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을 ‘도둑 잡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만 맞다. 경찰은 도둑도 잡지만 강도, 살인범도 잡아야 한다. 범인을 잡는 것보다 범죄 예방이 더 중요하다. 나아가, 국민의 안전 전반에 무한책임을 진다고 보는 게 옳다. 거리에 쓰러져 있는 행인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경찰관이라면 마땅히 비난받고, 징계도 받을 것이다. 쓰러진 행인을 돕는 경찰관더러 “도둑이나 잡지 웬 오지랖이냐”고 하는 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8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태평로 조선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있다. ⓒ송선영
불매운동을 ‘불량 공산품을 고발하는 소비자들의 집단행위’라고 정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불매운동은 본디 소비자들의 ‘정치투쟁’이다. 불매운동의 영어 표현인 ‘보이콧’의 어원부터가 그렇다. 1880년 아일랜드 메이오 지역에서 부재지주를 대신해 토지를 관리하던 찰스 보이콧 대위가 가렴주구를 일삼자 농민들과 하인들은 일을 거부했고, 상인들은 그와 모든 거래를 끊었으며, 우편배달부도 그에게 편지를 배달하지 않았다. 결국 보이콧 대위는 두 손 들고 그 지역을 뜰 수밖에 없었다. 인도 독립투쟁 과정에서 간디가 벌인 영국 상품 불매운동,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는 남아공 투자반대 운동도 모두 정치투쟁이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언소주)이라는 시민모임의 광고주 불매운동이 논란이 되고 있다. 특정 신문들에만 광고를 하는 광고주들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인데, 해당 신문들과 자유기업원 등이 이들을 맹비난하고 있다. 신문들은 ‘조폭 논리’ ‘사회적 린치’ ‘테러’라는 막말을 쏟아내며, 이 운동을 범죄와 동일시한다. 검찰도 형사처벌을 예고하고 있다. 자유기업원은 “언소주는 정작 불량상품 소비자 고발 활동은 한 건도 하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쓰러진 행인을 돕는 경찰관더러 “도둑은 안 잡고 뭐 하는 짓이냐”고 나무라는 꼴이다.

이른바 선진국들에서는 광고주 불매운동을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보고 있다. 2004년 미국 대선 때 보수 미디어기업인 싱클레어 그룹이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를 비방하는 다큐멘터리를 계열 방송사를 통해 방영하려고 하자, 네티즌들은 인터넷에 광고주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올리며 조직적인 불매운동을 벌였다. 정치인들은 물론 방송인들과 법률가들까지 나서서 거들었다. 광고 해약이 잇따르자 싱클레어 그룹은 다큐멘터리 방영을 포기했다. 물론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으며, 이런 운동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말로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친다고 한국사회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 수사를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곡학아세를 하지 않는 게 먼저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45호(2009-06-22)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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