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헌정유린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5%까지 떨어지는 등 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는 요구를 담은 집회가 열렸는데, 주최 측 추산 지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인 100만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12일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운 박근혜 퇴진 집회 인파. (연합뉴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15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정연국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하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후속조치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고심하고 있다"면서도 "하야나 퇴진은 아니고, 정국 정상화를 위한 후속조치"라고 밝혔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를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4일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는 "(박근혜 대통령은) 5000만 명이 촛불을 들어도 하야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겠다면, '탄핵'으로라도 박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주 비박계 좌장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박근혜 탄핵' 카드를 꺼내들자, 비박계를 중심으로 새누리당 내부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국민의당도 박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할 수밖에 없다는 당론을 채택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박 대통령의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탄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은 탄핵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15일자 중앙일보는 <헌재 탄핵 심판에만 180일…의원 200명 확보도 장담 못해>라는 기사를 통해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15일자 중앙일보 보도.

해당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의 발언을 빌어 "아직 대통령의 혐의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을 추진하기는 애매한 상황"이라는 내용을 실었다. 탄핵을 하기는 아직 법적 근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검찰에 의한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는 이번 주 안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순실 씨에 대한 공소장이 18일, 늦어도 다음 주에는 제출될 것으로 보여, 박근혜 대통령은 참고인으로 반드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자신에 제기된 일부 혐의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검찰 조사에서 진술한 상태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의 신분으로 인해 형사상 소추는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된다. 따라서 최순실 씨의 공소장에는 결국 '박근혜'라는 세 글자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가 우려한 법적으로 미흡한 탄핵요건은 빠르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 안으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탄핵안을 가결하려면 의원 200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야 3당과 무소속 의원 171명 전원이 탄핵에 찬성해도 새누리당 의원 중 29명이 추가로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면서 "야당으로서는 새누리당 비박계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또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관측이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 카드를 거론한 당사자가 김무성 전 대표라는 점이다. 비박계 좌장인 김 전 대표가 박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비박계 내에서 탄핵 여론이 힘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14일 비박계 내에서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논의가 오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날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도 "비박에서 탄핵을 얘기했다"면서 "물밑대화를 종합하면 (새누리당에서 탄핵 찬성표가) 40여석은 확보가 가능한 것으로 예상한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헌재가 보수적"이라는 주장도 내놨다. 중앙일보는 "탄핵이 효력을 가지려면 국회에서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가 필요하다"면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도 헌재가 기각하면서 무효가 됐다"고 말했다. 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SNS 글을 인용해 탄핵이 어려운 이유로 현재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 측에서 추천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 문제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헌재는 선례를 만들어내는 기관이기 때문에 여론을 중요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대통령 탄핵과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국민 여론을 강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다. 헌재가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탄핵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중앙일보가 제기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유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차원이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정치 중립 의무 등의 경우였던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사인에게 무단으로 이양한 '헌정파괴'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상적인 보수적 성향을 가진 헌재 재판관들이라면, 더욱 분노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JTBC도 14일 오후 '팩트체크' 코너에서 <"해법은 탄핵 뿐" 비박계의 주장 따져보니>를 통해 비박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JTBC 역시 중앙일보와 비슷한 내용의 보도를 이어갔는데, 눈에 띠는 것은 바로 '시간'에 대한 문제였다.

▲14일자 JTBC 팩트체크.

JTBC는 "여야가 합의한 특검이 120일, 헌법재판소 심판에는 길게는 180일이 걸리며, 대통령 보궐선거는 60일 정도 소요된다"면서 "이걸 다 더하면 360일, 거의 1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물론 특검과 동시에 탄핵이 추진되거나 헌재가 일정을 서두르면 조금 단축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360일, 거의 1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은 섣부른 예상이라는 지적이다. 일단 특검 기간으로 잡은 120일의 경우 이 기간에서 제외할 수 있다. 이미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에는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조사를 시작할 것으로 보이고, 최순실 씨에 대한 공소장에 박 대통령의 이름 석 자가 들어갈 것은 확실시 된다. 굳이 특검을 하지 않아도 일단 탄핵 사유를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헌재 심판 180일도 지나친 억측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헌재에서 약 2달 만에 기각 판결을 받았다. 또한 대통령 보궐 선거기간 60일은 하야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따라서 서둘러 탄핵 절차를 진행한다면, JTBC의 보도처럼 다음 대선이 다가올 정도로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JTBC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JTBC는 "탄핵소추위원은 다름 아닌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다. 국회 법사위원장이기 때문"이라면서 "물론 권 의원의 중립성을 의심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객관성 논란을 배제할 수는 없는 미묘한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묘하다면서 선을 긋기는 했지만, 새누리당 소속인 권성동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위원직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권성동 의원은 대표적인 비박계 의원이다.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지 않으면 애초에 탄핵정국 자체가 형성 불가능하다. 그리고 탄핵정국이 형성돼 있다면 권 의원 또한 이 대열에 동참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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