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해 4월의 어느 날 오후, 희색이 만면한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춘추관 기자실을 찾았다.

몇몇 기자들이 이 대변인에게 ‘변고 없이 잘 마쳐서 다행’이라는 식으로 일종의 축하 인사치레를 건네고 있었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152라는 수치로 과반의석을 확보하던 날의 일이다.

▲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여의도 통신
현재, 한나라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언론관계법(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고, 8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의 이사들 임기가 만료되면 이사진 대폭 물갈이를 시도하고, 그 다음 수순으로 엄기영 사장을 내친다는, 정부와 여당이 합세한 것으로 보이는 ‘작전’ 가능성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난주 검찰의 MBC <PD수첩> 수사결과 발표와 관련해 이 대변인이 “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경영진이 사죄하고 총사퇴해야 하는 일”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는데, 이를 두고 엄 사장 퇴진압력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는 의견과 사퇴하지 않더라도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리게 만들려는 잔꾀라는 의견 등으로 나뉜다.

엄기영 사장의 법적 임기는 2011년 2월까지이다. 그러나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중도 하차한 경우를 보더라도 임기를 채우기 어렵겠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방문진 이사 9명의 임기가 오는 8월8일 종료되는데, MBC 사장 출신인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현재의 방통위(방송통신위원회) 구조로 볼 때 방문진 이사진이 사실상 여야 9대0의 비율로 구성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발언으로 사안의 심각성을 고발한 바 있다. 바로 이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에 대한 임명권(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할 시, 해임 권한까지 포함하는 임면권)을 지니고 있다.

동아일보 출신 청와대 대변인이, 정부의 언론 장악을 위한 최대 과업이고 가장 껄끄러운 작업 중 하나인 ‘MBC 갈아엎기’를 위한 언론플레이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 대변인은 MBC를 ‘총체적 조작방송’ ‘음주운전’ ‘사회적 공기가 아닌 흉기’ 등으로 맹비난했다.

이 대변인은 ‘참여정부가 결정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우리가 설거지해주는 것’이라고 춘추관 브리핑 때 말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작년 4월 말경의 발언이었는데 그로부터 열흘 전쯤 이미 워싱턴에서 같은 내용을 언급하면서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논란에 대해 참여정부 탓을 했다. 그는 기자들 앞에서 전직 대통령을 “노무현씨”라 일컫기도 했다.

그 때 쇠고기 문제를 노 전 대통령 탓으로 돌리던 장면과 지금 정권이 책망받는 이유를 PD수첩과 MBC 경영진에서 찾고자 하는 발상이 너무도 흡사하다.

작년 국회의원 선거날, 자신이 속한 언론사 정보를 통해 (오후 6시 정각에 공표되는) 출구조사 결과를 미리 확인하거나 타사 기자에게 이를 전해들은 일부 기자들은, 평소 친분이 있던 한나라당 출마자들에게 다급히 전화를 걸어 “(제가 다 알아봤거든요.) 당선 축하드립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정당 출입을 못해본 내겐 다소 낯선 풍경이었고, 별다른 사유 없이 기자실에 들른 이 대변인의 활기찬 얼굴은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유난히 돋보였다.

이 대변인이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게 있다. 자신의 발언을 함께 기쁜 마음으로 들어주는 집권여당 지지층 기자들과 웬만한 발언은 낭설이나 핑계로 보아넘기는 국민들 사이의 확고한 차이 말이다.

2008년 2월25일, 한나라당사를 출입하던 기자들의 상당수가 청와대 기자실에 입성했고 2008년 4월9일 총선날 일부 기자들을 제외하고-표정관리에 들어갔는지 환호성은 없었지만-축제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2년, 이 대변인이 출마하고 춘추관을 지키던 기자들도 출마하거나 선거운동하러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이 언론사 사장 퇴진을 어떻게 말하느냐. 퇴진 여부는 내가 결정한다”고 밝힌 엄기영 사장(언론계 선배님)께 박수 보내며 ‘이동관 기자’와의 멋들어진 한판 승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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