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해당년도 최고의 화제작이란 표현만으론 확실히 뭔가 부족한 영화이다. 2001년 개봉당시 800만 이상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모았던 불세출의 영화였다. 이후 조폭이 등장했던 모든 영화가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친구>는 하나의 드라마적 전형이었고, 대중문화의 전범이었다.

그리고 8년여 만에 <친구>가 드라마로 돌아온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오성은 김민준으로, 장동건은 현빈으로 바뀌는 세대교체(!)를 이뤘지만, 그 밖의 것들은 거의 완벽하다할 만큼 같다. 영화와 드라마가 쌍끌이가 되어 대중문화를 이끌던 시절의 빛도 많이 바래고 있다. 영화의 불황은 깊어지고, 드라마 한류는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총 제작비 75억원을 상회한다는 이 프로젝트가 만만치 않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함께 있을 땐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던’ 기억은 이제 ‘우리들의 전설’로 바뀌었다. 이번 주 주말 기획은 친구에 관한 3편의 글이다. 각각 친구의 문화사적 의미, 감독론 그리고 제작론이다. 아련한 기억과 호기심만으로 채널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즐감을 기대한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 몇 명에 한 명꼴로 봤다는 영화는 애써 피해간다. (연애할 땐 예외다. 하는 수 없는 사정은 말 안 해도 잘 알 거다.) <친구>가 그런 영화였다. 검색을 해보니 벌써 2001년이었다. 그 뒤로 케이블방송에서 수도 없이 틀어댔지만, 끝까지 몰입해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영화는 내게 몇 컷의 자료화면과 몇 마디의 유행어일 뿐이다. 그러나 무슨 영화인지는 나름 꿰고 있다. 어디서 이 영화 얘기가 나오면 다른 감독 작품인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따위가 함께 떠오르는 희한한 연상습관과 함께.

이들 영화는 기록적인 흥행 성적을 올렸고, 영화관 밖에서도 (부분 또는 전체가) 수없이 되풀이됐으며, 그리하여 파편화된 기호들이 스스로 서사를 만들어냈고, 텍스트를 보지 않은 사람도 데자부(기시감)를 느낄 정도가 되었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들 영화는 꼭 집어 말하기 곤란한 하나의 모호한 계열체로 스크럼을 짜고 내게 다가온다. 내가 이들 영화를 사후적으로 비판하기에 앞서 미리부터 외면하는 무의식적 이유도 그것에 닿아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난 <친구> 얘기를 해야 한다. ‘보지 않고 말하는 <친구> 이야기’. 말하자면 나는 어느 영화평론가나 영화기자도 해보지 않은 작업을 지금 시도하고 있다. 무슨 기네스북 기록 도전 같은 기발한 시도는 아니다. 그저 밥벌이를 하는 곳에서 <친구>에 대해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렸고, 그렇다고 굳이 옛 영화를 찾아서 감상해야 할 만큼 이번 숙제에 숭고한 뜻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그리 됐다. 벌써 8년 세월이 흘렀다. 텍스트는 이미 사회 안으로 용해됐다. 그 사회의 구성원인 내게도 이젠 발언권이 있다.

▲ 영화 <친구> 포스터.
2001년, <친구>는 ‘영화’를 넘어 ‘사회 현상’의 반열에 올랐다. 818만명, 당시로서는 경이적이었던 관객수는, 호사가가 아니더라도 양질 전환의 법칙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영화잡지는 물론 신문 등에서도 성공 요인을 따지는 것을 넘어서, 사뭇 진지한 논쟁이 이어졌다. 영화의 완성도나 영화사(史)/산업적 의미 따위가 짚어졌고, 영화가 관객과 사회의 반응을 작동시킨 기전도 분석됐다. 영화배우 출신 강신성일 당시 의원은 영화의 ‘폭력’과 ‘욕설’을 비판하는 대정부 질문을 하며, ‘정치 코미디’ 또는 ‘코미디 정치’의 새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상업영화 한 편에 대한 이런 과도한 사회적 몰입 자체가 <친구>의 최대의 성취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몰입의 ‘격발’ 장치는 영화 안에 내재해 있었고, 그것은 우연일지언정 매우 정교하게 구성돼, 영화와 개별자가 반응하고, 개별자와 개별자가 반응하여, 마침내 폭발적인 사회적 반응의 연쇄로 나타났다. 끌려서 보거나 욕하면서 보고, 몽환적으로 보거나 해부하듯 보고, 동일시하며 보거나 선망하며 보고, 추억하며 보거나 추측하며 보고, 늦게라도 보거나 뒤처지지 않으려고 보고…, 그리고 극찬하면서 추천하거나 말리면서 정작 추천하고….

