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한 시에 남편을 잃은 동서지간, 두 여인이 그려내는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요? 다음 주 시작하는 KBS 새 일일드라마 ‘다함께 차차차’. 그 촬영현장으로 … 안내합니다.”

▲ 6월 22일, KBS <9뉴스> ⓒ KBS <9뉴스> 캡처
김생민은 나오지 않았다. 그가 나와 촬영현장 분위기도 전달하고, 배우들의 인터뷰도 진행하고, 때때로 게임도 하고. 헌데 김생민은 없었다. 왜냐고? <연예가중계>가 아니니까. 6월 22일 밤 9시가 넘어 뉴스가 한창인 시간이었다.

KBS 1TV <뉴스9>는 ‘소시민의 ‘행복찾기’라는 제목으로 “오늘 29일부터 방송된다”는 KBS 새 일일 연속극 <다함께 차차차>의 첫 촬영현장을 공개했다. 드라마의 간략한 스토리 소개와 주연 배우들의 인터뷰까지 덧붙였다. 말문 막힐 만한, 이거야말로 노골적인 ‘선전’행위였다. 그러니까 ‘보도자료’를 있는 그대로 읽는 듯한, 그런 정도로 적나라한 홍보 말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면, 정말 볼썽사나울 정도다.
(http://news.kbs.co.kr/article/entertainment/200906/20090622/1797887.html)

뉴스의 보도행위가 ‘선전’으로 전락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보여주고 있는 KBS다. 공권력과 함께 취임한 이병순 사장 이후 한 때는 ‘고봉순’이었던 KBS다. 시청자들은 상식으로 판단했고,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력의 횡포에 공영방송 KBS를 응원했다. 허나 ‘땡이뉴스’로 돌아온 KBS에 시청자들은 냉정하게 등을 돌렸다. ‘김비서’라 조롱했다. 이성 잃은 저널리즘은 결국 ‘자사이익’ 앞에서 뉴스의 신뢰성을 포기한 셈이다.

자사 ‘선전’에 활용되는 방송뉴스

방송뉴스의 자사 홍보가 처음이라 놀라 자빠질 정도는 아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막장드라마’의 대명사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도 방송뉴스에 소개되었다. SBS는 지난 2월 4일 <8뉴스>에서 ‘고공행진 이유는?’이라는 제목으로 “요즘 소재가 자극적이고, 줄거리 전개가 비현실적인 텔레비전 드라마들이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다”며 “경제 불황이 계속되고 드라마보다 더욱 꼬인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민초들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는 이런 드라마들은 일종의 대리만족이라는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인기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MBC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해 11월, <뉴스데스크>는 ‘인기 끄는 ‘독설’’이라는 제목으로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 신드롬을 전하였고, <태왕사신기>와 관련해서는 “브라운관의 사극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요새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선덕여왕> 역시도 방송 이전부터 “신라 시대의 찬란한 문화유산들을 생생하게 안방극장에 전할 수 있게 됐습니다”라며 제작 양해각서 체결을 단신으로 보도하기도 하였다.

에둘러 쳐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자사 드라마를 앞세워 사회현상 혹은 대중문화를 읽어내고자 하는 뉴스 아이템이 ‘선전’이 강조되는 보도행위라는 것 쯤은 시청자들도 다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면치레라도 하는 양 타사의 드라마도 살짝 언급하는 행위는 적잖이 속 보인다.

3인칭 화법에 담긴 방송뉴스의 술수

▲ 6월 22일, KBS <9뉴스> ⓒ KBS <9뉴스> 캡처
이뿐만이 아니다. 그렇게 수가 얕지는 않다. 방송뉴스에 등장하는 자사 홍보성 보도는 철저하게 3인칭 화법을 구사한다. “3대가 펼쳐가는 좌충우돌 인생 이야기를 그린 KBS 새 일일 연속극 다함께 차차차의 첫 촬영이 시작됐습니다.”(KBS <뉴스9>, ‘소시민의 ’행복찾기‘’, 2009년 6월 22일) “또 지난해 SBS의 ‘조강지처 클럽’과 지난달 막을 내린 KBS의 ‘너는 내운명’ 같은 드라마도 ‘막장 드라마’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시청률만은 고공 행진을 했습니다.”(SBS <8뉴스>, ‘고공행진 이유는?’, 2009년 2월 4일)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뉴스가 가지고 있는 저널리즘의 객관주의에 대한 강박이자, 뉴스의 전형성이다.

이에 대해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는 <안상태 기자는 그나마 솔직하다>라는 기사를 통해 “객관주의 문법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는 신화체계 위에서 작동한다. 가장 위력을 떨치는 경우는 자신의 이익을 탐욕할 때다. 객관주의 신화체계는 사익을 은폐하거나 공익으로 둔갑시키고, 타자에게 폭력성을 띤다. 전쟁 당사국의 언론이 자국군대의 전투행위를 3인칭 주어로 미화하고 찬양할 때 (자국 군인을 포함해) 전쟁 희생자들은 철저히 타자화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비단 자사드라마 홍보만 아니다. 방송뉴스가 ‘3인칭 주어’를 애용하는 철칙 속에 자사와 관련한 ‘사익’은 절대로 비껴가는 일이 없다. 그래서 방송사에서 주최 혹은 주관하는 행사에 대한 뉴스는 곧이곧대로 ‘SBS는’ ‘MBC가’ ‘KBS에서’ 등으로 시작한다. 객관성 내지 공정성을 담보하는 듯하지만, 신뢰성은 더욱 요원해질 뿐이다. 그래서 방송뉴스의 3인칭 화법은 그들만의 ‘가면’인지도 모르겠다. 저널리즘의 문법 속에서 ‘사익’마저 정당화시키는 ‘술수’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가. 간헐적으로 포착되는 방송뉴스의 자사 홍보에 대해 잠시 방송사가 정신줄 놓으신 것 아닌가 하며 별일 없이 살기에는 그들의 ‘선전’이 너무 노골적이고, 응큼하다. 뉴스의 객관성과 공정성, 그리고 신뢰성 운운하며 저널리즘의 규범으로 포장해 보지만, 정작 뜯고 보면 남는 것은 장삿속 밖에 없다면, 옷을 벗겠다는 <네이키드 뉴스> 보다 화끈하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못할 뿐이다.

‘김비서’로 굳히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KBS는 보다 노골적인 방식으로 자사드라마 홍보를 위해 방송뉴스를 활용하였다. 가면도 벗어 던진 채, 정말 속이 빤히 보이게 그렇게 자사 드라마를 선전하였다. 낯빛조차 변하지 않고, 보도의 기능이, 저널리즘의 문법이 ‘선전’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는 100%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나선 KBS다. 정치권력 앞에서도, 그리고 자사를 위해서도 부단히 ‘사익’만을 위해 가겠다는 ‘김비서’, 언제쯤 공영방송 ‘KBS'로 돌아올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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