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청은 우익단체인 국민행동본부와 고엽제전우회가 먼저 나서서 덕수궁 대한문 앞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 분향소를 철거해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24일 중구청은 이들의 기습 철거가 있은지 불과 8시간만인 오후 2시경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분향소 철거에 나섰다.

▲ 분향소를 철거하고 있는 서울중구청 직원(?)들. ⓒ곽상아

▲ 구청 직원(?)의 왼쪽 팔에 문신이 보인다 ⓒ곽상아

용역으로 추정되는 구청 직원(?) 50여명은 직업경찰, 전의경 600여명의 비호를 받으며 1시간만에 분향소 철거를 마무리지었다. 이에 따라 오후 2시, 서울역앞에서 ‘김대중 이적행위 규탄 결의대회’를 개최한 이후 대한문 앞으로 와 분향소 철거를 마무리 지으려던 우익단체들의 계획은 자연스럽게 취소됐다.

“요즘 공무원들은 팔에 문신도 하느냐. 용역이 분명하다” “마스크는 왜 쓰느냐. 창피한 줄은 아나보다” “경찰이 깡패들과 결탁했다” 등 시민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싼 경찰이 항의하는 시민들의 사지를 들어 신속하게 연행해주기 때문이다. 철거 과정에서 10여명의 시민이 연행됐다.

▲ 분향소 철거에 항의했던 한 시민이 사지가 들린 채 연행되고 있다. ⓒ곽상아

▲ 분향소 철거에 항의했던 시민이 사지가 들린 채 연행되고 있다. ⓒ곽상아

▲ 여성의 경우 여경들이 연행해간다. ⓒ곽상아

구청 직원(?)들의 철거가 쉽도록 대오를 바꾸는 등 이날 철거과정에서 경찰들이 보여준 행동들은 우익단체의 강제 철거에 대해서 “CCTV를 통해 분향소를 부순 이들을 확인한 후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라고 밝힌 것과 전면적으로 배치된다. 과연 분향소를 부수고 달아난 우익단체 회원들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지는 두고볼 일이다.

철거 과정을 지켜보던 20대 남성은 “보수단체와의 경찰, 중구청의 짜고치는 고스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경찰은 용역과 민간인의 충돌과정에서 민간이 폭행당해도 오히려 용역을 보호하고 있다”고 혀를 끌끌 찼다.

한 시민상주는 “노 전 대통령이 죽어서까지 이런 예우를 당하고 있다. 49재때까지만 분향소를 유지하겠다고 했음에도 이 정부에서는 이것마저도 허용되지 못한다.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상식의 문제”라며 노 전 대통령 사진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길바닥에는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영정에 바쳤던 국화, 선물 꾸러미 등이 나뒹굴었다.

▲ 망연자실한 표정의 시민상주들 ⓒ곽상아

갑자기 철거에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 중구청은 “도로통행에 지장이 있으므로 철거하라는 공문을 수차례 보냈음에도 시민들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며 “분향소가 이미 파손돼 잔해만 있는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서울시와 경찰의 도움을 받아 철거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분향소가 파손돼 잔해만 있는 상황이라면, 복구를 도와주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왜 중구청은 ‘철거’로 방향을 잡은 것일까? 도로 전체를 점거한 게 아닌 상황에서 철거 요청의 근거로 ‘도로통행 지장’을 든 것은 쉽게 수긍하기 힘들다. 시민들 역시 분향소를 49재인 7월 10일까지만 운영하겠다는 입장이었다.

▲ 경찰 너머로 분향소 철거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보인다. ⓒ곽상아

▲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국화. 전경의 다리가 왼쪽에 보인다. ⓒ곽상아

이에 대해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어제(23일)까지만 해도 (중구청이) 철거를 못 한다고 하더니 오늘 깨끗하게 청소했다”며 “우리가 경종을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 본부장은 “분향소 철거를 안하면 직무유기 혐의로 중구청장을 고발하려고 했다. 중구청의 철거는 우리가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법질서 확립 차원에서 더이상 ‘떼법’이 통하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서 본부장은 “시민들이 무단으로 설치한 건데 왜 진작 철거를 하지 못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찰이 좌편향으로 기울어져 있던 것”이라며 ‘새벽에 벌어진 분향소 철거와 관련해 경찰측과 교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분향소를 파손했다고 우리를 입건하겠다는 사람들인데 무슨 교감이 있었겠느냐. 그동안 법질서 수호 차원에서 분향소를 철거하라고 여러차례 촉구했음에도 아무런 행동도 없어서 우리가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 본부장은 ‘분향소 철거가 우익단체와 서울시, 경찰의 합동작전이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남을 걸고 넘어지는 게 취미인 좌파들이 우리에게 바가지 씌우려는 수법”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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