나이든 장모가 손바닥을 연신 부딪치며 “안 서방, 유오성 너~무 멋있더라”를 연발하고, 젊고 똑똑한 여성 후배가 눈길을 45도 위로 향하고 “장동건에 유오성까지, 이건 축복이야~”라며 콧소리를 낼 때, 이미 판단은 섰다. 남성영화라고 들었던 작품이 여성들을 홀렸다면, 여성들 때문에라도 남성들이 보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었다. 영화는 모든 개별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조응할 수 있을 만큼의 디테일을 성취했으면서도, 성차와 세대차를 횡단할 수 있는 공통의 감대(感帶)를 코드화했을 것이었다. 평자들은 그것을 대체로 ‘추억’과 ‘우정’으로 도출했다.

그러나 추억과 우정은 창의적 조합이 아니다. 둘은 본래 친화성이 무척 강하다. 나이를 먹어가며 세상을 산다는 것은 우정을 지속적으로 과거형으로 송별하는 것이다. 성인에게 우정은 그렇게 환기의 기제가 개입하는 주제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추억/우정 또는 추억-우정은 <친구>를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끌어올린 코드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기에 벅차다. (우정의 영화는 대부분 추억의 영화다.) 나는 그보다는 이 영화가 설정한 ‘폭력에 대한 시선’에서 답을 찾는 게 나을 성싶다. 폭력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시선은 모범적이지 않되 대중적이다.

<친구>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들었다. 감독은 영화 속 친구들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동시에 내러이터다. 영화는 그의 시선으로(만) 구성되고 재현된다. 그러나 그는 영화를 지배하는 압도적 폭력에서 국외자다. 폭력세계의 라이벌인 친구와 달리, 그들과 경쟁의 층위가 다른 그의 우정에는 물리적인 갈등이 없다. 그는 우정과 폭력이 복잡하게 뒤채는 둘을 다만 바라보고, 부러워하고, 걱정하고, 가슴아파할 뿐이다. 그의 시선은 개입하지는 않되 연결되어 있는 자의 시선이다. 거기에서 폭력은, 설령 친구를 죽이고 죽는 비극적 모순이되, 낭만의 일부를 구성한다. (개입된 자의 시선으로 재현된 <짝패>의 낭자한 질감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그것은 곧 폭력이 압도하는 성장기를 살아낸 한국사회 대다수 남성들의 시선과 일치한다. 성장기의 가장 강력한 공동체인 학교는 지배권력의 폭력으로부터 폭력을 학습하고, 학습한 폭력을 다시 또래 사이에서 행사하거나 행사당해 수평적·수직적 관계가 우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중 일부는 지배권력에 (폭력적으로) 저항하다 배제돼 학교밖의 새로운 (폭력적) 공동체로 옮겨가지만, 대다수는 이 사회가 승인한 사회화의 안전 사다리를 타고 힘겹게 위로 올라간다. 그들에게 성장기의 폭력은 ‘공포’와 ‘선망’이라는 모순된 투사의 대상이다. 교복과 깡패는 이에 관한 메타포다.

(남성들이 영화를 보며 내러이터와 동일시 과정을 겪는다면, 여성들은 내러이터의 시선으로 ‘증류’된 영화 속 현실을 배우들의 탁월한 성적 자원과 결합시켜 판타지화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남성인 나로서는 불충분한 것이거니와 오해에 기반한 것이기 십상이어서 더는 논의할 배짱이 없다.)

추억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건 지나간 시간의 굴레 안에 포박되어 있는 아스라한 안타까움 때문만은 아니다. 추억은 현재가 과거를 불러낸 시퀀스다. <친구>의 흥행은 어른이 된 뒤에도 끝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지배권력의 폭력에 대해 추억이라는 탈출구로 쏟아져나온 엑소더스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우정’이라는 무한탄성계수의 풍선 안에 폭력의 부정적 요소까지 모두 몰아넣음으로써 현실에 대한 퇴행적 반응을 집단화한 혐의가 짙다. <친구>는 도덕주의자들에겐 위험한 영화였는지 모르지만, 지배권력에겐 매우 안전한 영화였다. 그래서 <친구>의 탁월한 성취 이후 한국 영화계가 ‘조폭 코미디’라는 장르로밖에 진로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8년 뒤 TV 드라마를 통해 영화가 되살아나게 된 사회문화적 맥락과 그것이 이 사회에 드리울 빛과 그림자가 자못 궁금하다. 2009년 한국사회의 폭력은 <친구>의 몽타주에 온전히 포착될지, 혹 지금은 육성회장 아들의 폭력이 또래는 물론 교사까지 장악한 상황 설정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도. 그렇더라도 나는 드라마 <친구>를 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관계, 특히 남성적 관계에 관한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불편하고, 모든 사건과 현상, 사태를 특정한 남성의 관계 이데올로기로 환원하는 것에 대해 선험적인 거부감이 든다. 그것이 우정(친구)이든, 전우애(실미도)든, 형제애(태극기 휘날리며)든…. 그래서 나는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