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미디어위원회는 파행으로 끝났는데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이 혼자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국회도 단독으로 열겠다고 한다. 한나라당 바이러스다. 오염되면 혼자 하는 걸 즐기는 바이러스다. 평가받을 거라 생각한다. 단독으로 하겠다면 단독으로 하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밖에서 저항하며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체념한 듯 다음 수순을 생각하고 있었다.

최상재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위원(전국언론노조 위원장)도 그랬다. 미디어위원회의 지난 100일을 매트 위를 빙빙 돌기만 하는 유도시합에 빗대, 승부를 내지 않으려는 선수와의 ‘사회적 논의(합의)’가 갖는 허구를 개탄했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파격적인 지침을 내놓았다.

“민주당은 도저히 막지 못하겠다면 섣부르게 절충하려 하지 말고 원안 그대로 통과시켜라. 이 법들은 문제가 많아 다시 고칠 수밖에 없다. 마지막까지 해보고 정말 안 되면 단독으로 통과시켜라. 가장 앞서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법안을 저지할 거다. 그렇게 다급하면 당사자들이 왜 안 나오느냐고 국민들이 지적할 거다.”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과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민주당 추천 (전·현직) 위원들이 23일 오후에 연 ‘미디어위원회 대국민보고를 위한 토론회’는 지난 100일간 전개된 소통불능의 미디어위원회의 실체를 고발하는 자리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일그러지고 왜곡된 정치 현실을 폭로하는 자리였다.

▲ 23일 오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과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민주당 추천 (전·현직) 위원들이 ‘미디어위원회 대국민보고를 위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미디어스
미디어위원회, 먹통 정세 압축판

조준상 소장이 ‘한나라당 바이러스’라고 한 데 대해 전병헌 의원은 ‘신종단독플루’라고 했다. 같은 비유다.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짚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을 경과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는 좌우 정치세력 모두로부터 비판받았다. 우파 논객들은 무능을 지적하며 강력한 통치를 주문했고, 인의 장막을 질타하기도 했다. 야당을 비롯한 시민사회는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조차 지친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을 다녀온 후에도 대화와 소통, 타협과 상생의 정치를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에서 ‘일관성’을 언급하는 지적이 많아졌다.

‘근원적 처방’은 근원적 반성과 새로움을 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4대강 살리기와 언론악법 처리에 대한 강한 의지로 풀이됐다.

지난 18일 용산범대위와 면담을 한 권태신 국무총리실 실장은 “관계부처에 전달할 것은 전달하고 조정할 것은 조정하겠다. 최대한 빠른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으나 다음 날 용산경찰서가 신부와 유족을 폭행하고 농성장을 침탈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찰은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하고, 이메일 내용을 공개하는가 하면, 정연주 전 KBS 사장에게는 5년을 구형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공안통 검찰총장과 측근 국세청장의 내정은 상서롭지 않은 일이다.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말리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적 리더십은 온데 간데 없다. 콘트롤타워도 없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미덕도 발견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공권력의 영향력은 부풀대로 부풀었다. 이날 미디어위원회의 대국민보고는 이같은 먹통 정세의 압축판이었다.

강상현, “한나라당 위원들은 뭘 보고 보고서 작성하나”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의 단독 개원과 언론악법 처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이강래 대표는 “국회가 26일부터 법적으로 개원되는데, 초점이 언론악법에 모아진다. 초장에는 문방위에 공세를 쏟아 부을 것 같고, 상임위가 되건 말건 직권상정 통과를 위한 책략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토론 사회를 이끈 강상현 위원(연세대 교수)은 “여당 추천 위원들도 지금 의원회관에 모여 보고서 작성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다”고 전하고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 동안 보고서를 작성한다는데, 과연 무얼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하는지 모르겠다”며 실태 자료와 데이터도 없이 보고서 작성에 들어간 한나라당 위원들을 꼬집었다.

이날 발제는 모두 세 개, 조준상 소장이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활동 과정과 평가‘를, 이창현 위원(국민대 교수)이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의 내용과 의미‘를, 양문석 위원(언론연대 사무총장)이 ’언론관계법 분석과 평가‘를 각각 발표했다.

조준상, “국민 여론수렴기구는커녕 국민 무시기구”

조준상 소장은 미디어위원회의 자체 의견 수렴 평가, 지역 의견 수렴 평가, 국민 의견 수렴 평가 내용을 발표하고 “불행하게도 파행으로 끝난 미디어위는 사회적 논의기구도, 국민 여론 수렴 기구도 아닌 국민 무시기구였다”고 평가했다.

