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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섭 자르기’로 시작된 KBS 장악 도미노[신태섭 판결, 그리고 3가지 단상] 국가권력의 KBS 가해 1년
유영주 객원기자 | 승인 2009.07.03 09:43

2008년 9월 17일 밤. 이병순 KBS 사장은 사원 95명을 전격 인사 발령했다. 인사 대상자 95명 중 KBS노조 집행부는 1명도 포함되지 않았고, 47명이 KBS사원행동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돼 보복성 인사 논란을 불렀다.

수신료 프로젝트팀의 최용수 PD는 부산에서 올라온 지 4년 만에 다시 부산총국으로 발령났다. 최용수 PD는 “예상은 했고 올 것이 왔지만 당혹스럽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공영방송 KBS 내부 구성원들의 의지를 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 오산이다. 내부가 더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부산으로 쫓기듯 내려갔다.

   
  ▲ 27일 오전 KBS본관 앞에서 이병순 KBS 신임사장(원 안)이 취임식장에 가기 위해 청원경찰을 동원해 'KBS사원행동'의 출근 저지를 뚫고 본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안현우  
 
2008년 8월 16일, 이명박 대통령은 이동관 대변인, 청와대 출입 정치부 기자들과 청와대 뒷산에 올라 KBS 사장으로 김인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동관 대변인은 매우 놀랐다. 산행을 끝낸 후 이동관 대변인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전화를 했고 대책을 강구하라고 요청했다. 다음날인 17일 오후 2~3시경, 최시중 위원장이 김은구, 유재천, 최동호, 박흥수 등에게 전화를 해 저녁 7시에 롯데호텔에서 만남을 가졌다. 17일 모임에서는 유력하게 거론되던 김은구 전 이사가 후보군에서 빠졌고, 이병순 현 사장이 선택됐다.

2008년 7월 1일. 동의대는 신태섭 전 KBS 이사를 해임했다. 학교 허락 없이 KBS 이사직을 맡고 그 활동 탓에 수업에 지장을 주었다는 이유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7월 19일 강성철 교수를 긴급 추천했다. 방통위는 사립학교법상 징계에 의한 해임으로 KBS 이사 자격에 결격사유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KBS 이사진에 정연주 전 사장의 퇴진을 추진한 친여 이사는 7명으로 늘어났다. 8월 8일 이사회는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을 6대0으로 통과시켰고, 8월 25일 임시이사회는 (청와대의 입김에 따라) 이병순 사장을 임명 제청했다.

   
  ▲ 2008년 8월 8일 KBS 이사회는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KBS 본관 3층 회의실 앞 복도에서 경찰들이 KBS 구성원들을 밀어내고 있다. ⓒ윤희상  
 
전광석화라는 말은 이런 때 어울리는 말이다. 정권의 KBS 방송 장악은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이루어졌다. 이사회 장악부터 반발하는 구성원들의 징계가 이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달 반. 6월 11일 KBS를 불밝힌 촛불, 13일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마포대교를 건넜던 촛불에게는 절망의 기억을 안겨주었다.

2008년 6월 23일. 경향신문에서 열린 ‘민주주의와 공영방송, 그리고 미디어공공성’ 토론회에서 김현석 KBS 기자협회장은 “오늘자 한겨레21에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KBS노동조합이 5월초에 설문한 결과라는데 62%가 정연주 사장 임기를 지키는 게 좋겠다, 27%가 그만 두는 게 좋겠다 라고 되어 있더라”라고 말하고 “6월 11일 처음 KBS 앞 촛불집회를 하겠다고 했는데, 정연주가 좋은 게 아니다, 정연주가 잘 했다는 게 아니었다. 5년 동안 노무현 다음으로 씹은 게 정연주였다. 국민들은 정연주가 왜 안 나가나 의아했는데, 촛불집회 시민들과 이야기해보니 정연주가 이뻐서가 아니라 저쪽이 너무 나빠서라고 한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 바 있다.

