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 이후 정국이 요동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제안하고 청와대가 이의 수용을 밝히면서 또 다른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당장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이에 반발하고 나선 상태에서 야권공조 등 이후 상황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추미애 대표의 양자회담 제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출구전략’의 차원이다. 지난 주말 100만 명이 모인 촛불시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형식으로든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게 ‘상식적 주장’이 된 상황이다. ‘국정에서 손을 뗀다’는 것과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크게 세 가지 해법을 논의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첫 번째는 하야, 두 번째는 탄핵, 세 번째는 2선 후퇴이다.

하야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현실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선택할 경우 기밀 누설과 뇌물 수수 등 국정농단 행위에 대한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치는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퇴임 이후 이 문제에 대한 검찰 조사를 피할 길은 없다. 다만, 이후의 정국에 따라 후임 대통령과 ‘정치적 거래’를 시도하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이 문제가 적절히 관리될 수 있는 수준의 상황이 조성되기 전 까지는 스스로 하야를 선택할 수가 없다.

국회가 탄핵을 하는 문제의 경우 두 가지 측면의 문제가 발생한다. 첫 번째는 새누리당 비박계 일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지난 주말 촛불시위 이후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등이 탄핵 불가피론을 들고 나오면서 사실상 해소되는 분위기다. 두 번째 문제는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이후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사유의 위헌 여부를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황교안 대리 정권’이 장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2선 후퇴’의 경우 용어의 의미 자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일단 청와대는 지금까지 국회가 추천하는 인사를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헌법상의 권한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외교 안보와 관련한 권한까지 포기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지난 주말 촛불시위 이후 이러한 입장은 거의 모든 권한을 총리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것으로 후퇴하는 양상이다. 청와대의 이러한 입장 변화는 야권과의 ‘합의’에 근접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야권으로서는 두 가지 선택지를 눈앞에 둔 셈이다. 첫 번째는 청와대의 입장 변화에 따라 대통령의 2선후퇴와 국회 추천 총리의 임명, 거국중립내각의 구성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청와대의 입장 변화에도 불구하고 100만 명이 모인 촛불시위의 민심을 받아들여 당장 하야 촉구·탄핵 추진의 길로 가는 것이다.

추미애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은 이 두 가지 길 중 어느 쪽으로 갈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추미애 대표는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겠다는 명분을 언급하고 있다. ‘민심’이란 지난 주말 촛불 집회에서 확인된 것이며, 그 실제 내용은 ‘하야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주장대로라면 추미애 대표는 대통령에게 “하야하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앞서 확인했듯, 박근혜 대통령이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하야를 결정할 확률은 0%다. 만약 영수회담에서 성과가 없으면 추미애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당장 국회에서의 탄핵 절차 돌입 수순으로 가야 할 것이다.

추미애 대표의 제안은 야권 내의 주도권 다툼이라는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먼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의 반응에 주목해야 한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14일 추미애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과연 야권공조는 어떻게 하고, 국민이 염려하는 대로 야권의 통일된 안이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발언했는데, 이 자리에서 그가 언급한 ‘로드맵’을 잘 뜯어볼 필요가 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탄핵 절차에 돌입하더라도 황교안 총리가 권한을 대행해 사실상의 박근혜 정권이 연장된다면서 박근혜 대통령 탈당, 3당 대표 영수회담을 통한 국무총리 합의, 개헌을 통한 대통령 선거 등을 언급했다.

문제는 ‘3당 대표’와 ‘개헌’이란 대목에 있다.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권한을 위임받을 총리 인사를 논의하는 자리에 새누리당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 구상대로라면 이렇게 탄생한 국무총리는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결국 중립적 포지션이면서 개헌에 적극적인 인사를 찾는다면 애초에 언급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나 현재 당적이 없는 손학규 전 의원과 같은 인사가 국무총리를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경우 이 사람들을 더불어민주당 주류가 전혀 선호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대권가도에 방해가 될 거라는 인식 때문이다. 분권형대통령제나 내각제로의 개헌을 추진할 경우 ‘야권 1등’인 문재인 전 대표로서는 결국 손해라는 점도 이러한 인식의 근거가 되고 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우 개헌을 고리로 손학규 전 의원 등과 연대할 수 있고 이 국면에서 개헌 반대 입장인 문재인 전 대표는 사실상 고립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마찬가지의 인식을 문재인 전 대표 측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주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의 문자 메시지가 공개된 것 역시 이 사태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자 메시지의 경우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충성’ 등의 표현을 써가며 친근한 척을 했다는 이유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그 다음 대목은 더 큰 문제다. 이 대목을 통해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정현 대표가 12일 조찬회동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를 종합해보면 결국 추미애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은 국민의당을 제치고 이후 정국을 통제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 물론 정치세력이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자기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이를 통한 정치행위를 적극적으로 이어나가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현실정치세력에게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행위는 명분을 지키면서 자기 이득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추미애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이 이런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더불어민주당이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15일로 예정된 영수회담의 결론이 대통령의 2선후퇴 및 거국중립내각 구성이라는 청와대의 구상에 더불어민주당 측에 유리한 몇 가지 안을 첨부하는 것 정도라면 그 정치는 결국 실패하고야 말 것이다. 반대로 이 영수회담이 야권 전체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국회에서의 탄핵까지 추진하는 길로 어떻게든 이어진다면 국민들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추미애 대표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 100만 명이 모여 외친 ‘민심’의 정체가 무엇인지 가슴에 새겨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