조 소장은 “미디어위원들이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았다”고 운을 떼고 “미디어위원회 활동이 끝나면 곧 언론계에 무수한 고위직 자리가 생기는데, 위원들이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영향력 하에 있다”며 논의 자율성의 한계를 지적했다.

조 소장은 1년 또는 다음 정권 때까지 미디어 위원들은 공직 진출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거부당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창현, “민주당은 국민의 엄중한 명령을 국정에 반영하라”

이창현 위원은 6월 20일 (주)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 국민들이 미디어법의 ‘합의처리’를 원한다는 내용 등을 제시했다.

여론조사 결과 미디어법을 인지한 국민이 모르고 있는 비율보다 높고, 여론 수렴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부정적 평가가 높게 나왔다고 밝혔다. 또한 국회 강행 표결 처리는 반대 비율이 높았고, 한나라당이 제시한 개정 근거인 ‘방송산업 경쟁력 강화’ ‘일자리 창출’ ‘언론 다양성’ 등의 주장은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 높았다고 소개했다.

이 위원은 “국민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만든 위원회인데 결국 여론 수렴이 안 되었다”고 말하고 “민주당 추천 위원들이 국민 여론의 현주소를 조사해서 발표한 것은 국민의 엄중한 명령이므로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국정에 반영하라”고 제기했다.

양문석, “신방겸영, 조중동의 의제 설정, 확산 능력 수직화”

양문석 위원은 미디어위원회를 봉숭아학당에 비유, “상식과 몰상식이 한 공간에 모이면 상식이 질 수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며 소회를 밝혔다.

양 위원은 발제문을 통해 한나라당이 밝힌 미디어법안의 개정 근거인 대기업 진입 규제 완화, 신문방송 겸영, 인터넷 규제 법안 등을 조목조목 살폈다.

양 위원은 우리나라 매체특성과 관련해 “신문은 의제 설정 능력을, 인터넷은 의제 해설 능력을, 지상파 보도채널은 합의된 의제의 확산 능력이 뛰어나다”고 진단하고, “매체의 특성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없는 상태에서 지상파를 여론독과점으로 몰아붙이는 데서 정말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조중동이 방송을 갖게 되면 수직적인 의제 설정과 확산 능력을 갖도록 하겠다는 건데, 여론독과점이라는 말이나 하지를 말든지, 독과점이 오히려 훨씬 강화된다”고 주장했다.

미디어 위원들 소회, 봉숭아학당의 악몽…사즉생 생즉사

계속해서 미디어 위원들과 지역 공청회 참가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강혜란 위원은 지난 5월 15일 전체회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돌아봤다. 강혜란 위원은 “이날 여론조사 합의에 이를 수 있는 활발한 논의가 되었고, 이제 출발점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에 들떠 있다가 잠시 후 절대 안 된다는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의) 단일한 대답을 들으면서 상황이 폭력적이라는 인식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강 위원은 “한나라당 위원과의 회의에서 나는 10명과 논의하지 않았다. 회의에는 또다른 메신저인 한 명의 전문위원이 있었고, 전문위원이 논의 조정이 있을 때마다 귀속말로 말을 건냈다”며 한나라당 위원들의 속사정을 들춰보였다.

박민 위원(지역미디어공공성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출발부터 여론 수렴을 하라고 한 기구니까 방법을 찾아야 했고, 공청회, 실태 조사, 여론조사가 아니라도 다른 방법이 있다면 굳이 여론조사를 고집할 생각이 없었지만 한나라당 위원들은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한나라당 위원들은 주장만 존재하고 주장에 따른 합리적 논거는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최영묵 위원(성공회대 교수)은 “신문과 대기업의 방송 영역 진입 의미는 공공영역이 하나 사라지는 것이므로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보고 혜택은 극소수에게 돌아간다”고 말하고 “국민 모두의 희생을 담보로 특정 미디어나 기업에게 영업의 자유를 제공하는 법을 만들면서 여론을 안 듣겠다는 건 파시즘”이라고 짤라 말했다.

최 위원은 “1% 뉴스 진출이나 조선의 MBC 겸영은 같은 것이고, 방송의 공공 영역이 사적 비즈니스로 전락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막아야 한다, 막느냐 죽느냐다”라며 말을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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