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아들이고 추가 사과를 하기로 하면서 정국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와 같은 모양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근본적 대안을 마련하는 수순으로 갈 것인지는 의문이다.

일단 검찰 수사가 어느 선까지 가능한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정부의 기존 입장은 기소를 전제로 한 수사는 대통령에 대한 형사소추가 금지된 헌법 규정 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미르 K스포츠 재단 출연금 모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한 바를 이행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는 보도와 지난해 7월 대기업 총수들과의 비공개 오찬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개별 총수들을 따로 만나 재단 출연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정황에 대한 보도가 나온 시점부터는 기류가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3일 국회에 출석해 “필요하면 박근혜 대통령에게 검찰 수사를 자청하라고 건의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자청할 경우 “제한없이 수사를 할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다만, 여기서 ‘제한 없이 수사’라는 부분에 압수수색 등 강제적 방식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걸 잊지는 않았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서면조사나 방문조사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방문조사란 검찰이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조사하는 방식을 말한다. 어떤 경우든 수사를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으나 검찰이 진상을 밝혀내는 데 필요한 만큼 대통령을 조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서면조사의 경우 그간 부실수사 또는 봐주기 수사의 대표적 방식으로 인식돼온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첫 사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08년 2월 BBK사건 관련 피내사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정도가 가장 근접한 예다. 물론 당시 BBK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의 결론이 무엇이었는지는 굳이 따지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전례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검찰 수사 자청이 대통령의 2선 후퇴와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수순으로 완전히 가지 못할 거라는 추측은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권한 논란을 봐도 분명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김병준 총리 후보자가 지명될 당시 신임 경제부총리로 내정되었다. 그런데 청와대는 함께 국민안전처장으로 임명된 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차관에 대해 김병준 총리 후보자 추천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혔으나 임종룡 신임 경제부총리 내정자의 추천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 점은 김병준 국무총리가 탄생할 경우 실질적인 경제정책을 누가 좌우하느냐의 논란으로 이어지게 돼있다. 실제로 2일 임종룡 부총리 내정자는 “경제문제 만큼은 경제팀이 뭉쳐서 돌파하겠다”고 발언했다. 3일 김병준 총리 후보자가 부랴부랴 임종룡 부총리 내정자도 자신이 추천했다는 설명을 덧붙였으나 의문은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정부조직법상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권한이 보장돼있고 국무총리가 경제정책의 핵심을 좌우할 수 있도록 한 전례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거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조차 2011년 경제정책에 대한 조정 역할을 요구했다가 법적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비공식적 보고를 받는 선에서 문제를 조율한 사례도 있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전공은 정치학이고 대학에서는 행정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경제정책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표면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 2선 후퇴를 하고 내치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위임하는 것과 같은 형식을 취하겠으나 실질 내용에서는 임종룡 부총리 내정자를 통해 여전히 경제정책에 대한 ‘직할통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정책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부처는 기재부, 산업통상부, 국토부, 미래부, 농축산식품부, 고용노동부, 공정거래위, 금융위 등인데 결국 이러한 주요 부처들에 대한 장악력의 유실은 김병준 총리 후보자가 강조하는 ‘책임총리’의 권한에 의문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의 정치적 행보 자체가 믿음을 주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애초 국민의당의 새로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돼왔다. 그간 국민의당 내부에선 호남 출신 중진 의원을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하라는 주장과 새로운 인물을 데려와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 국민의당의 실질적 대주주라 할 수 있는 안철수 전 대표는 후자의 입장에서 지난달 26일 김병준 총리 후보자와 접촉해 수락 의사를 받아냈던 걸로 알려져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카드는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과 호남을 기반으로 한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치는 상태였다. 그런데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후보로 지명하겠다는 제안을 지난달 29일에 받았다고 3일 밝힌 바 있다.

즉,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기로 수락한 지 3일 만에 박근혜 정권의 국무총리를 맡겠다고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행보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다. 첫째는 김병준 총리 후보자가 일관된 철학이나 신념에 의해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거다. 즉, ‘자리 욕심’으로 볼 측면이 크다. 둘째는 바로 이 점이 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후보자의 권한을 침해할 경우 결국 거부할 수 없을 거라는 직관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김병준 총리 후보자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그 ‘전권’이 어느 정도나 보장되는 것인지에 여전히 우려가 남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

2일 총리 후보자 내정 직후 활짝 웃다가 3일에는 눈물을 흘린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 (연합뉴스)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인사들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도 이후 정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2선 후퇴가 표면적 수준에 그칠 거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지난 2일 정병국 의원 등이 사퇴를 요구하자 “내가 무슨 도둑질을 한 것처럼 얘기하지 말라”는 격한 반응을 내놓은 바 있다. 이정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야당과의 협의 없이 지명한 걸 두고 ‘실수’라고 감쌌고, 야권을 향해서는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노무현 정권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3일 새누리당 중앙위원회는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정권 재창출보다 더 중요한 조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더 나아가 빨갱이 나라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일치단결 하자”는 내용의 성명서를 배포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중앙위는 이 성명서에 “일부 대권 욕심에 눈 먼 자들이나, 팩트가 없는 허위보도에 항의나 대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새누리당의 국회의원들만을 믿고 있을 수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권도 퇴진시키겠다는 일부 언론사와 야당의 거대한 음모 앞에 순순히 무릎을 꿇어야 하겠느냐”고도 썼다.

새누리당 중앙위 의장 대행을 맡고 있는 김기선 의원은 ‘일부 구성원들의 입장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놓기도 했는데, 어쨌든 당 내에 이런 기류가 분명히 있다는 건 앞으로의 일을 ‘불을 보듯’ 뻔한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3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거짓 사과해서 국민 분노를 한 번 더 사면 끝장”이라고 말했는데, 이런 판국에 과연 박근혜 대통령의 ‘수습책’이란 것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겠는가.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