   
  ▲ 이병순 KBS 사장ⓒKBS  
요약하면 이렇다. 촛불은 공영방송을 지키려 했지만 뒷심이 달렸다. 정권은 공영방송 장악에 나섰다. 방통위는 이사회 장악을 위해 신태섭 전 이사를 정리했다. 이사회는 정연주 전 사장을 몰아내고 이병순 사장을 임명했다. 사원행동은 절차와 과정, 내용과 맥락 모두를 문제 삼았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저항했다. 이병순 사장은 저항에 나선 구성원들을 징계했다. 상황 끝.

모두가 절차를 밟아 이루어졌다. 절차를 밟는 과정이 폭력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의체제에서 절차란 요식에 불과할 수 있으며, 다수가 휘두르는 폭력에 항시 관대하다. 절차는 일종의 ‘재판’이다. 다수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합법화하는 과정으로 위치지어진다. 방송의 독립성 같은 가치는 안중에도 없이 KBS의 체질을 변화시키겠다는 기획부터가 폭력인 탓에, 관철되는 과정에서 폭력은 필연적이었다. 현실에서 이보다 더 극한 폭력은 얼마든지 발견된다.

2008년 말 시민단체가 요약한 언론7대악법을 포함한 MB악법 22선은 MB식 폭력이 대의체제를 바탕으로 어떻게 구현되고, 그 결과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형시킬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고발했다. 불안은 치명적이었다. KBS가 어떻게 망가지는가를 두 눈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22개 악법이 요소요소에 KBS와 같은 방식으로 관철될 수 있다는 암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시즘’을 다룬 문화과학 2009년 여름호에서 편집부는 파시즘X의 출현을 제기했다. 편집부는 “이명박 정권은 언제든지 새로운 ‘파시즘X’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 정권이 장담하는 것과 달리 한국 경제가 금년 하반기에 ‘U’자형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L'자형 패턴을 취할 경우, 또 대다수 국민들이 탈정치화 되어 먹고사는 문제에만 매몰될 경우, 이 두 조건을 우파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파시즘X가 출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내다봤다.

파시즘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떠나, 국가(권력)가 폭력을 기획하는 순간, 사회구성원은 폭력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고, 폭력의 관철 과정은 이성과 합리를 마비시키며, 이렇다 할 저항이 없다면, 폭력과의 타협은 일상이 된다. 그리고 그 피해는 모두 개인의 몫으로 분배된다.

폭력의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대체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가능성, 그건 오직 피해받는 당사자의 머리와 심장에서 비롯된다. 다만 아직은 뭐라 할 때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 전 동의대 교수이자 전 KBS 이사였던 신태섭씨 ⓒ오마이뉴스 윤성효  
신태섭 전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언론에서 많이 보도가 되어서 특별히 할 이야기는 없네요. 오래 되어서 익숙해졌어요. 해임 무효는 지난 1월 부산지법에서도 판결이 나왔고 7월 8일 고법 판결을 앞두고 있고요, 이번 판결은 행정심으로 강성철 이사 취소 판결인데, 판결이 나도 학교나 방통위로부터 연락이 오거나 하지는 않아요. 기대하지도 않고요. 어쨌든 KBS 장악 과정이 잘못 됐다는 것을 법률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고, 작은 가능성이 아닌가 싶어요.”

최용수 PD에게도 안부를 물었다.

“(부산총국에서) 시사프로그램 열심히 만들고 있어요.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지역이라 조금 나은 것 같아요. KBS를 바라보는 밖에서의 시선이 느껴지는데, 이번에 재개발 관련 시사다큐를 만들면서도 그런 외부의 시선 때문에 편집하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국가 전체가 불통 단계로 넘어가는데, 정말 나쁜 건 언론이 이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짚고 대안의 실마리를 던지지 못하고 있다는 거죠. 한국 사회 자체가 보수는 보수, 진보는 진보로 나뉘어 공동체적 가치에 기반한 상호 수용의 계기가 없어졌어요. 특히 KBS는 양비, 양시론에 빠진 채 무책임한 게 너무나 슬픕니다. 어떻게든 뭔가 해보기 위해 뛰어다니긴 합니다만….”

유영주 객원기자  combycom@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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