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관 검찰총장 지명자는 올해 1월1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더 국민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눈물을 닦아주는 정의롭고 따뜻한 검찰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 2월3일,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서울중앙지검장을 직접 만나 항의서한을 전달하고자 서초동 청사 로비에서 기다리던 중 때마침 유가족 곁을 지나 중앙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천 지검장을 발견했으나, 경찰 30여명이 유가족들의 접근을 제지했고 천 지검장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지난 3월27일, MBC 시사교양국 PD들과 한국PD연합회 회장단이 서울중앙지검을 방문, <PD수첩> 수사 및 이춘근 PD 긴급체포에 항의하기 위해 천 지검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용산참사 수사기록 3000여쪽을 피고인 측에 공개하라는 재판부의 결정을 본 척 만 척 하는 것이 “국민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검찰”의 행동인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가 MBC 방송작가 개인의 이메일을 공개하는 행위를 지검장으로서 제지하지 않은 경우를 두고 “정의롭고 따뜻한 검찰”이라 부를 수 있는가?

천 지명자는 6월22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도둑이나 강도가 날뛰면 인권이 잘 보장되기 어렵다”면서 용산참사와 PD수첩 사건에 대한 질문에는 “지금 재판 중이라 내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오늘(23일)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천 지명자에 대한 기사를 각자의 4면에 일제히 크게 실었다. “공안 보장돼야 인권도 잘 보장”과 “공공 안녕이 인권의 바탕”이 조선과 동아가 보도한 제목이다.

▲ 조선일보 6월23일치 4면

조선일보는, 천 내정자가 용산참사와 PD수첩 사건과 관련 야당 정치인들과 친야성향 매체들의 공세(인사청문회 등)에 쉽게 밀리지만은 않을 기세라며 그가 이명박 정부의 코드에 잘 맞아 ‘공안정국’을 이끌어 갈 적임자임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동아일보 역시 “법질서를 확립해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검찰의 기본 임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발언을 부각시키면서 보다 소신있는 임면권자와 공권력을 내심 주문하고 있었다.

▲ 동아일보 6월23일치 4면

백용호 국세청장 지명자의 기자간담회 발언도 더불어 크게 보도한 조선과 동아는, 조문정국 이후 진퇴양난에 빠진 청와대가 이제 ‘소신있는 인사’를 통해 비로소 본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간만에 ‘기분좋은’ 기사를, 그것도 휘파람 불며 일필휘지로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국민과의 소통은 뒤로 한 채 이른바 ‘공안 지향성의 인사’를 단행해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이명박 정부에 보수언론이 갈채를 보내는 형국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23일 <PD저널>에 기고한 ‘김은희 MBC 작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통해 “PD수첩 광우병편이 증언했던 그 모든 사실은 참여정부 시절의 농림부 기록에 다 나옵니다”라고 밝히고, “신임장관과 외교부 출신 차관보가 전임 농림부 장관과 통상담당자의 사실판단을 고소한 셈이지요”라며 현 시국과 검찰을 조롱했다.

정 교수는 또한, 검찰 수사관이 자택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난 내 바보 같은 남편을 믿는다”는 아내의 글을 출력해서 자신에게 보여주었을 때가 가장 치욕스런 순간이었다는 내용도 공개편지에 담았다.

“이런 인물(천 지명자)이 검찰총장이 된다면, 제2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 같은 비극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검찰이 인권옹호기관이 아니라 인권침해기관이 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참여연대 성명서가 있다.

지난 1월 천 지검장이 검사들에게 권유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검찰.” 만약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조장코자 한다면 ‘공공의 안녕’이 아닌 ‘공공의 적’으로 남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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