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실감나진 않지만 대통령 선거가 40여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며칠 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금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5년 전, 대선 패배 후 국민 여러분께 엎드려 용서를 빌고, 정치에서 물러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용서를 빈다”는 참회성 변과 함께 “정권은 반드시 교체해야 하지만 10년 동안 훼손되었던 나라의 근간과 기초를 다시 세우고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는 정권교체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지난 시간동안 나라의 장래 비전에 관한 어떤 고뇌를 했는지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현재의 대통령 선거판을 뒤흔들어 놓았으며, 이회창씨가 이명박씨의 표를 얼마나 잠식할지 또는 중도사퇴할지 아니면 끝까지 완주할지, 역전하여 3수 대권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지 등등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게임의 관전자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정치인들 ‘게임’에 밀려버린 서민들의 ‘삶’

▲ 경향신문 11월8일자 1면.
사전에 정의된 내용을 보면 정치란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일 따위의 일을 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회창 전 총재의 선택을 보면 국가의 권력을 소위 좌파 정권으로부터 가져와야하며 그것은 자신을 통해 가능하다는, 권력획득의 의지를 밝혔다는 점은 알 수 있으나 국민의 삶을 인간다운 삶으로 만들고 다양한 사회갈등을 통합하여 건강한 사회질서를 형성해간다는 사전적 의미에서의 ‘정치’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한 사회공동체의 미래와 지향을 놓고 선택해야할 주권자들을 몇 명 정치인의 게임의 관전자로 만들고 말았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정치인들의 게임에 밀려 신문지면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폭등하는 기름값으로 아우성치는 서민들의 목소리, 생존의 길을 찾으려다 목숨을 버린 노동자들의 절규, 사교육비에 통신비, 전세값 등 감당하기 힘든 필수 지출비용 때문에 힘겨워하는 소비자들의 원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대개 우리의 선거문화가 평소에 별로 해놓은 것 없어도 또 지금까지 실천해 온 내용과의 관련성은 약해도 선거용 공약을 급조하고, 앞뒤가 맞지 않아도 표될만한 메뉴들은 다 모아다 내어놓는 식이었다. 그래서 그놈이 그놈이고, 그 공약이 그 공약이라는 식으로, 기대만큼의 정책적 지향성과 내용이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한계에 우리는 너무 익숙해 있었다. 그나마 그 동안은 문민화, 정권교체, 개혁세력의 집권 등 나름대로 ,정권의 향방이 가져다 줄 역사적 가치에 목말라했고 그런 경로를 밟아온 것 자체가 우리 역사의 진보로 이해될 수 있다.

정책적 경쟁과 가치의 경쟁이 실종된 무기력한 2007 대선

▲ 한국일보 11월8일자 1면.
지금까지는 역사적 가치로 평가를 대신한다하고 이제부터는 뭐여야 하나? 정치인 개인 차원이건 정당차원이건 국가 권력 획득의 의지는 평소의 철학과 지향성에 따른 정책수행과 실천의 성과를 국민들에게 내어놓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또 이를 앞으로 새로운 정부를 통해 어떻게 더 발전시킬까 또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 국민들의 삶의 질을 고양시키기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내어놓는 것이 뒤따라야 한다.

안그래도 국민의 삶을 더 잘 보살피기위한 정책적 경쟁과 가치의 경쟁이 실종된 무기력한 대통령선거판에서, 이회창씨의 가세는 온 국민을 관람석 너머의 경주를 구경하는 관객으로 만들어, 금번 대통령 선거를 경마장 선거로 성격지우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선의 해, 우리 사회의 미래와 지향을 대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 공약이라도 구경하고픈 요즘이다.

대학 때 총기독학생회장을 지냈다. 졸업 후 서울YMCA 청년회원 활동을 시작해 87년 간사를 거쳐 올해 7월 시민운동에서만 20년이 지났다. 소비자보호, 법률구조, 사법개혁, 방송개혁, 공정거래 등 시민생활의 크고 작은 일에 함께했다. 시민의 것을 빌려 쓰면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이들로 인해 피해당하는 시민 삶의 현장을 살피겠다. 강물처럼 흐르는 시민, 소비자의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 알려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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