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4월 16일 반포동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열린 '신문고시 개정 반대와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 규탄 기자회견'. ⓒ 민주언론시민연합
공정거래위원회가 "8월말까지 신문고시를 폐지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는 자전거·상품권 등의 경품으로 구독자들을 현혹하는 친정부 신문들의 족쇄를 풀어주려는 조치로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고위관계자는 23일 "최근 5년간 개정이 없었고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규제를 일단 폐지하고 존치 여부를 검토하라는 총리실의 지침에 따라 신문고시 폐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8월23일까지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신문고시는 1996년 지국장 살인사건으로까지 번진 신문사간의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해 97년 처음 제정됐는데, 무가지와 경품을 합친 금액이 연간 구독료의 2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조중동 "신문고시는 언론견제"... 노무현 시절 포상금 강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3대 메이저신문은 2001년 대폭 강화된 신문고시가 시행될 때부터 "언론의 비판기능을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 "신문시장 질서는 신문 자율에 맡기라"며 반발했지만, 헌법재판소도 2002년 7월 신문고시는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공정위가 신문고시 위반사건을 직접 처리할 수 있도록 고시를 개정하고 신고포상금의 한도를 500만 원에서 1000만원으로 크게 늘리는 등 신문사들의 불법 영업에 철퇴를 가했다.

1개 신문사의 5개 지국 확장대장을 증거로 제출해 2500만원의 포상금을 수령한 사람이 나올 정도로 시민들이 신문사의 불법 행위를 적극 감시하는 길도 열렸다.

공정위는 2003년 5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신문지국 1316곳을 조사해 904건의 시정조치를 내렸다. 2005년 7억5210만원, 2006년 3억189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조중동의 경품 공세를 다소나마 진정시킨 것도 사실이다. 2007년 3월에는 조중동 지국이 아니라 3개 신문사 본사에 5억5200만원의 과징금을 물리기도 했다.

신문고시의 표적이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인 3개 신문사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자협회보>가 2008년 4월 공정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조중동 3개 신문사의 2004~2007년 신문고시 위반 비율이 총 537건 중 445건(82.9%)에 이르렀다.

신문사별 과징금도 <조선일보> 6억2490만원, <중앙일보> 5억5530만원, <동아일보> 4억8400만원을 각각 기록한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각각 1720만원과 1200만원에 머물렀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신문고시 무력화 발언 잇따라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뒤에도 조중동의 '반칙'은 계속됐다.

2008년 신문고시 위반현황을 중간집계(1~9월)한 결과, <조선> 124건·<중앙> 62건·<동아> 67건으로 총 310건 중 조중동이 253건(81.6%)을 위반했다.

반면, 2007년 7530만원이었던 신문고시 위반 과징금은 2008년(9월말 기준)에는 1820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정권의 명멸과 상관없이 신문업계의 과열 경쟁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데, 공정위가 신문시장의 무법천지를 방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6월 15~16일 조중동 지국의 신문고시 준수 실태 조사에서도 90곳 중 89곳이 신문고시를 위반했다. <조선>과 <동아>의 위반율은 100%였고 <중앙>은 단 1곳만 고시를 준수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신문시장의 질서는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며 신문고시를 사실상 무력화할 뜻을 공공연히 내비쳤다.

최근 국세청장에 내정된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신문고시를 전면 재검토할 것"(4월13일 <연합뉴스> 인터뷰), "인력구조상 공정위 모든 인력이 신문고시에만 매달릴 수 없다"(9월9일 국회 업무보고)는 말을 계속해왔다.

공정위가 신문고시의 존폐 시한을 8월23일로 못 박은 것은 최근의 미디어법 개정 움직임과 함께 친정부 신문들을 챙겨주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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