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을 주제로 한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외신기자들이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해 가시돋힌 비판을 쏟아냈다고 한다.

23일 중앙일보는 12면 <“등원 거부 민주당, 왜 국회법 안지키나” 외신 기자들은 한국 정치가 이상했다>에서 22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 기자간담회를 다루며 “참석한 20여명의 기자 중 상당수의 질문은 국내 정치에 집중됐다. 이들은 △민주당이 국회 등원을 하지 않는 이유 △미디어법 처리가 지연되는 이유 등을 물었다”고 보도했다.

▲ 중앙일보 23일자 12면
중앙일보가 보도한 ‘민주당에 비판적인’ 외신기자의 질문은 “민주당은 현 정부의 국내 정책에 모두 반대하는 것으로 안다. 국회 개원도 안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악의 원천이라고 말하는데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 대한민국 정부가 올바르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나”(BBC 기자) “등원을 미루면서 민주당이 소수당이어서 국회 밖에서 논의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의회법을 먼저 고쳐야 하지 않나. 다수당도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이다. 또 미디어법도 계속 미뤄왔다. 모든 법안 처리에 국민 여론조사를 해왔던 게 아닌데 (미디어법은) 여론조사가 특별히 필요한 이유가 뭔가.”(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등 2개다.

중앙일보는 사설 <외신기자들 눈에 비친 이상한 야당>에서도 두 외신기자의 질문을 근거로 “22일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외신기자회견을 보면 외국인의 눈에 이해 안될 비상식적인 일들이 한국 정치권에서 얼마나 많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시켜 준다. 국민이 뽑아놓은 국회의원들이 국회는 닫아놓고 길거리에서 공방만 벌이고 있는 모습에 외신기자들은 어리둥절했다”며 “한국 국회가 국제적 망신거리가 됐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외신기자들의) 너무나 상식적인 질문에 정 대표는 궁색하게 원론적인 답변만을 했다. 어제의 외신회견은 한국 야당이 좁은 우물 안에 있음을 웅변해 준다”며 민주당의 국회 등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 23일자 중앙일보 사설
하지만 <미디어스>의 취재 결과, 당일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등원을 하지 않고 있는 민주당에 비판적 질문을 한 기자는 총질문자 9명 가운데 2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7명의 외신 기자들은 개성공단, 핵문제, 민주당의 대북정책 등 북한과 관련한 질문(5명), 아프간 파병(1명), 한미FTA(1명)에 대해 질문해 간담회의 본래 주제인 ‘북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북한과 관련한 질문은 “개성공단은 10년간의 햇볕정책 성과이자 북한이 현금을 조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어떤 상황에서 개성공단이 폐쇄돼야 한다고 생각하나”(워싱턴타임스 Andrew Salmon 기자) “현재 한국이 처해있는 군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블룸버그 통신 구희진 기자) “북한에게 먼저 안전보장이라든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다음에 북핵이나 미사일 문제,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게 맞는 순서 아닌가”(Press TV Frank Smith 기자) “미군 구축함이 북한 선박을 감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이 이런 행동을 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행동들이 오히려 한반도의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해 궁금하다”(Europolitics의 Sebastian Falletti 기자) 등이다.

이에 대해 정세균 대표는 “개성공단은 어떠한 경우에도 폐쇄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민주당의 생각이다” “상호 신뢰가 쌓여있어야 한쪽이 먼저 주면, 차후에 다른 한쪽이 줄 수 있는데 현재로선 북한과 그런 신뢰관계가 구축돼있지 못하다” 등의 답변을 했다.

산케이 신문 Kuroda Katsuhiro 기자는 “한미 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합의했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동의하느냐”고 물었고, 이어 정동영 의원의 복당 시점에 대해 질문했다. 정 대표는 “7·4 공동성명을 시작으로 남북 상호간의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통일 추진시 상호존중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며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는 오늘 주제와 동떨어진 의제이기 때문에 다음에 개인적으로 답변드리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한미FTA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 송정아 기자는 “국회 상임위에서 한미FTA 법안이 통과됐는데 향후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때 오바마 대통령이 이 법안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과연 미 의회에서 재협상 없이 통과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고, CBS Radio News의 Jennifer Chang 기자는 “아프간 파병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중앙일보는 ‘조중동방송’을 가능하게 해줄 미디어법의 사활이 걸린 6월 국회가 민주당의 등원 거부 탓에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아 초조한 상황에서 민주당에 비판적인 외신기자들의 질문을 접하며 ‘옳다구나’ 싶었던 것일까? 당일 간담회에 참석했던 외신 기자들에겐 중앙일보 기사가 과연 어떻게 비쳤을까? 민주당에 비판적인 질문을 한 기자가 두명 이었기에 망정이지 한 명밖에 안됐다면 과연 중앙일보는 어떤 보도를 내보냈을지 궁금하다.

참석한 기자들의 상당수 질문이 북한 문제 등에 집중됐음에도 이는 전혀 보도하지 않고, 민주당에 비판적인 외신기자의 질문만을 뽑아 “외신기자들이 보기에도 민주당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며 민주당 등원을 촉구한 이 기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전하고 싶은 것만 전하는 교묘한 왜곡보도의 전형이다. 왜 중앙일보가 방송을 가져선 안 되는지 또 한 건의 사례가 추가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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