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이 9일 오후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미국 대선 관련 오보 때문이다. 시사인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미국 대선 승리를 예측해 내각 구성에 관한 기사를 썼다가 오보를 냈다. 시사인은 "저희도 몰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니... 지난주 금요일 마감한 478호 '클린턴 내각 누가 누가 입성하나' 기사는 바로 잡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보입니다("이러려고 국장된 게 아닌데"라며 현재 편집국장은 자괴감에 빠져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해당 글에는 "괜찮아요. 슬프지만 힘내요 시사인" 등의 격려부터 "구질구질한 변명"이라는 등의 혹평까지 다양한 댓글들이 달렸다.

▲9일 시사인의 오보 사과문. (사진=페이스북 캡처)

[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이번 미국 대선에 대한 오보는 시사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사인이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기사를 작성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은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가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보수언론도 진보언론도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다.

대다수의 한국 언론들의 예측과는 달리 미국 대선의 승자는 공화당의 트럼프였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시사인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당선을 두고 "대이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언론들은 잘못된 예측을 했던 것일까.

한국 언론은 외신 중 주류매체만 선별해서 보도한다

가장 큰 원인은 한국 언론이 미국 언론을 선별해서 인용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언론들은 뉴욕타임즈(NYT), LA타임즈(LAT), 워싱턴포스트(WP),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NBC 등의 미국 주류 언론의 보도를 주로 받아 기사화하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미국 주류 언론이 어떤 성향을 띠느냐다. 이들은 대체로 친 민주당 성향을 가진 매체들로,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CNN은 클린턴 뉴스 네트워크라는 조롱까지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도들이 여과 없이 한국 언론에 그대로 반영됐다. 반론보도를 하더라도 그 분량은 매우 적었고, 제목에서 나타나는 대표 주제는 늘 '힐러리의 우세'였다.

▲10일자 조선일보 보도.

이 같은 사실은 10일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한국 매체들의 인용보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보수언론들조차도 대부분 앞서 언급한 매체들을 인용하고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WP, CNN, NYT, LAT, WSJ 등을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10일자 3면에 <체면 구긴 언론·여론조사기관>이라는 기사를 게재하고, NYT, 프린스턴 선거 컨소시엄, 허핑턴포스트 등을 거론하며 미국 주요 매체와 여론조사기관이 대선 결과 예상에 실패했다고 혹평했지만, 정작 자신들도 미국 주류 언론의 보도를 받아 적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상반된 여론조사 결과에도 주류매체 조사만 받아 써

이처럼 미국 주류 언론만 따라가는 보도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언론의 미국 대선 보도는 모든 분야에서 힐러리의 압승이 확실한 것처럼 보도됐다. 미국 대선 TV토론회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보도를 보면 그 문제를 알 수 있다.

9월 1차 TV토론 후 한국 언론은 힐러리의 '압승'이라는 보도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CNN이 미국 여론조사 기관 ORC와 진행한 1차 TV토론을 누가 더 잘했는지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가 62%의 지지를 얻어 27%의 트럼프를 멀찌감치 따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각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 힐'의 여론조사 결과는 달랐다. 1차 TV토론에 대한 더 힐의 여론조사 결과는 트럼프 48%, 힐러리 46%로 트럼프의 근소한 승리로 나타났다.

▲지난 9월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1차 TV토론 결과를 힐러리의 압승이라고 전하고 있는 한국 언론들. (사진=네이버 캡처)

2차 TV토론도 마찬가지 였다. 2차 토론 후 CNN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힐러리 57%, 트럼프 34%로 힐러리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역시 힐러리가 46%, 트럼프가 35%로 10%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폭스뉴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7%가 트럼프가 승리한 토론이었다고 밝혔고 2차 토론을 힐러리의 승리로 평가한 응답자는 43%에 그쳤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힐러리의 TV토론 압승을 주제로 기사를 작성했고, 트럼프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 결과는 쓰여지지 않거나, 기사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참고 정도로만 쓰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사들을 기반으로 정치전문가들이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 등의 각종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힐러리의 압도적 우세를 점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나 '더 힐' 등은 한국 언론의 인용 대상이 아니었다. 그나마 친 공화당 성향의 '폭스 뉴스' 정도만 기사 뒤편에 잠깐씩 등장했다.

국제부 경시하는 언론…'예고된 보도실패'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예고된 보도 실패'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한국 언론의 '국제부 경시'의 관행이 불러온 결과라는 얘기다.

국제부는 생활 리듬이 일반적인 부서와는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자들이 기피하는 부서 중 하나다. 미디어스가 취재한 복수의 기자들은 대부분의 언론사에 국제부를 경시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국제부 기자를 '아르바이트'로 모집하고 있는 한 매체. 이 매체는 신화통신을 해외통신사로 계약해 사용하고 있다. (사진=사람인 채용정보 캡처)

유력 인터넷 매체에서 국제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A기자는 "국제부는 애초에 번역 전문으로 입사한 기자가 아니라면, 좌천부서의 성격이 강하다"면서 "다른 기자들과 종종 얘기를 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유력 경제지 소속 B기자는 "우리 회사에서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제팀 자체를 없애버렸다"면서 "현재는 온라인뉴스팀에서 해외 증시, 중요 사건 정도만 송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매체들은 국제부 기자를 번역 아르바이트생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한 언론 매체의 채용 공고에는 ‘중국어 번역 아르바이트’를 구한다고 적혀있기도 했다.

이처럼 국제부 경시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보니 자연히 국제부 기자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것은 물론, 기자들의 수도 다른 부서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해외 주류매체가 아닌 타 매체에 대해 신경 쓸 여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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