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서민대통령’ 이미지 구축을 위한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이문동의 한 골목시장. 뉴스들을 보니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은 일들을 했나 보다. 이 대통령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문지면을 통해 보도됐다.

26일자 일간신문들을 보니 이 대통령은 주민자치센터를 찾아 탁구교실에서 탁구게임도 했고(중앙일보는 예정에 없던 일이라 경호에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구립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들을 일일이 안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 구멍가게에 들어가 뻥튀기를 구입하면서는 “뻥튀기를 보면 틀림없이 사게 된다. 어릴 때 길에서 만들어 팔았거든…”이라는 그야말로 옛날 옛적 이야기도 꺼내고, 크림빵을 산 빵집 앞에서는 여대생들과 함께 휴대폰카메라로 기념촬영까지 했다고 한다.

▲ 6월 26일 조선일보 1면 기사
그뿐이면 섭하다. 상인 대표들과 불고기낙지버섯전골로 점심식사를 하면서는 ‘잊고 있었는데’라며 슬쩍 지난 4월 여의도 금융민원센터 일일상담원으로 일했던 기억을 이야기했다. 요지는 그렇다. 김밥 장사 하는 분이 사채를 100만원 빌려 썼는데 1500만원으로 늘어났다고 해서 ‘이 대통령’ 본인(강조)이 조사를 시켜 문제를 해결해줬는데 어제 고맙다는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전부 노출됐으니 서민대통령 이미지 만들기 첫 단계로서는 성공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으려나? 조중동만 보면 성공인데….

조중동의 25일 오전 11시경 이문동

◇ 조선일보 속 말이 없는 시민들 : 조선일보 지면에서 이문동 골목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많은 말을 한다.

“(불낙전골을 먹으며) 경제가 어려우면 제일 먼저 고통 받는 사람이 서민층이다. 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해도 서민이 제일 마지막까지 고통받는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고리 사채로 고통 받고 있길래 조사를 시켰는데 어제 편지가 왔다. 일생에 고마운 일이라고 하더라”, “(구멍가게에서 뻥튀기를 사며) 이걸 보면 틀림없이 사게 된다. 어릴 때 길에서 만들어 팔았거든”, “(주변 시민들에게 어묵을 건네며) 먹어보라”

그런데 조선일보에 시민들은 말이 없었다. 다른 신문들을 보니 시민들은 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규제를 호소했다고 하던데 조선일보는 왜 이런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을까? 시민들이 이 대통령에게 어떤 주문을 했는지에 대해서 한 마디 전하지 않은 채 이 대통령의 말만 전하는 조선인데 그렇다면 라디오연설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만평으로 대신한 건가? 조선일보는 “본 지가 하도 오래 돼서”라는 제목으로 시민들이 이 대통령을 보며 “가만, 어디서 봤더라”라는 만평을 실었다.

◇ 중앙일보는 이명박 대통령 일기 쓰기 : 이문동에 있었던 일을 모두 알고 싶다면 중앙일보를 보라. “전용차 대신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이문동에 도착했다는 말로 시작해서, 마치 ‘오늘은’으로 시작되는 재미없는 일기를 보는 듯하다.

▲ 6월 26일 중앙일보 5면 기사
중앙일보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 대통령이 ‘내 방문이 상인들에게 폐가 되니 물건이라도 사 줘야 한다며 따로 10만원을 챙겨 나왔다”고 전했다. 또 새마을금고에서는 “300만원이나 500만원이나 소액이지만 어려운 분들에게는 굉장히 필요한 돈”이라고 강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야말로 서민을 위한 대통령이 아닌가. 대학시절 환경미화원을 했다는 이 대통령은 “서민들의 고통을 체감하고 있다”고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사설을 통해서는 “MB식 서민행도…이벤트에 그쳐선 안돼”라며 정책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물론 분석이 없는 기대 섞인 목소리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중도강화론’이 이념논쟁의 불씨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걱정이다. 그 때문일까? 이 대통령이 이문동을 찾았을 때, 수많은 이야기를 건넸을 서민들의 말 들 중 중앙일보가 “국회의원들이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걸 악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권위가 서야 한다”는 문구를 뽑은 이유가.

