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밝히자면, 불과 네팔에 다녀온 일주일동안 대한민국 사회가 이렇게 변화무쌍하게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주노조의 전신인 평등노조 이주지부에서 활동했던 한 네팔 활동가는 나에게, 대한민국 정치가 무너져가고 있으니 네팔정부에 정치난민으로 신청하면 본인이 신원보증을 서주겠다는 뼈아픈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매일 SNS 상에 올라오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게이트는 도저히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안나푸르나의 높게 솟은 산맥보다도 훨씬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게 한국정치였다. 동행했던 우다야 이주노조 위원장이 연일 내게 정말 이게 사실이냐고 물어볼 때마다 사실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습고 슬플 뿐이었다. 여하튼 오늘의 글은 대한민국이 폭풍 전의 고요와 같았던 10월의 어느 날, 지난 6년간 민주노총에서 이주활동가로 고생했던 우다야 동지와 함께 네팔 안나푸르나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 떠난 일주일간의 여행기이다.

인천공항에서 네팔 카트만두 공항까지 직항으로 7시간, 처음 내린 카트만두 공항의 모습은 왠지 예전 김포공항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네팔에서는 24시간 전기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밤거리는 상당히 조용한 편이었는데 다음날 아침 모습은 전혀 달랐다. 길거리를 자욱하게 뒤덮는 모래먼지에다 경적을 울려대는 버스들, 그 사이를 묘기하듯이 빠져나가는 오토바이까지 뒤섞여서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외출조차 불가능해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7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를 타고 가던 중에 앞 타이어에 펑크가 나는 바람에 간이휴게소에서 30분 정도 쉬는 시간이 있었다. 네팔 전통 간식 중 하나인 로티를 파는 청년이 있었다. 로티를 하나 사먹으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니 본인도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 EPS(고용허가제)시험에 합격하면 한국에 꼭 일하러 가고 싶다며 활짝 웃는 것이었다. 로티 하나에 현지 가격으로 2~30루피(한화 2~300원)을 하니 한국에 와서 130만 원에 가까운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는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게 일면 수긍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알고 있기에 차마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현지에서 고용허가제 시험을 보면 얼마나 합격하는지 물어보니 2016년 합격률이 불과 5%였다고 한다. 사실 그 5%도 사업주가 노동자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정말 극소수의 노동자들만이 한국에 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마저도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을 만한 재정적 여유와 시간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도시에 살고 있지 않는 산간지역의 노동자들은 시험을 보러 몇날 며칠 동안 카트만두에 가야하고, 시험을 언제 보는지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그 정보의 접근마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기회의 평등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네팔의 현실이다.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한국에서 생각했던 국제연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현실에 고민은 더 깊어졌다.

푼힐에 올라 안나푸르나의 일출을 보고 나서 찍은 사진

우여곡절 끝에 포카라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나야풀(Nayapul) 지역에서 안나푸르나의 일출을 볼 수 있는 푼힐(Poon hill)을 거쳐 김체(Kimche)까지 내려오는 3일간의 트래킹여정이 시작되었다. 길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마치 한국의 둘레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곳곳에 펼쳐지는 절경과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은 환호와 비명을 번갈아 지르게 만들었다. 길 중간 중간에 롯지(LODGE)라고 해서 음식도 먹고 잠도 잘 수 있는 일종의 숙소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정말 딱 힘들어서 쉬고 싶을 때 쯤 롯지가 나타나서 쉬어갈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열심히 올라가서 해발 2850M에 위치한 GHOREPANI 마을에 도착하였다.

3일째 된 날, 새벽 5시 아직 별빛이 반짝거리는 새벽에 우다야 동지와 함께 안나푸르나의 일출을 보기 위해 푼힐에 올랐다. 사방이 어두컴컴해서 처음에는 너무 빨리 올라왔나 싶었는데 잠시 후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면서 마치 계란 노른자처럼 터져 나오듯 사방을 밝혀주기 시작했다. 해발 7,555M의 안나푸르나 제3봉이 햇살을 받아 하얀 자태를 드러내고 그 옆에 6997M의 마차프자리 산맥이 아름답게 빛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내 눈으로 보고 있지만 합성을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자연의 위대함 앞에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고민조차 눈 녹듯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한껏 흥이 오른 우다야 동지와 나는 미리 준비해간 피켓을 들고 “STOP CRACK DOWN" 노래를 부르며 세계의 지붕 밑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요구를 힘껏 외쳤다.

경이로운 경치를 뒤로하고 몇 개의 산을 넘어서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한국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음날 네팔에 귀국한 이주노동운동 활동가들이 만든 신미궈(solidarity center of nepalese migrant workers: SCENEMIGWO)와의 저녁식사에서도 화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언제쯤 하야할 것인가였다. 네팔도 오랜 왕정과 민주화 이후에도 뿌리 깊은 부정부패로 인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전혀 급이 다른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사건이 터진 것에 대하여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 더 네팔에 묶으면서 여러 이주노동자들도 더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예정된 귀경길에 올라야만 했다. 네팔에 다녀온 지 아직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커져가고 있고 기어이 대통령 지지율은 5%로 헌정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말았다. 그리고 11월 5일(토) 오후 4시 광화문 중앙광장에서는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이 열린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지난주에 5만이 모였으니 내일은 10만 명이 모일 것이며, 다음 주 민중총궐기에는 30만이 모여서 제2의 6월항쟁을 만들어보자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미 많은 기사에서 대통령이 하야해야 할 이유에 대해 차고 넘치게 다뤘으니 남은 건 직접 광장으로 나아가는 것 뿐, 그런 의미에서 정말 제목 그대로 “시대유감(時代遺憾)”이란 곡을 추천하면서 글을 마친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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