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국민 의견 수렴은 안 하고 문제투성이 한나라당 개정안을 축조심의 하자던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이 언론플레이를 한 것인지, 한나라당 쪽에서 미리 마련해 뒀던 내용을 언론에 흘린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한나라당 개정안에 ‘개칠’하는 내용이 흘러나와 오늘자 조선일보에 보도된 것을 두고, 자기들 동네 안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진 모양이다.

▲ 조선일보 22일자 8면 기사
그 모습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이 제격이다. 한나라당 추천위원 10명과 자유선진당 문재완 위원이 심사숙고했다는 수정안과 한나라당 개정안을 견줘보면,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99%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신문·대기업의 방송 진출에 5대 단서조건 제안’이란 거창한(?) 제목이 달린 조선일보 오늘자 보도내용을 기존 한나라당 개정안과 교차시켜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1. 신문(아마도 종합일간지 또는 일반일간신문일 것으로 추정된다)은 2012년까지 민영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주식이나 지분을 20%까지 ‘소유’하도록 한다. 단, 신문은 최다 출자자가 돼서는 안 된다. 그 이후에는 49%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하여 ‘경영’할 수 있도록 한다.

2. 대기업(자산규모 10조원 이상 기업집단 소속 기업, 이하 10조원 이상이라 표현함)은 가시청 인구 1500만명 이하의 지상파방송의 주식이나 지분을 20%까지 ‘소유’하되 ‘경영’하지 못하도록 한다. 대기업은 최다 출자자가 돼서는 안 된다.

3. 대기업(10조원 이상)은 KBS, EBS, MBC, 종교방송의 주식이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도록 한다. 단, 신문(일반일간신문)이나 자산규모 10조원 미만 기업집단 소속 기업은 이들 방송의 주식이나 지분을 소유할 수 있다. 이에 비춰볼 때, KBS2 채널의 사영화, MBC의 사영화는 열려 있다.

4. 대기업(10조원 이상), 신문(일반일간신문), 뉴스통신 등이 특정 지상파방송에서 차지하는 주식이나 지분은 그 합이 49%를 넘을 수 없다.

이런 네 가지 추론에서 한나라당 개정안과 1% 달라진 부분이 있는데, 대기업(10조원 이상)이 소유할 수 있는 지상파방송의 범위를 가시청 인구 1500만명 이하의 민영 지상파방송에 한정한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SBS, OBS, 지역민방, 지역MBC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사실상 공영방송과 종교방송을 제외한 모든 지상파방송이다. 특정 지상파방송에서 대기업(10조원 이상)과 이종매체(신문, 뉴스통신)가 소유하는 비중의 합계가 49%를 넘지 못하도록 한 것도 추가된, 사실상 없어도 그만인 내용이다.

물론 1%가 달라져도 본질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에 흘러나온 내용은 그저 ‘곁가지’에 불과하다. 애초 한나라당이 법안에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을 추가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실망하는 집단이 있을 수는 있다. KBS2나 MBC 사영화 과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돼 있으니 대기업(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KBS2나 MBC를 사실상 장악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 역시 애써 무리해 사영화를 현실화시키지 않을 계산을 하고 있는 터라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 실제로 사영화시키는 과정에서 대기업(10조원 이상) 참여를 허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신문과 관련지어 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자유선진당 문재완 위원의 궤변을 받아들여 ‘소유’와 ‘겸영’을 자의적으로 구분해 적용한 게 전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문이 20%까지 지분을 소유하는 것은 ‘겸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다. 49%까지는 소유하거나 최다 출자자가 돼야 ‘겸영’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20%의 소유만으로도 얼마든지 실질적으로 경영할 수 있다. 실제로, 지상파방송에서 5%의 소유만으로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현실이다.

한나라당 자체적으로 정작 손봐야 할 중요한 내용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채 그대로다. 이를테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연내 2개를 승인하겠다고 막무가내로 추진하고 있는 종합편성채널의 경우, 사실상 전국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지상파방송과 견줘 엄청난 특혜를 받고 있다. 케이블이나 위성방송 등이 의무송신을 해야 하는 특혜가 그렇다. 종합편성채널이 MBC를 포함한 지상파방송을 제치고 KBS1과 EBS 수준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산 제작 프로그램에 대한 쿼터, 광고를 포함한 편성규제, 심의규제 등에서 보이는 극심한 비대칭 문제도 아무런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예상하건대, 한나라당은 종합편성채널에 대해서는 대기업(10조원 이상)과 신문이 3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기존의 개정안에 아무런 손도 대지 않았을 것이다. 외국자본이 20%까지 직접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아무런 손도 대지 않았을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을 조중동과 재벌에게 주고, 향후에 이 채널을 지상파방송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한 절대로 손도 대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에서 흘러나온 내용을 보도하며 온갖 ‘사탕발림’을 한다. “(한나라당 추천 미디어위원들의) 이 초안은 민주당의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담고 있”다고 말이다. 정말 민주당이나 국민을 ‘멍청이’로 간주하는 듯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곁가지를 건드린다 해도 한나라당 개정안이 ‘조중동 방송-재벌 방송’을 목표로 한다는 데는 아무런 변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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