그런데 다른 신문에서는 모두들 점심으로 불낙전골을 먹었다고 하는데 왜 중앙은 비빔밥을 먹었다고 했을까? 이 대통령이 두 번 밥 먹었나?

◇꾸짖음도 없이 그냥 전하기만 하는 동아일보 : 동아는 그저 “이 대통령이 이문동에 갔었다”이다.

그나마 기업형슈퍼마켓에 대한 서민들의 말에 이 대통령이 “‘같이 사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면서 ‘서울을 권역별로 나눠서 (소상공인과 생산자의) 직거래를 통해 물건을 팔면 마트보다 싸게 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보다도 동아는 “MB는 왜?”라며 ‘정치’와 ‘중도’를 강조하는 이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집중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MB식 해석이다.

▲ 6월 26일 동아일보 5면 기사
동아는 “그동안 경제 살리기와 안보 현안을 챙기는데 전력을 기울였으나 그 성과가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정치의 부재’ 때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며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정국을 거치며 좌우 이념 대립이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대선 때 자신을 지지했던 중도 성향의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을 깊이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저 열심히 했는데 정치의 부재로 국민들에게 ‘전달’이 되지 않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서민대통령’되긴 하반기에도 글렀는데…

경향신문은 1면에서 “경제운용, 서민 대책과 거리”라는 기사를 통해 “정부가 25일 내놓은 하반기 경제운용의 큰 틀은 서민생활 안정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지적했다. 그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고, 기존에 추진했던 정책을 포함시키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 6월 26일 경향신문 3면 기사
정부는 “우리나라의 단시간 근로자 비중은 2007년 현재 8.9%인 반면 OECD 회원국 평균은 15.4%에 이른다”고 밝히면서 임시·일용직이 아닌 상용직 단기간 근로자를 늘린다고 한다. 그러나 경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단시간 근로자들은 시간당 노동임금이나 사회보장혜택은 정규직과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부가 나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또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은 가공용 쌀을 구입할 수 있는 소형 떡집의 면적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전부였다”, “기업형수퍼마켓(SSM) 진출 규제, 상가임대차 보호법 적용범위 확대,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등 자영업자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학 등록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도 등록금 대출 이자를 깎아주고, 등록금을 분납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한겨레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25.3%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은 이 대통령에게

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이문동을 찾은 이 대통령. 중앙일보가 지적한대로 그것이 이벤트성이 아니라면 좋은 일이다. 그리고 조선만평에서 이야기했듯 자주 다닐 것을 주문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경향에서 지적했듯 ‘서민대통령’은 구호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다음 주에는 구체적인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내놓는다고 하는데, 여러 부처에서 원래 추진하고 있었던 정책을 하나로 모아 마치 새로운 대책인양 ‘예산 얼마 편성’이라는 보도를 보지 않게 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조선일보는 오늘 “하반기 세금 재정 규제 ‘서민 중심’으로 다 바꾼다”라는 기사를 통해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서비스 양극화’가 문제란다. 그러나 영리의료법인은 서민정책을 추진할 때만 양극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또한 이명박 정부에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끝으로, 뻥튀기를 보면 살 수밖에 없다던 이 대통령에게 그 뻥튀기를 공짜로 나눠주는 곳을 소개할까 한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살리기’가 환경을 파괴한다며 반대하는 운하백지화국민행동 회원들은 오늘도 천막을 친 조계사 앞에서 ‘뻥쟁이 MB를 형상화한 뻥튀기’를 나눠주고 있는 중이다. ‘4대강살리기’ 정책이 ‘뻥(거짓)’이란 이야기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안한다. 이문동 다음으로 조계사를 방문하는 것은 어떠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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