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PD수첩> 제작진 기소와 관련한 기사들을 읽다가 오래 잊었던 약속처럼 퍼뜩 떠오르는 소설 한 편이 있었다. 대학생 때 읽었던가. 최일남의 단편 <젖어드는 땅>이었다. 소설에는 단 한 군데에도 ‘암울한 시대상’ 따위의 직설적인 언급은 없었다. 맘만 먹으면 책 쥔 손 한 번 내려놓지 않고도 독파할 수 있을 만한 분량의 글은 내내 무표정하기만 했다. 하지만 읽는 이의 가슴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잿빛으로 ‘젖어’들었다. 소설은 ‘일상이 감옥이면 고통이라고 해서 무덤덤해지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라고 나직이 묻고 있는 듯했다.

무대는 서울 무교동의 한 낙지볶음집. 근처 신문사에 다니는 기자들이 무력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석탄 같은 가슴으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한숨 섞인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다. 그렇게 배슬배슬 맥없이 끝나려나 싶던 서사는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술기운을 빌어 저지른 돌출행동 하나로 곧장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통금을 앞둔 고요한 시간, 그는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동상 앞으로 달려가 “물러가라, 물러가라”를 외친다. 대상을 지칭하지 않은 그 혀꼬인 절규의 끝은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듯하다. 당시는 서슬퍼런 긴급조치 시대였으니까.

<젖어드는 땅>은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 시대의 음울한 삽화다. 선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술기운에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사범이 되던 시절, 아니 무시로 그런 일이 벌어지다 보니 오히려 그걸 당연시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표현은 군부독재의 무도한 강권통치를 인고하기 위한 민중들의 숨죽인 풍자였다. 그러나 그 시절에도 폭압은 법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그 법을 집행하는 검사와 판사는 늘 있었다. 이를테면 ‘막걸리 보안법’은 술에 취해 비틀대는 법치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술 취한 법치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분별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영화 <잘 살아보세>가 짓궂은 표현양식으로 재현한 대한민국의 70년대는 부부의 이불 밑 송사에까지 국가권력이 개입하던 시대였다. 막걸리 보안법도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았다. 선술집 객담에까지 법치의 이름으로 ‘공안’의 손길이 무시로 뻗쳤다. 아무리 그 시절이 가혹했더라도 세월이 흘러 돌이켜보면 쓴웃음 정도로 넘길 수도 있을 터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결코 웃을 처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 검찰이 18일 MBC < PD수첩 >의 광우병 프로그램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사적인 이메일을 공개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8일 저녁 서울 여의도 MBC 앞에서 열린 '언론장악저지 및 공영방송사수를 위한 촛불문화제' ⓒ 오마이뉴스 유성호
검찰이 18일 PD수첩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구성작가의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지인과 나눈 사적 대화였다. 작가의 정치적 견해가 신랄한 사적 표현으로 담겨 있었다. 현 정권에 대한 반감이 만만찮았다. 그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표현도 나왔다. 지난해 촛불정국을 보며, “과거 어느 언론도 운동세력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대중의 힘’의 끝이 못내 불안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도 있다. “PD수첩 아이템을 잡는 과정에서 총선 결과에 대한 적개심을 풀 방법을 찾아 미친 듯이 홍○○ 의원 뒷조사를 했었다.”

검찰은 이 이메일에 대해 “현 정권에 대한 강한 반감이 담겨있고, 그가 PD수첩 제작에 깊이 관여한 만큼 제작진이 취재한 사실을 왜곡한 의도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라며 “제작진을 기소하면서 범죄 성립의 주요 요소인 악의 또는 현저히 공평성을 잃은 게 맞느냐를 국민이 판단할 때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고 보고 이메일을 공개했다”고 밝혔단다. 그런데 나는 이 기사를 읽고도 문제의 이메일 내용이 PD수첩의 ‘악의 또는 현저한 공평성 상실’이 맞다고 판단되기는커녕, 그저 검찰의 한심한 공보 능력을 안쓰럽게 여기게 됐다.

