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자진 하야하거나 탄핵해야 한다는 여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실이 밝혀진 직후인 지난달 25일 조사에서 하야 또는 탄핵 찬성여론은 42.3%였고, 11월 2일 조사에서는 55.3%, 11월 9일 조사에서는 60.9%로 올랐다.

그 사이 대통령이 두 차례 사과했고, 김병준 교수를 책임총리로 지명했고, 국회를 방문해 새로 총리추천을 요청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민심과 동떨어지고, 찔끔 찔끔 물러서는 모습이 역풍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당연한 일이다.

정치권도 이젠 소수가 된 새누리당의 친박계를 제외하면 여야 구별 없이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바로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 권한을 넘기고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갈린다. 퇴진 주장은 다시 자진 하야와 탄핵으로 나뉜다.

대통령은 아직까지 그 어느 주장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국회에 총리추전을 요청할 때도 야당이 함께 요구한 2선 후퇴와 새누리당 탈당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야당들이 거부할만하다. 그러나 야당이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운데),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9일 국회 사랑재에서 야3당 대표 회담을 하기에 앞서 인사하며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은 현재의 국면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 민심을 따른다는 말로 포장하면서 국민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국정을 위임하는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했지만 처음부터 명확한 요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자꾸 새로운 조건을 붙이면서 오락가락하다는 인상까지 주고 말았다.

지난주 3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섰다. 12일엔 훨씬 더 많은 시민이 나설 것이다. 야당도 참여한다고 한다. 모든 관심이 여기에 쏠리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선 대통령의 반응이다. 박 대통령이 만약 계속 요지부동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크다. 2선 후퇴도 그렇지만 더더구나 하야는 선택항목에도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국민의 대응이다. 계속 시위를 조직하는 방안이다. 최소한 당분간은 필요할 것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거나 입증된다면 민심의 2차 3차 폭발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불확실하다. 날씨는 추워지고 곧 연말이다.

검찰 수사에서도 특별한 게 나오지 않는다면 국정공백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질 것이다. 현재의 응집된 힘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혹시 강제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87년 6월 항쟁의 힘으로도 얻어낸 것은 기만적인 6.29선언이었다.

둘째, 야당의 대응이다. 일단 국민들과 동조해 함께 퇴진 시위를 벌이는 방안이다. 앞서 언급한 같은 이유로 지속능력이 의문이다. 또한 정치의 의무는 민심과 함께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푸는 것이다.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때처럼 역풍을 걱정하는 모양이다. 기우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헌정중단이 아니다. 헌법을 파괴하는 대통령으로부터 헌정을 지키는, 헌법이 보장한 유일한 방법이다. 탄핵안 통과에 필요한 의석수가 부족하고, 최종 판결을 담당한 헌법재판소의 구성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탄핵안을 발의하고 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정치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새누리당의 일각이 무너질 수도 있다. 헌재 재판관들이 여론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다. 현실적 위협이 닥쳐야 박 대통령과 그 주위를 움직일 수 있고, 정치력이 작동해 새로운 조정국면이 만들어질 수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민중총궐기 본부 주최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촛불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셋째, 시민사회와 원로들의 대응이다.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줄었지만 여전히 여론의 향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역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빛을 발할 수 있다. 4.19때도 학생들의 희생이 중심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결정적으로 이끌어낸 것은 교수들의 시위였다.

시민사회와 원로들이 비상시국회의를 구성해야 한다. 현재 광화문 시위의 지도부는 너무 좁다. 이와 별개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 인사를 망라해야 한다. 어버이연합류의 보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합리적 보수 인사들이 박 대통령에 대해 침묵했던 것을 반성하고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까지 포괄하는 비상시국회의가 되어야 국민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을수 있고, 새누리당의 개혁그룹까지 움직일 수 있다.

비상시국회의는 팽팽한 대치국면이 길어질 때 결정적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부터 만에 하나 헌정중단 상황이 벌어질 경우 과도기적으로 권력공백을 메우는 역할까지를 준비해야 한다.

일각에서 보수세력 배제나 새누리당 해체와 같은 주장이 나온다. 좁은 생각이다. 국정농단을 막지 못한 새누리당의 반성은 필요하다. 친박처럼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새누리당 내의 극단적인 세력은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합리적 보수세력과 새누리당의 나머지 세력을 끌어안지 않으면 현 사태를 풀기 어렵다.

상황을 바르게 보고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그람시의 말처럼 '낙관적 의지와 비관적 지성'이 함께 필요하다. 냉정의 도움을 받지 않은 열정은 종종 무모함이 되고, 그 반대는 패배주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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