 버핏이 기부하는데 자신의 부동산이든 자산을 하나도 처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산은 그대로인데 재단이란 이름만 바꿔놓고 자산에서 나오는 임대수익만을 기부한다면 우리는 그를 존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아무 대가 없이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써야 한다며 내놓고 그의 손을 완전히 떠났습니다.”

중앙일보에 의하면 청계재단의 송정호 위원장은 “재단의 1년 예상 재원은 11억여원”이라며 “이 대통령이 재단으로 넘길 재산이 대부분 부동산이고, 이들 부동산의 임대수익이 연 11억여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결국 송 위원장 말대로라면 임대수익에 맞춰진 교육지원이란 셈이다.

▲ 7월 7일 중앙일보 4면 기사
우리는 평생 김밥을 말아 번 전 재산 50억 상당의 부동산과 현금 1억을 익명으로 충남대에 기부한 고 이복순 할머니를 기억한다. 할머니는 “돈 없어 공부 못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말은 남긴 채 잠적했다가 뒤늦게 밝혀져 더 큰 감동을 주었다.

결국 네티즌들의 싸늘한 반응은 여전히도 이미지에만 매달리는 것처럼 비치는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기부 태도에 있는 것이다. 친 서민을 주장하는가.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기부에 대한 문제를 꼼꼼히 지적하고 있는 네티즌들과 좀 더 친해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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