검찰이 ‘악의 또는 현저한 공평성 상실’을 입증하겠다며 까발린 구성작가의 이메일은 ‘피의 사실’을 전혀 뒷받침하지 못 한다. PD수첩 제작진 가운데 한 사람의 정치적 견해가 악의에 가득 찬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 결과 프로그램의 형평성을 현저하게 상실하게 했다는 걸 어떻게 입증할 수 있다는 건가. 둘 사이엔 아무 인과관계도 없다. 차라리 제작진 가운데 한 사람이 미국 소의 뿔에 받힌 적이 있어서 악감정을 품고 미국 소를 미친 소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하는 게 낫다. ‘검사가 평소 MBC보다 KBS를 자주 시청하는 걸로 미뤄, PD수첩 제작진을 악의적으로 기소한 것’이라고 주장할 자신이 내겐 도무지 없다.

▲ 18일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MBC 김은희 작가 ⓒ 오마이뉴스 남소연
검찰이 구성작가 이메일 공개를 통해 입증한 것은 정작 따로 있다. 검찰은 적어도 언론이 취재대상을 무작위로만 선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입증했다. 구성작가는 일부러 홍○○ 의원의 뒤를 캤다고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취재대상 선정 과정은 모든 언론에서 예외가 없다.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상을 골라 문제를 확인하는 게 탐사보도 과정이다. 검찰은 탐사보도 원론 1장을 확인해줬다. 그것도 구성작가의 7년치 이메일을 샅샅이 뒤진 끝에 나온 결과다. 밥 먹으면 배부르다는 이치를 확인시키려고 앉은자리에서 공깃밥 100그릇을 먹어치운 것과 같다.

하지만 검찰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크다. 무엇보다 7년치 이메일을 뒤져 ‘표적 보도’를 입증하는 대신 ‘표적 수사’를 입증하고 말았다. 또한 PD수첩의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를 구성할 자신이 없다는 것도 고백했다. 피의 사실을 공표하는 것조차 죄를 물을 수 있는데, 얼마나 조급했으면 피의 사실과 하등 무관한 사적 내용까지 까발릴 수밖에 없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공보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린 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때와 비슷한 수법을 동원해 스스로 화를 부르는가 말이다. 그때는 ‘질 나쁜 빨대’라도 끼고 했는데 이젠 대놓고 브리핑까지 했으니, 볏집 들고 불섶으로 뛰어든 꼴이 되고 말았다.

싱가포르에는 오럴섹스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유물이다. 1995년, 탄이라는 남성이 여자친구와 오럴섹스를 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당시 그의 변호사는 세계적으로 오럴섹스는 자연스러운 성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싱가포르 여성 43%가 오럴섹스를 한다는 1982년 조사 보고서도 증거로 제출했다. 법원의 최종 판결은 이랬다. “만약 오럴섹스를 자연스러운 전희로 할 경우에는 괜찮지만, 오럴섹스 그 자체로 행위하는 것은 금지한다.”(한겨레21 제385호-2001.11.29 참조)

아는 여성학자 한 사람과 얼마 전 각자 가장 싫어하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무식한 사람이 가장 싫다”고 했다. 그녀가 말한 ‘무식’은 배움이 짧은 것이 아니라, 지배이데올로기를 대단한 지식인양 아무 의심 없이 떠벌리는 힘센 자들의 행위였다. 지배이데올로기는 사적 영역을 공적으로 규제하려는 속성이 강하다. 20세기 산아제한 정책이 그랬고, 막걸리 보안법이 그랬다. 사적 대화라도 정치적 견해가 들어있으면 공적이라고 우기는 21세기 검찰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검사들이 이 말뜻을 알아들을지 모르겠다. 못 알아듣는다면 ‘무식’한 거다. 그건 10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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