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언론사에 각종 보도자료를 제공한다. 따라서 정치부 기자들의 메일에는 언제나 현역 국회의원부터 재야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홍보 메일들이 쏟아진다. 국회의원 보좌진 중에는 홍보 담당이 존재하는데, 그들이 보내는 메일에는 자신이 보좌하고 있는 의원 사진이 첨부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리고 기자들은 해당 보도자료를 받아 뉴스 가치가 있는 것들을 기사화하고 사진을 받아 게재하기도 한다. 물론 언론사가 자료의 출처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4일 국민일보에 보도에 삽입된 사진. 국민일보는 뉴시스 사진기사를 캡처해 사진 출처 부분을 붉은 박스로 표시했다. 그런데 해당 사진에는 사진설명과 출처가 없다. (사진=국민일보 홈페이지 캡처)

[미디어스=전혁수 기자] 14일 국민일보는 <손학규의 근황은 이 제공사진 덕에 더 화제다-신은정 기자> 기사를 게재했다. 해당 기사에서 국민일보는 "12일 광화문 등지에서 열린 3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손학규 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언론사에 제공했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뉴시스의 사진기사를 캡처해 올렸는데, '사진=손학규 제공'이라고 출처가 표시된 부분을 붉은 박스로 처리해 강조했다. 또 뉴시스 보도를 캡처해 올렸으나 사진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14일자 국민일보 보도에 등장한 사진. 사진 출처를 밝히는 부분에 '손학규가 뉴시스에 제공한 사진'이라고 돼 있다. 사실상 출처를 알 수 없다. (사진=국민일보 홈페이지 캡처)

아울러 자신들이 자체적인 사진 2장 올렸는데 사진 출처를 밝히는 캡션에 '사진=손학규가 뉴시스에 제공한 사진'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일반적인 사진출처 설명과는 다르다. 형식도 다르고 의도가 보이는 설정이다. 손학규 전 대표가 자신의 사진을 스스로 언론사의 제공한 것에 대해 조롱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물론 손학규 전 대표는 자신의 공보라인을 통해 언론사에 사진을 제공했을 것이다.

해당 기사에는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SNS에 손학규 전 대표와 관련된 의견을 밝힌 글도 실렸다. 정 전 의원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은 <손학규 사진, 손학규 제공>이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SNS. 박스친 부분에서 '손학규 사진을 손학규가 제공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진=정청래 전 의원 트위터, 페이스북 캡처)

정청래 전 의원은 연합뉴스가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손학규 전 대표를 보도한 연합뉴스의 사진기사를 게재했다. 해당 사진에서는 사진제공처에 대해서 '손학규 전 고문 측 제공=연합뉴스'라고 밝히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정 전 의원은 "재밌네요.ㅋㅋㅋ"라는 멘트를 적었다.

또 다른 SNS에는 "이 양반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기자가 사진을 찍어주지도 않고 손학규 사진을 손학규가 제공하다니..."라고 적었다. 자신의 사진을 자신이 제공한 것에 대한 조소로 풀이된다.

그런데 정청래 전 의원 역시 종종 자신의 사진을 언론사에 제공한 바 있다. 당장 인터넷 포털에 '정청래 제공'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면 정청래 전 의원이 언론사에 제공한 사진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이 역시 정 전 의원 측 관계자가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청래 전 의원이 정치인들의 사진제공 관행과 사진출처를 밝혀야 하는 언론사의 입장을 몰랐을 리도 없다. 그럼에도 정 전 의원이 '내로남불'식의 글을 SNS에 올린 것은 표현의 자유를 떠나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당장 정치인의 SNS는 국민들이 언제나 주목하고 있다. 기자들에게는 독자들이 관심 있어 할 수 있는 기사거리가 제공되는 곳이다. 그만큼 정치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히되, 동시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과거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공해 사진기사화된 사진들. (사진=연합뉴스 보도 캡처)

그렇다면 이에 대한 언론대응 담당자들과 일선기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모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한 비서관은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의원실이나 공보라인에서 언론사에 사진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일선기자들도 "이게 왜 기사거리냐"는 반응이다. 사진을 제공받은 출처를 표시하는 것이 왜 조롱의 대상이 돼야 하냐는 얘기다.

한 뉴스통신사에서 사진기자로 근무했던 B기자는 "제공받은 사진의 경우 저작권자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연합뉴스, 뉴시스 등이 보도한 손학규 전 대표의 사진기사의 경우도 일반적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국민일보의 기사를 읽어봤다고 밝힌 유력 인터넷매체 소속 C기자는 "악의적 의도가 다분해 보이고, 기자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면서 "정치인들 관행이 사진을 제공하고, 다만 손학규 전 대표의 경우 의원 직함이 아니라서 의원실 제공이라고 하지 않은 건데 이게 기사거리가 되는 거냐"고 반문했다.

C기자는 "이걸 또 정청래 전 의원이 이렇게 SNS에 글을 올렸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과거 정 전 의원도 이런 식으로 홍보물을 뿌렸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거냐. 그런 것도 비웃어줘야 하는 것이냐"면서 "왜 이런 기사가 주목받는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모 일간지에 근무하는 D기자는 "손학규 전 대표가 뚜렷한 직함이 없어 후원조직과 함께 활동하는 탓에 사진출처가 불분명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런데 이를 문제 삼아 도덕성을 운운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보도를 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담긴 기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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