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님, 안녕하십니까.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불쑥 편지를 쓰려니 조금 쑥스럽기도 합니다. 다만, 이 코너의 제목이 '대답 없는 러브레터'라는 점을 널리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보라색을 압도하기 위한 맞춤형 녹색 기억나십니까? 정치적 낭인에 머물던 변호사 오세훈을 '소통령'이라 불리는 서울시장에 앉게 해준 행운의 색깔입니다. 보라색 스카프를 두르고 보라색 커튼이 쳐진 극장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바람이 심상치 않자, 한나라당은 오래 전부터 서울시장을 준비해왔던 홍준표, 맹형규 의원을 제치고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고난’과 ‘양심’을 의미하는 보라색을 제압하기 위한 녹색의 차용이었습니다. 시장님은 유난스럽게 '환경'을 강조했고, 서울은 '지역'이니 만큼 보라색의 상징성보단 녹색의 전면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언어게임이 어떠했다고, 이제와 가타부타 말하진 않겠습니다. 저는 그때 시민단체에서 서울시 관련 담당 활동을 할 때였습니다. '싸게, 빨리, 많이' 만들겠다며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 붙이기만 하는 이명박 시장의 임기가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던 때였고, 서울시민도 아니었던지라 장정일의 음란함을 변호했던 강금실 변호사가 되어도 아니면 부드러운 합리성 정도는 지닌 것으로 보여 졌던 시장님 중 누가 되더라도 지금보다는 낫겠거니 했었습니다.

▲ 오세훈 서울시장 ⓒ여의도통신

후임자의 얄궂은 운명이랄까요? 아니면 유사품 혹은 큰 꿈을 따르려는 유사 욕망의 한계랄까요, 이제 시장님의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지만 시장님이 무엇을 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읽히지도 않습니다. 그저 무난했다고 할까요. '청계천 복원'을 발판으로 삼은 전임자의 행보를 따라, 당신은 그 삽질의 대상과 개념을 '한강 르네상스'로 무한 확대했지만 별게 없어 보입니다. 자칫, 오해하실 수도 있겠네요. 가시적 성과만으로 당신의 시정을 판단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시장님이 큰 꿈을 가속화하기 위해 티나는 삽질을 자제한 점을 높이 사는 편입니다. 동대문을 헐었고, 굵직한 공사도 여러 자리에서 벌였지만 청계천이나 서울광장만큼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울과 같은 메트로폴리스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도시민의 삶과 전통을 존중하며, 때때로 무난히 조율하며 이끄는 것이 오히려 탁월한 능력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도진개진이라는 평가들도 있지만, 분명 전임 시장 보단 시장님이 양질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는, 시청광장이 전경버스를 두른 흉한 모습으로 변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시장님이 광장 조례를 개악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시장님의 행보는 그야말로 유사 불통, 리틀MB의 현현이십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당신의 미래에 잿빛이 물들고 있음을 느낍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전임자를 극복하지 않고, 외려 전임자의 '따라지'가 됐던 정치인의 미래가 밝았던 예는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이미 고뇌하고 계시겠지만, 그 모양 그 꼴이시니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의원은 물론 손석희 교수에 비해서도 경쟁력이 없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시장님은 지금, 남은 1년여의 시정을 안락하게 보내고 존엄사 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계십니다.

긴 말 않겠습니다. 정치적 생명이 경각을 다투는 이때에 당황하여 인턴에게 매달리는 환자의 꼴을 보이진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친이계 여럿이 시장님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조중동에게 매달리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판단하신 모양인데, 결정적 오판이십니다. 8월 1일 광화문 광장 개장을 앞두고 어제 공표한 조례 개정안은 최악을 넘는 극악입니다. 사람답게 살진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고 했고, 벼룩도 낯짝은 있다고 했는데, 서울시에 민주주의보다 중요한 것은 녹색 바람이라며 시장에 오르신 분이 웬걸 민주주의에 아예 똥칠을 하셔서야 쓰겠습니까?

시장님이 지금 하려는 것은 광장의 관리가 아니라 광장의 사유화입니다. 권력이 광장을 사유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는 아시지요? 시장님은 시장 이전에 변호사이십니다. 변호사 이전엔 한 명의 선량한 시민이시구요. 예단만으로 행위를 범죄화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법정신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배우셨을 테죠.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모여 자유로운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치의 권리를 시장 따위의 권한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것이 얼마나 낙후된 권위의 감수성인지는 충분히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어려울수록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광장은 시민의 것입니다. 정부가 아니 MB가 광장에 공포를 갖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현실적 사건과 요인들이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인식 체계에 광장의 의미와 기능이 학습되어 있지 않고,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전히 당신의 수준이 MB와 동류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광장은 무한한 원천입니다. 거기서 '폭력' 하나만 도출해내는 아메바적인 감각으로는 민주주의라는 복잡계에서 결코 생존할 수 없습니다.

시장님, 늦지 않았습니다. 조례 개정안이 일으키는 사회적 논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읽으십시오. 광장에 자의적인 허가권을 행사하며, 사회적 공공재인 광장에 모여드는 시민들을 오히려 '관청재산'을 파괴하는 무리로 규정하는 군주적 폐쇄성으로 존재를 각인할 것이냐,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시민의 자발적인 의사개진이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적 리더로 존재할 것이냐의 갈림길입니다. 자칫, 잘못 들었다가는 여론의 치도곤을 견디지 못하고 개죽음 당하실 게 뻔합니다.

마지막으로 당부 드립니다. 시장님은 법률 전문가입니다. 팔뚝 굵은 자가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는 십장의 규범이 아닌 합리적 논리와 냉철한 이성을 지향하는 변론 밥을 자셨던 분입니다. 그나마 헌법에 반하던 조례를 아예 초헌법적으로 무시하는 조례 개악을 거둬주십시오.

워낙에 자주 상식이 어이없이 무너지는 상황이 잦아져, 염치없이 시장님의 직업적 소명의식을 강조해 여쭸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지난 번 서거 국면에선 광장 사용을 건의했다는 '알리바이'라도 만드실 수 있었는데 제 편지에 대답이 없으시면 이제는 빼도 박도 어렵게 되어 광장의 분노를 옴팡 쓰실 일만 남은 듯해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부디 살벌한 미래 살뜰하게 맞으시길 바랍니다. 꾸벅~

대답없는 러브레터

미디어스가 불시에 편지를 보냅니다. 팬레터라 해도 좋고, 러브레터라 해도 괜찮습니다. 행운의 편지는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미디어에 등장하는 당신이라면, 언젠가는 미디어스 ‘대답없는 러브레터’의 수취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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