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KBS 인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KBS의 각종 현안과 대응책에 대해 논의하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일부를 기록한 메모가 공개된 것이다. 청와대의 '공영방송 장악'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17일 오전 11시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은 KBS 연구동내 언론노조 KBS 본부 회의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언론노조는 청와대가 KBS 인사에 개입하고 보도통제를 자행한 증거자료를 공개했다.

▲17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청와대의 KBS 인사개입, 방송통제 고발' 기자회견 모습. ⓒ미디어스

청와대가 KBS에 개입한 증거 공개…인사개입 정황 명확해

언론노조가 공개한 증거자료는 작고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중 일부로 주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나왔던 내용을 정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노조가 공개한 김 전 수석의 메모는 총 17건이다.

언론노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6월 15일 KBS 정기이사회와 사장 임명 논의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7월 10일까지는 사장 임명이 마무리 돼야 하고, 당시 KBS 이길영 이사장의 이름에 박스표시가 돼 있다. 그리고 이길영 이사장은 8월 27일 건강상 이유로 사퇴했고, 29일 이인호 씨가 이사장으로 내정됐다.

6월 16일에는 "홍보/미래 KBS 상황, 파악, plan 작성"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길환영 전 사장의 사퇴 이후 KBS 사장 선임에 대한 계획을 작성하라고 홍보 및 미래전략수석에게 지시했다는 의혹을 제기된다.

6월 17일에는 언론노조 KBS 본부가 6월 16일 기자협회, PD협회, 경영협회 등 사내 16개 단체와 연대해 새로운 사장 선임을 위한 사장추천위원회 구성을 요구한 내용에 대한 메모가 담겨 있었다. 해당 메모에 따르면 청와대는 외국 사례 등을 검토하고, 수용 곤란 입장을 정한 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과 상의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새 사장 선임 시 사추위와 특별다수제는 6월 30일 열린 KBS 이사회에서 여당추천 이사들의 반대로 부결됐다.

6월 19일과 22일에는 KBS 사장 공모에 대한 점검 메모가 담겨 있었고, 6월 20일 메모에는 2012년 KBS 파업이 무죄로 판결나자, 노조강성화가 가속된다는 기록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언론노조 KBS본부에 대한 동향은 지속적으로 체크해왔다는 얘기다.

6월 26일에는 2010년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 최종보고서의 의문점을 다룬 KBS 추적60분에 대한 방통위의 경고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항소'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이 워딩은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방통위는 서울 고등법원에 해당 사건에 대해 항소했다.

7월 1일에는 KBS 사장 선출과 관련해 응모자 30명 중 6명으로 압축됐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KBS 이사회는 2일 6명으로 후보를 압축했는데 하루 전에 청와대에서 후보 정리와 관련한 대응이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7월 3일에는 "KBS 6명 - 조대현 7"이라는 메모가 등장하는데, 1차 투표에서 당시 조 후보자가 재적 과반을 득표했다는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4일 김기춘 비서실장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고 알려진 메모가 등장한다. "KBS 우파 이사 - 성향 확인 요(要)"라는 메모다. 즉 일 KBS 사장 선출을 앞두고 '조대현'으로 기우는 여당 추천 이사가 누구인지 확인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7월 11일 메모에는 '면종복배'라는 단어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공공기관 개혁이라는 메모에 면종복배라는 단어가 적혀 있고, 줄을 그어 KBS 이사라고 적어놨다. 9일 여당 추천 이사 2명의 이탈로 조대현 씨가 KBS 사장으로 선출되자 KBS 이사들을 면종복배하는 사람들로 꼽은 것이다.

앞서 7월 2일에는 "문창근 KBS 보도 - 중징계 - 방심위"라는 메모가 등장한다. KBS는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가 교회에서 발언하는 영상을 뉴스에서 방송해 문 전 후보자의 총리직 낙마에 기여했다. 이 방송에 대해 방심위 보도교양특별위원회는 경고 등의 중징계 의견을 냈는데, 이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8월 28일에는 "방심위, KBS 보도(문창극) - 천체회의에 회부"라는 메모가 적혀있다. 전날 방심위가 KBS의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 관련 보도'를 전체회의 안건에 상정한 것을 체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9월 5일 "방심위, 문창극 관련 '지도'"라고 적힌 메모가 발견된다. 이 역시 4일 방심위가 권고 처분의 행정지도를 내린 것을 체크한 것으로 보인다. KBS를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증거다.

8월 14일에는 "KBS, VIP 행적 보도"라는 메모가 등장한다. 13일 KBS 뉴스9에서 청와대가 세월호 국조특위에 밝힌 세월호 사건 당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메인뉴스에서 보도한 것을 지목한 것으로 추정된다.

10월 15일에는 "KBS 이사장 선정과정 BH 개입"이라는 메모가 등장한다. 이 또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워딩을 그대로 적은 메모로 알려졌다. 전날인 14일 야당 문병호 의원이 청와대 압력에 의해 절차까지 위반해가며 이인호 씨가 KBS 이사 및 이사장으로 선출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한 메모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청와대에서 KBS를 지속적으로 관리·감독, 때로는 보도에 대한 대응과 함께 인사에까지 개입하면서, 공영방송 KBS를 장악하고, 언론을 통제하려는 야욕을 드러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증거자료들이다.

결국 문제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이날 폭로된 청와대 인사개입을 비롯해 공영방송 KBS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청와대가 KBS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청와대의 KBS 인사 개입 의혹은 지난해 11월 강동순 전 KBS 감사가 '청와대 낙점설'을 폭로하면서 제기됐다. 당시 강 전 감사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추석 연휴 때 김성우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이사 2명에게 전화를 걸어 고대영 씨(현 KBS 사장)을 후보로 검토해달라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6월에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대표)이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를 바꿔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폭로돼 논란이 인 바 있다.

이처럼 KBS에 대한 청와대의 각종 개입이 이뤄진 배경에는 친정부적인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있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KBS 이사진은 여당 추천 이사 7명, 야당 추천 이사 4명으로 구성돼 있고, 이들이 KBS 사장을 임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임명된 사장이 다시 KBS의 인사권을 휘두르게 된다. KBS 자체가 청와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야당은 이러한 구조를 타파하고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조치를 담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을 발의 했다. 그러나 야당이 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현재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계류 중이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지금 국회에 공영언론 지배구조 개선 관련 법안이 국회의원 162명의 서명으로 제출돼 있는데, 새누리당에서 논의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법안에 KBS 여야 추천 이사 7:6 안이 있는데 그것도 불안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메모에 면종복배라는 말이 나오는데, 한 두 명의 이탈표가 불안하고, 그래서 국회에서 이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이 메모가 등장한 2014년부터 이미 이런 기조를 가져갔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환균 위원장은 “17개 밖에 안되는 짧은 메모들이지만, KBS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김영한 전 수석의 메모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오늘 기자회견의 핵심”이라면서 “이미 법안이 제출돼 있고, 여야가 2013년에 어느정도 합의를 이룬 법안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하루 빨리 이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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