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기자] 검찰의 수사가 어찌됐건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하는 쪽으로 한 발자국 씩 움직이고 있다. 이런 불안정한 정국에서도 정치권은 어떻게든 꼬인 정국을 풀어나갈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9일 예정된 야3당 대표 회동 이후에 대통령-여야 영수회담이 진행될 가능성도 언급되지만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대체할 새로운 총리 후보자에 청와대와 각 당이 합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치권이 개헌론 등 이후 국면에 대해 ‘동상이몽’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턱 밑까지 간 검찰 수사

주요 언론은 검찰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을 조사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태의 주요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몇 가지 증거를 찾아낸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정호성 전 비서관은 여러 대의 대포폰을 통해 최순실 씨의 지시를 받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였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를 따로 녹음하기도 하였다.

정호성 전 비서관의 통화 녹음 기록을 보면 최순실 씨가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지시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최순실 씨가 사실상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려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날 판인 것이다.

청와대 '문건유출' 의혹의 핵심 인물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6일 새벽 서울중앙지검에서 구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역시 휴대폰과 다이어리 등을 압수당했는데 여기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대기업 재벌 총수들과 개별 면담을 통해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을 압박하였다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보도다. 한겨레의 8일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초 검찰이 내사 중이던 롯데 신동빈 회장을 독대했다는 정황도 나왔다고 한다.

청와대가 CJ 이미경 부회장을 경영에서 물러나도록 압박하였다는 보도까지 종합해보면 박근혜 정권은 그야말로 반시장주의적 행위로 일관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반시장주의적 행위를 대통령이 직접 주도했고 그 결과로 최순실 씨 모녀가 다양한 형태의 이득을 보았다는 것 역시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헌정을 거부하고 기업을 압박해 돈을 ‘뜯어내는’ 행위를 주도적으로 했다는 사실이 이렇게 밝혀지고 있으나 대통령 본인은 이에 대해 여전히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앞서 두 차례의 대국민사과 및 담화에도 이와 관련한 대통령의 책임을 말하는 부분은 없었다.

야3당·비박계에 포위된 박근혜, 핵심 지지층 복구 시도

박근혜 대통령은 7일 종교계 지도자들을 만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등 성도들에게 오해를 받을 사이비 종교 관련 소문 등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천주교에선 염수정 추기경, 개신교에선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와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 등 보수적 정견을 가진 인물들이 참석하였는데, 비유하자면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이단심문’을 자청한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대국민담화에서도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이 대목에 대한 집착을 보여줬다. 이런 인식에는 물론 대통령 자신의 어떤 심리적 기제에 의한 측면도 있겠으나 어느 정도의 정치적 고려 역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를 방문한 천주교 원로 염수정 추기경과 만나 국정현안에 관해 의견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처한 문제의 핵심을 지지층이 무너진 것에서 찾는 것 같다. ‘사이비 종교’와 관련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 것은 헌정 거부 사태에 대한 진정어린 수습에 나서기보다는 어떻게든 최소한의 지지를 복구해 이후 검찰 수사와 야당과의 정치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주 일부 여론조사의 결과가 보여주는 것처럼 지지율 5%라는 결과를 갖고서는 대통령의 권위를 활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장 야심차게(?) 내놓은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카드도 침몰 일보 직전이다. 청와대는 여전히 김병준 후보자를 여야가 받아들여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야3당은 ‘사퇴 요구’라는 단일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김병준 후보자는 자진사퇴는 절대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계속 밀려 이제는 청와대와 여야가 합의한 인사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면 자신은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언론은 친박계 내부에서도 김병준 후보자의 자진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보도하고 있다. 김병준 후보자의 지명에 대해 비박계 역시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7일 대통령의 탈당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와 국회 추천 총리 후보자 지명을 요구했다. 거의 야당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한 모양새다. 이번 사태로 인한 새누리당 지지층의 집단적 이탈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그림이다.

김종인·손학규, 다시 개헌 총리?

이런 국면에서 야권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선호하는 총리 후보자의 구체적 이름을 거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조선일보는 8일 지면에서 각 세력 간에 언급되는 인물들을 나열했는데, 김병준 후보자와 함께 그간 언론에서 나란히 거명됐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와 손학규 전 의원 등이 거의 공통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서 눈여겨볼 점은 김종인, 손학규 두 사람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내의 친문그룹이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고 썼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8일자 기사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측 입장에선 두 사람 모두 껄끄러운 게 사실이다. 한 사람은 그간 당내에서 정치적 대립을 이어온 상대고 다른 한 사람은 잠재력 있는 야권 내 대권주자로 꼽히기 때문이다. 두 사람 중 누가 총리 후보자가 되더라도 문재인 전 대표에게 이로울 것은 없다.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 일부는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를 언급한다는데 두 사람 모두 정치적 야망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김종인, 손학규 두 인물에 대한 거부감에는 개헌에 대한 입장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이 국무총리에게 내치(內治)의 전권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김종인, 손학규와 같은 인물들이 권한이 상당한 국무총리직을 맡게 된다면 이들이 주장해온 개헌론에 불이 붙지 않을 수 없다.

‘개헌 총리’가 현실화 되면 비박계와 야3당 간의 ‘동상이몽’ 역시 또 하나의 갈등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적전분열’의 양상까지도 예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박근혜 대통령이 부활하거나 최소한 비박계가 명분을 얻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할 만 하다. 대통령은 물러나지 않고, 야권이 최소한의 대안을 마련하려니 마주칠 수밖에 없는 딜레마다. 정답이 있는데도 정답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게 이 정국을 어렵게 만드는 핵심 요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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