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차를 들이받은 운전자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당연히 승소할 줄 알았던 의뢰인, 재판에서 ‘깨끗이’ 패배하자 변호인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법률 회사를 힐난한다. 심지어 자신의 전화에 왜 회답을 늦게 주었냐고 따져 묻기까지 한다. 그러다 불쑥 이런 말을 꺼낸다. “내 말 좀 들어봐요. 당신은 그런 일을 잘할 사람을 곁에 둬야 해요. 전화 받는 비서로 날 채용하면 어떻겠어요?” 처음엔 안 된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던 변호사, 끝내 간청을 뿌리치지 못해 동료 변호사와 함께 상의해 보자고 한다. 하지만, 동료 변호사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모욕적이다. “그녀를 고용해서 뭘 하려고?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것 말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 것 같은가?” 하지만, 두 변호사는 ‘입 크고 가슴 큰 병아리’ 같은 이 자신만만한 의뢰인의 끈질긴 주장을 끝내는 받아들여 일자리를 준다. 그리고 얼마 후, 변호사가 그녀의 책상 위에 서류 상자 하나를 털썩 올려놓는다.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운명의 상자였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실존 인물 에린 브로코비치(Erin Brockovich)의 극적인 삶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상자에 담긴 서류는 PG&E(퍼시픽 가스&전기 회사)로부터 집을 팔라는 압력을 받고 있던 로버타 워커라는 여성의 것으로, 1만 달러 미만의 소액 건으로 분류해 변호를 맡지 않는 편이 낫겠다는 의견에 따라 법률 회사가 사실상 포기한 사건이었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잊혀 가던 서류 뭉치는 이리저리 돌고 돌다 ‘회사에서 직급이 가장 낮은’ 브로코비치의 손에 맡겨진다. 상자 안의 서류들을 면밀하게 검토해 나가던 브로코비치에게 서류 하나가 유독 눈에 띈다. 의뢰인 로버타 워커의 의료진단서는 이 여성의 백혈구 수치가 ‘정상’을 한참 벗어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엇인가가 대단히 잘못된 명백한 증거’라고 생각한 브로코비치는 다음날 곧바로 의뢰인이 사는 ‘힝클리’ 마을을 찾아 갔고, 이 마을 주민들을 만나면서 크롬 6이라는 중금속의 존재를 알게 된다. PG&E는 크롬 6을 펌핑 공장의 냉각탑 부식 방지제로 사용했는데, 이 폐수가 사막에 마구 방출돼 웅덩이에 고이고, 다시 주민들이 식수로 이용하는 지하수로 스며들어갔다. 마을 주민들은 습관적인 유산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코피, 피부병, 갖가지 소화기 이상과 암에 시달렸고, 가축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나갔다.

그리하여 브로코비치 자신이 “길고도 힘겨웠다”고 표현한, 자산 가치가 28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기업 PG&E와의 4년에 걸친 소송이 시작됐다. 영화에 이런 장면들이 나온다. 찾아간 주민에게 돈이나 밝히는 것들이라는 욕지거리를 들으면서도 브로코비치는 똥물 튀는 젖소 목장 안에 들어가 주민을 만나고, 수질 검사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중금속을 배출하는 공장에 침입해 썩어 오염된 시궁창에서 죽은 개구리를 맨손으로 집어내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첫 재판에서 진 뒤 돈으로 적당히 타협을 보려는 상대 회사의 변호사에게 마실 물을 건네며 이런 말도 건넨다. “댁들을 위해 특별한 물을 준비했어요. 힝클리에서 가져왔죠.” PG&E가 고용한 거대 법률회사 소속 변호사가 브로코비치가 내놓은 서류철을 검토한 뒤 전화번호 등등 빠뜨린 게 많다고 하자 600명 주민의 전화번호와 인적사항, 병증을 그 앞에서 줄줄이 외워 콧대를 납작하게 꺾어 놓는가 하면, 기나긴 소송을 피하기 위해 중재를 선택한 법률회사가 주민 전원의 서명을 필요로 하자 닷새를 밤낮으로 이 집 저 집 찾아다니며 기어이 서명을 다 받아내고 만다.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고, PG&E가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정의가 지켜지게 해야 한다, 그 마을 주민들 모두가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을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쨌든 누군가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해명해야 했다.” 독서 장애자였고, 주기적으로 신경성 식욕부진에 시달렸고, 정신적인 불안에 잘 빠졌고, 자동차 사고로 심한 부상을 입었으며, 두 번 이혼했고, 마땅한 수입도 없이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허름한 집에서 세 아이를 양육해야 했던, 누가 보아도 실패한 삶이었다. 번듯한 4년제 대학을 나오지도 못했고, 법률 공부는 더더욱 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다 좋은 일이 생기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행운을 타고 났다, 섹스를 미끼로 더 나은 자리를 꿰찼다는 등의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이 신데렐라 이야기가 믿기 힘든 현실이 되자, 사람들은 성공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내가 힝클리 소송에서 성취한 것들은 배움에 의지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에 의지해 이루어낸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법이란 흑백이 분명하지 않고, 엄격한 규칙의 적용이 아니라 뜨거운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본다.”

직접 발로 뛰는 악착같은 근성과 진실을 향한 치열한 열망과 노력은 이름 난 탐사저널리스트들의 그것에 비추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지만, 다른 게 있었다면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자의 그 ‘눈높이’였다. 브로코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몸이 아픈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 사람,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된 사람의 입장에 서보자고.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거대한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도움과 격려를 요청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지금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그들의 입장에 서서 자기 자신을 대할 때와 똑같이 이해심을 가지고 행동하자고. ‘돈이나 밝히는 것들’이라는 욕지거리를 일삼은 힝클리 마을 주민들의 얼음장 같던 마음을 녹여 ‘신뢰’라는 더 큰 결실을 맺게 했던 것은 그 어떤 유능한 변호사에게도 없었던 브로코비치의 따뜻한 시선이었다. 이 책은 읽는 이의 무뎌진 의식에 ‘초심’(初心)을 떠올려보라고 말을 건다. 에린 브로코비치가 자신의 ‘쓸모 있음’을 알아가는 과정은, 역으로 자신을 ‘쓸모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온 나 같은 기성 언론인에겐 언제부터인가 까맣게 잊고 살았던 ‘그 무엇’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반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2001년 KBS에 기자로 입사했다. 2004년 8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KBS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포커스>를 제작 담당하면서 언론에 관심 갖게 되고, 2006년 11월부터 1년 동안 50회에 걸쳐 미디어오늘에 <김석의 영화읽기>를 연재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보도한 탐사저널리스트 시모어 허시의 저서 <세상을 바꾼 탐사보도/ 밀라이 학살과 그 후유증에 관한 보고>를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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